[김순정의 발레인사이트]주세죽과 안나 파블로바-빈사의 백조(The Dying Swan)
[김순정의 발레인사이트]주세죽과 안나 파블로바-빈사의 백조(The Dying Swan)
  • 김순정 성신여대 무용예술학과 교수/ 한국예술교육학&
  • 승인 2017.09.20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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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순정 성신여대 무용예술학과 교수/한국예술교육학회장

우연히 책장에서 1992년 볼쇼이 발레단 내한 공연 프로그램 북을 발견했다. 한러수교가 이루어지면서 비로소 러시아 정통발레가 한국에 소개되던 시기였다.

프로그램 북의 글에서 박용구 선생(1914-2016)의 글이 새삼 가슴에 닿았다. 1940년 일본무용가 고마끼 마사히데의 만남을 통한 클래식발레와의 인연과 추억을 회고한 글이다.

박용구는 클래식발레에서 명실상부한 패권국가는 서방세계가 아니라 러시아라고 단언했다. 러시아발레에 심취해 있던 고마끼 마사히데는 하얼빈에서 여생을 보내던 왕년의 프리마 발레리나 캬토스카야에게 사사했고, 전쟁이 싫어 치외법권인 상하이 프랑스 조계로 숨어들어 징병을 피했다. 그는 프랑스 조계의 러시아발레단에서 활동했다.

전후 일본으로 돌아간 고마키 마사히데는 일본 최초로 백조의 호수 전막을 올리고, <니치링>이라는 창작발레를 안무하는 선도적 위치에서 일본 발레계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20세기 초 러시아 혁명을 피해 타국으로 망명한 러시아인들에게 직접 발레를 전수받은 일본 발레에 비해 한국 발레는 상당히 늦은 출발을 할 수밖에 없었다. 

고마키 마사히데는 발레 뤼스의 레파토리인 <목신의 오후> <세헤라자데>의 안무, 연출로 1983년 여름 장충동에 위치한 국립발레단(단장 임성남)에 왔다. 당시 나는 국립발레단 신입단원이었고, 두 작품에 출연하면서 몽환적인 드뷔시와 이국적 환상이 가득한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음악 그리고 포킨의 매혹적인 안무에 매료되어 있었다.

고마키 마사히데는 확고한 자신감에서 나오는 예술가로서의 고집이 강했지만 안목이 높아 캐스팅을 비롯한 모든 면에서 매서울 정도로 정확하다는 인상이었다. 최태지(현 광주시립발레단장)의 첫 한국 데뷔무대도 이때 이루어졌다. 

고마키 마사히데의 이력을 떠올리며, 근대 한국사가 겹쳐졌다. 최근 읽은 조선희의 <세 여자>, 손석춘의 <아름다운 집> <코레예바의 눈물> 덕분이다. 그 중 오래 전부터 기억하던 이름 주세죽(1901-1953)을 발견하고 더욱 기뻤다.

예술가를 꿈꾸며 식민지였던 조선을 떠나 상하이 프랑스 조계의 음악학교에 유학한 주세죽은 주변의 기대와 달리 피아노를 버리고 사회주의자가 되었고 박헌영과 결혼한 후 모스크바 유학을 했다.

주세죽과 박헌영의 딸인 박 비비안나는 부모의 품이 아니라 제3세계 혁명가들의 자녀가 다니는 스타소바 보육원에서 성장했고 이후 러시아 모스크바 모이세예프무용단의 무용수이자 교수가 되었다. 모스크바 중심부 챠이콥스키홀에서 열리는 모이세예프무용단 공연을 보던 중 카레이스키 타녜츠(한국춤) 2인무를 보며 궁금했던 의문도 그 사실을 알게 되면서 풀렸다.

허나 주세죽은 조선인의 밀고에 의해 친일 스파이로 몰리고 중앙아시아의 집단농장으로 유배되어 1938년부터 유형수가 되었다. 주세죽은 딸에게 영향을 줄까봐 복권이 된 후에야 모스크바의 딸을 보러갔지만, 공연을 떠난 딸을 보지 못한 채 모스크바의 한 병원에서 폐렴으로 한 많은 삶을 마감한다. 

▲ 안나 파블로바-빈사의 백조

주세죽의 삶과 죽음이 안나 파블로바(1881-1931)의 <빈사의 백조>와 중첩되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조선이 아닌 유럽의 어딘가에서 태어났다면 그녀는 예술가로 살다갔을까? 안나 파블로바가 조선 땅에서 태어났어도 과연 <빈사의 백조>가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나는 포킨과 같은 대 안무가를 동급생으로 두었던 안나 파블로바를 늘 부러워했다.

<빈사의 백조>는 단 5분이다. 그러나 발레역사에서의 존재감은 엄청나다. 이토록 처절한 작품이 다시 나올 수 있을까? 러시아 영화<안나 파블로바>를 보면 1905년 <빈사의 백조> 안무는 당시 황제의 군대인 백군에 저항하던 군중들의 고뇌를 춤에 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클래식발레의 대명사인 안나 파블로바는 시대의 흐름에 예민했다. 새로운 춤의 혁명가인 이사도라 던컨의 춤과 사상을 강렬하게 인식했고 자신의 예술에도 받아들이게 된다. 독립적으로 활동하기 위해 마린스키발레단을 떠났고, 디아길레프의 발레 뤼스와 활동하다가 2년 뒤부터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와 결단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또한 항공여행이 없던 1910-1920년대 전 세계 순회공연 실적은 실로 대단한 일이며 그녀가 뿌린 발레대중화의 공로는 지대하다.  

안나 파블로바의 <빈사의 백조>는 클래식발레의 기준으로만 평가하면 뭔가가 부족해 보인다. 현대의 발레리나들은 어떻게 하면 아름답게 보일지 연구한다. 그래서 마르고 길고 예쁜 무용수들만이 <빈사의 백조>를 춘다.

그 때마다 나는 마음이 불편하다. 오히려 안나 파블로바의 오래된 영상에서 보는 그녀의 춤이 더욱 마음에 들어온다. 조화롭지도 일견 아름다워 보이지도 않지만 파블로바는 분명 자신만의 춤을 추고 있었다.   

외국의 작품과 안무를 가져오기만 하는 발레수입국에서적극적으로 창조하는 발레 생산국이 되기 위해서는 보다 창조적이고 과감한 도전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용수들에게 스스로 자기 자신을 보다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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