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건왕 아우구스투스'의 꿈, 혹은 야욕을 들여다본다
'강건왕 아우구스투스'의 꿈, 혹은 야욕을 들여다본다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7.09.20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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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왕이 사랑한 보물-독일 드레스덴박물관연합 명품전', 바로크 문화의 빛과 그림자를 느끼자

18세기 유럽, 프랑스의 루이 14세, 러시아의 표도르 1세 등의 '절대 왕정'이 절정을 이루면서 왕실의 문화도 화려함을 추구했다. 화려하면서도 왕가의 위엄을 느끼게 하는 이 화려한 문화의 시대를 우리는 '바로크 문화'라고 부르고 있다.

물론 '국민의 고혈을 짜낸 것'이라는 비판의 눈길도 있지만 그들이 보여준 화려한 문화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큰 영감을 주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지난 19일부터 선보인 '왕이 사랑한 보물-독일 드레스덴박물관연합 명품전'은 바로크 예술의 화려함과 아름다움이 어떤 것인지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 '강건왕 아우구스투스'의 군복과 검

이 전시는 우선 독일 드레스덴박물관연합이 소유한 대표 소장품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며 또 하나는 '강건왕 아우구스투스'가 수집한 예술품들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그의 존재와 꿈(혹은 욕심이나 허영)이다.

아우구스투스(1670~1733)는 1694년 작센 선제가 된 후 1697년부터 폴란드 왕이 되며 절대군주가 된 인물이다. 그의 롤모델은 바로 프랑스에서 절대 권력을 휘둘렀던 루이 14세였다고 한다.

'태양왕'을 꿈꿨던 그를 생각하면 '태양 마스크'가 예사로워보이지 않는다. 군복, 의례용 검, 사냥도구 등 그의 흔적, 나아가 절대 권력을 휘두른 왕들의 흔적이 제일 먼저 관객들을 맞이한다.

▲ '태양왕' 루이 14세가 롤모델이었다는 아우구스투스의 생각이 '태양 마스크'에 들어있는 듯하다.

각 방의 대표 전시품과 확대 사진 기술을 이용해 드레스덴 궁전의 내부를 그대로 가져온 전시공간이 18세기 바로크 궁전의 모습을 우리 눈앞에 보여준다.

상아, 청동, 은 등 각종 고급 재료로 만든 다양한 모양의 잔과 칼집, 조각 작품 등은 아우구스투스 개인뿐만이 아닌 18세기 유럽 귀족들의 화려함과 예술에 대한 동경을 보여준다. 너무나 화려하다보니 우리의 눈에는 '저런 곳에서 잘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 <아테나>
▲ 확대 사진 기술을 이용해 드레스덴 궁전 내부를 그대로 옮긴 것처럼 만든 전시공간

이 전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마이센 자기'다. 그는 중국과 일본의 도자기를 모방하면서 유럽에서 최초로 자기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한다. 그는 '마이센 자기'를 중국 황제에게 직접 보여주는 꿈을 꾸었지만 그 꿈을 이루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일본의 자기, 중국의 관음상, 청화백자, 식기 등을 그대로 모방한 아우구스투스의 마이센 자기를 보면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예술을 향한 그의 동경, 혹은 예술마저도 자신의 정복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그의 야욕.

이 전시의 제목은 '왕이 사랑한 보물'이다. 당연히 화려한 보물이다. 우리 눈에 이런 화려한 문화가 보여진다는 것은 분명 축복이다. 하지만 왜 이런 화려한 문화를 감상하면서도 왜 자꾸 '딴지'를 걸고 싶어질까?

'강건왕 아우구스투스의 꿈'이라고 하지만 그 꿈은 성군(聖君)의 꿈이 아니었고 알렉산더 대왕처럼 동서양을 문화로 아우르려는 꿈이 아니었다. 지배자임을 뽐내고 싶어하고 문화마저도 정복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당시 절대 군주의 생각이 고스란히 '꿈'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것이다.

▲ 일본 도자기(왼쪽)를 모방해 유럽에서 최초로 나온 도자기가 된 마이센 자기(오른쪽)

그런 점에서 이번 전시는 정말 한 번은 다녀갈만하다. 특히 아우구스투스가 왕으로 있던 시대의 유럽 역사를 살짝 알고 가면 더더욱 이 전시의 아름다움은 물론 바로크 문화의 그림자까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드레스덴을 18세기 유럽 바로크 예술의 중심지로 이끌었던 아우구스투스의 보물들을 통해 유럽의 자부심이 어디에서 나오는 지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바로크 예술은 화려함의 끝을 달렸지만 꽃이 화려함은 결국 질 때를 의미한다고 하지 않던가. 아우구스투스 사후 '7년 전쟁'이 터지면서 각 나라들은 부족한 예산을 메우기 위해 보물들을 팔아치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왕과 귀족의 끝없는 사치와 허영은 마침내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불러일으킨다. 화려함의 끝은 이처럼 비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