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 들여다 보는 도시조명 이야기] 상하이의 밤, 현란한 불빛 단상
[문화로 들여다 보는 도시조명 이야기] 상하이의 밤, 현란한 불빛 단상
  • 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 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 승인 2017.09.27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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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 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최근엔 여행을 다니다 밤이 아름다운 도시를 만나는 건 흔한 일이다. 직업 때문인지 나에게 있어 파리의 이미지는 시간마다 반짝거리던 에펠탑과 루브르 박물관 앞 광장의 유리 피라미드이다.

옛날광원으로 역사의 때를 부드럽게 비추는 루브르 궁전을 배경으로 도도하게 차가운 빛을 담고 있던 유리 피라미드의 대비는 매우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크리스마스 시기, 백화점의 조명장식들, 샹제리제 거리의 빛의 조형물은 그저 장식이 아닌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그보다 조금 더 가까운 나라 싱가폴의 야경은 자연지형과 사람의 노력이 만들어낸 장관이라고 말 할 수 있겠다. 동그란 형태의 싱가폴 강- 인지 바다인지 - 을 따라 늘어선 마리나 베이 샌즈와 같은 랜드마크들과 고층건물들의 밀도가 만들어 내는 야경 그리고 가든즈 바이 더 베이, 헬릭스다리 등 저마다의 특색이 좋은 조화를 이루고 어디에서 어느 방향으로 보아도  파노라믹 야경을 즐길 수 있다.

야간경관을 위하여 빈 사무실도 불을 켜두게 한다는 것을 보아도 야경을 통해 싱가폴이 경제적 혹은 도시이미지 향상 면으로 얻는 이익이 작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상하이의 야경도 상하이를 여행한 사람들은 한번쯤 볼 만하다고 이야기 한다. 한번쯤... 도시의 야경은 한번쯤 보기위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 도시에 사는 사람에게는 매일 보아야하는 모습이고 오래 머무는 관광객 혹은 자주 그 도시를 방문하게 되는 사람들은 해가 지면 매번 접해야하는 광경일텐데 한번쯤만 볼 만하면 두 번 째부터는 보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인지 궁금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가서 보아야겠다는 시도를 안 한건 누구도 그것만을 위해서 상하이에 가라고 권하지는 않는 주변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긍정적인 의견을 내는 사람이 드물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빛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는다. 울긋불긋 조화롭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색전구의 나열에도 찡그리는 사람보다는 긍정적인 표정을 짓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인 것이다.

최근 중국에 갈 기회가 생겨 짧은 여정에도 상하이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하여 야경을 볼 기회를 만들었다. 얕은 정보에 상하이를 푸동지역의 모습으로 한정 했었던 나의 오해를 반성하며 왜탄지역의 옛건물들, 프랑스 식민지 시절의 건물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역시 오랜 역사의 도시가 주는 동질감에 처음이라는 생각조차 잊어버렸다.

아담하고 세련되게 디자인된 음식점, 카페들이 모여있는 신천지엔 유럽풍의 가로등들이 조화롭게 전경을 형성하고 정갈하고 온화한 빛을 내며 여행자의 발길을 머물게 한 도시 상하이. 개발논리로는 설명이 안되는 도심 중앙의 정안사를 보며, 하루만 머물도록 한 일정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해가 지면서 푸동지역의 초고층 건물들이 하나씩 조명이 들어오고 하늘의 색이 변하면서 하나씩 낮과는 다른 모습의 건물들로 변해갔다. 때마침 일요일이라 실내에서 나오는 빛은 전무함에도 불구하고 그야말로 건축물 조명의 종합선물세트라고 부르고 싶을 만큼 다양한 질의 빛이 다양한 방식으로 건물을 표현하고 있었다. 실내의 천정면을 이용한 건물, 커튼월의 구조물에 조명을 설치한 건물, 중간부의 기계실을 이용한 건물 등등.

아마도 내가 일을 하면서 머리속에서만 그려보았던 방식들이 동일하지는 않아도 비슷하게 실현되어 있는 장으로 보고 있노라니 조명의 참고서를 들여다보는 기분이었다. 조금이라도 조명에 관심이 있어 밤에 아름다운건물을 유심히 본 사람들이라면 각각의 방식들이 내는 다양한 효과를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싱가폴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건축물들의 밀도와 높고 낮음이 만들어내는 스카이라인의 변화는 충분히 상하이의 야경을 아름답다고 표현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지나치게 높은 해상도의 미디어 파사드, 공원을 대낮처럼 만들어 줄만큼 크고, 낮게 설치된 전광판... 이런 것들은 아직 환경이나 사람을 배려하는 수준에 닫지 않은 그들의 현실이라고 이해하며 눈감아 줄 용의도 있었다. 

밤이 깊어가며 황푸강의 수면은 점점 더 검어진다고 생각될 무렵 믿기 어려운 장면이 펼쳐졌다. 갑자기 모든 건물들이 강변을 향하는 도화지가 되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다양하게 건물의 특징을 드러내던 조명계획 대신 현란한 색과 움직임. 외국인으로서는 의미를 알 수 없는 글씨들. 어마어마한 양의 빛의 폭탄이 하늘로, 공기 중으로, 황푸강으로, 나의 눈으로 공격하는 느낌이었다. ' 과한 빛'이 환경을 얼마나 왜곡하고 사람 눈을 얼마나 피로하게 하며 도시 이미지를 오해하게 하는지 실로 놀라울 따름이었다.

용이 올라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상하이 타워 조명을 설치, 시공한 기술자를 만날 기회가 생겨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금의 상황이 조금 이해가 되었다. 더블스킨으로 이루어진 건물의 조명은 일차적으로 내부에서 나오게 되는데, 이 외에 중간중간 투광기가 밖을 향해 칼라빛을 낼 수 있도록 설치되었고 상징적 수직공간엔 움직임을 표현할 수 있는 미디어 조명을 매달았다고 했다.

그 볼륨과 형태만으로 야경의 주인공이 될 만한 건축물에 왜 그런 가벼운 빛의 제스츄어가 팔요했는지 물어보자 원래의 디자이너는 중간에 쫒겨나고(?) 시공자가 발주처가 원하는대로 시공을 했다는 답변이었다.
 
상하이의 현란한 조명쇼는 짐작컨대 강력한 힘의 적극적인 개입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모든 건물이 일제히 그림을 그려댈 수는 없다. 각 지자체에서 야간경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규제의 자를 들이대야 하는 상황에 회의감을 갖고, 주변의 빛이 과해지다 보면 자정작용이 생겨 조화를 이루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힘의 개입이, 규제가 얼만큼 오랫동안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가졌었다.

사실이 어떠하던 어쩌면 상하이 야경의 문제는 빛이 드물었던 시절 만들어진 룰이 사회와 기술의 변화를 못 따라와서 생긴 결과일 수도 있다. 또한 아무도 그로 인한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고 목소리를 내지 않은 - 혹은 피해를 입는지도 모르고 있는 - 결과일 수도 있다. 

나는 상하이의 야경이 결국 좋은 방향, 사람과 환경을 위하는 방향으로 변화되어 가리라고 믿는다. 최근 중국의 환경감독이 역대 최대 규모의 환경단속을 시행한다는 뉴스를 접했다.

지금은 대기오염에 대한 환경감찰이라고 하나 언젠가는 빛과 관련하여 사람의 건강을 염려하여 조도, 휘도에 대한 감찰도이루어지고 식물이나 동물에 대한 피해도 감찰하는 시간이 오리라 생각한다. 의사결정과 실현이 일사천리로 일어나는 중국의 국제도시 상하이의 야경이 빠른 시일 내에 변화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