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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칠용 근대황실공예문화협회장/ 한국공예예술가협회장 “해외가 인정하고 있는 우리 전통공예, 정부의 관심 필요하다”
“규제와 무지함 계속 보이는 현실에서는 공예의 미래 없어, 심각성 알아야한다”
2017년 09월 28일 (목) 11:18:35 이은영 기자/임동현 기자 press@sctoday.co.kr

카메라를 들고 취재를 하던 한 기자가 있었다. 어느날 그는 나전칠기 공방을 취재하러 간다. 그 곳에서 그 기자의 인생이 바뀌었다. 공예의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는 지금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 공예가 올바른 길을 가야한다는 것을 외치고 또 외치고 있다.

최근 이태리 한국문화원에서 우리 전통공예가 전시됐고, 바티칸 성당 내에 우리의 나전칠화가 봉헌됐다. 이처럼 우리 전통공예가 해외에서 점점 관심과 인기를 모으고 있다. 그럼에도 국내 공예 환경은 열악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당최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그의 한숨이 인터뷰 곳곳에 묻어나는 이유다.

그는 그동안 문화재청과 문체부에 쓴소리를 하는 그야말로 ‘요주의’인물로 찍혀왔다고 했다.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이며 (사)한국공예예술가협회장과 (사)근대황실공예문화협회장을 겸해서 20 여년간 봉사해 오고 있는 그는 50년 가까이 대한민국의 문화운동과 전통공예를 위해 평생을 바쳐왔다.

그런 그이기에 이 회장은 현장의 목소리를 그 누구보다 많이 깊숙이 들어 왔다. 어떤 날은 하루에도 수십명의 공예인들이 그를 찾아와 그에게 고충을 토로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런 현장의 목소리와 그 자신 젊은날부터 가졌던 반항의식이 결합되면서 그가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정부에 앞장서 볼멘 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그에게 붙여진 별명은 

그 결과 문화재청에서 문화재위원으로 그를 위촉해 놓고도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기피하고 있다고 한다. 늘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이 회장을 공직자들이 반길리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월남전에 참전했다 돌아오면서 그가 가져온 카메라와 녹음기가 뜻하지 않게 그를 기자직에 입문하게 했지만, 얼마가지 않아 옻칠의 오묘함에 빠져서 카메라와 녹음기를 팔아 자신을 빠져들게 만들었던 옻칠 장인을 도와 공장을 차렸던 그는 이후 교과서가 될만한 옻칠과 나전에 관한 책을 집대성 한다. 학자도 아닌 그가 일본과 우리나라 전국을 돌며 장인들을 만나 채록하고 수집한 자료들을 토대로 지금까지 공예와 관련된 책만도 87권을 발간했다.

이 회장의 이력은 상당히 독특하다. 고교 졸업 후 집을 나와 휴전선 부근 김화와 화천에서 서점을 운영하면서 당시 박정희 정부의 군대내부의 문제를 꼬집은 소설을 출간해 고초를 겪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는 지금도 작은 키에 다부진 체격만큼이나 두둑한 배짱으로 이런 일들을 정면돌파 해왔다.

이 회장은 우리 공예를 세계에 널리 알린 일등 공신 중 한 명이며 지금도 공예의 발전을 외치고 있는 이다. 하지만 그가 보기에도 공예의 미래는 여전히 첩첩산중이었다. 그가 전하는 공예의 현실에 문화재청과 문체부 관계자들은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 이칠용 근대황실공예문화협회장/ 한국공예예술가협회장

황실근대공예문화협회 주관으로 주 이탈리아 한국문화원에서 '나전과 옻칠 그 천년의 빛, 이탈리아를 밝히다'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를 소개하자면

원로부터 무명까지 33명의 장인,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옻칠과 나전칠기를 집대성한 전시고 유럽예술세계에 나전과 옻칠 문화의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시도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대한민국 명장, 예술문화명인, 노동부 기능전수자들, 무명 작가들의 나전과 옻칠 공예의 멋을 전하고 있는데 나전칠기를 확산시키는 비전을 제시한 것은 성공했다고 본다.

바티칸에 우리 대형 벽화가 봉헌됐다. 이를 축하하는 의미도 이번 전시에 있는데

한국 천주교 230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바티칸에서 열렸다. 바티칸박물관의 특별 기획전이었는데 거기에 가로9미터, 세로 3미터의 초대형 나전칠화 ‘일어나 비추어라’가 선보였다. 3명의 작가들과 전문가들이 1년 이상 공을 들여 만들었는데 아마 지구상에서 가장 큰 나전칠화일 것이다. 우리의 전통 공예인 나전칠기가 바티칸에 들어갔다는 것이 알려지는 것으로 세계화가 이미 시작됐다고 본다. 전 세계 순회전시도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경사스런 일이 있었는데 이태리 현지 바티칸 전시 개막식에 참석하신 후 SNS를 통해 여러 문제를 지적하셨다.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바티칸에서 전시만 하는데 10억이라는 돈이 들었다고 한다. 어디에 10억이 든다는 건가? 대여료가 들어갈 이유가 없는데 그 10억이라는 돈이 어떻게 계산되어서 나온 건지 궁금하다.

하지만 정말 참을 수 없는 것은 장인을 아예 무시하는 모습이었다. 개막식에서 정작 작품을 만든 장인들은 소개조차 되지 않았다. 행사를 지원한 단체장과 몇몇 국회의원들 중심으로 돌아갔다. 테이프커팅식에도 장인들은 한 명도 그 자리에 서지도 못했고 작품을 총지휘한 신부님도, 심지어 수녀님도 참여시키지 않았다.

이 정도면 푸대접이 아니라 완전히 무시하는 거다. 신부님까지 배척하는 걸 보면 뭔가 암투가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까지 들게 하고 있다.

우리의 나전칠기 공예가 이처럼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음에도 정작 국내에서는 외면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너무 관심이 없다. 일반적으로 나전칠기는 ‘고가’라는 편견이 있다. 정부에서도 나전칠기에 대한 관심이 없다. 사주지도 않는다. 더 큰 문제는 나전칠기 공예에 관한 대부분의 책들이 오류로 도배가 됐다는 것이다. 몇십년 전부터 지적했는데도 아무것도 고쳐지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어떤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겠나? 그것 때문에 문화부, 문화재청 관계자들과 엄청 싸우기도 했다.

그래서 아마 정부 측 사람들이 나를 많이 싫어할 것 같다(웃음). 항상 반대하고 틀렸다고 목소리를 냈으니.

한국공예예술가협회를 맡고 있으면서 근대황실공예문화협회장도 겸하고 있다. 근대황실공예문화협회라는 이름이 예사롭지 않은데, 어떤 연유가 있을 것 같다

2008년도에 만들게 됐다. 대한제국 이후로 황실에서 사용한 최상의 공예작품을 만드는 작가들로 구성을 했다. 이전에 이 작가들을 데리고 프랑스와 영국 등으로 전시를 다녔는데, 작품은 관심을 가지는데 가격이 비싸다고 구매를 하지 않더라. 그렇지만 황실의 문화를 높게 평가하더라. 그래서 우리도 황실의 이름을 붙인 우리 공예를 선보였더니 바로 브랜드 가치가 높아졌다.

우리 공예품도 국가 문장을 붙일 필요가 있고 그러면서 경쟁을 붙일 필요가 있다. 황실 브랜드로 우리가 실험을 해봤기에 이런 내 주장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이다. 자꾸 해외로 나가서 세계화를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잡지사 기자를 하셨고 잡지를 발간하기도 했는데

고등학교 졸업하고 월남전에 참전을 했다. 제대를 했는데 마침 나에게 카메라가 있었다. 카메라 하나 있다는 이유로 그 자리에서 바로 잡지사에 취직이 됐다(웃음).

그리고 나서 취재를 다녔는데, 어느날 나전칠기 공방을 가게됐다. 거기에 매료되서 나전칠기를 배우고 잡지사도 그만두고 있던 카메라도 팔고 없는 돈 구해서 ‘한미공예사’를 차렸다. 그때는 참 잘됐다. 일본에 수출하면서 엄청 잘 됐던 시절이었다.

(이 회장은 이 말을 하면서 오래전 신문 스크랩을 내놓았다. 한 매체에서 ‘고졸 신화’를 일궈낸 이들을 다룬 시리즈 기사였는데 ‘한미공예사 이철용씨’라는 기사가 큼지막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나전칠기를 제대로 알리자는 생각에서 책도 쓰고 잡지도 발간했다. 그런데 역시 광고가 문제였다. 나전칠기를 다루다보니 읽는 사람도 많지 않고 그런 잡지에 광고를 줄 이가 누가 있겠나. 결국 그렇게 문을 닫았지. 한미공예사도 그 무렵에 없어졌고. 그러다가 1994년에 공예예술가협회 첫 전시를 여의도에서 열면서 공예를 진흥시키는 활동을 다시 하게 된 것이다. 

여러 정부를 겪었지만 단 한 정부도 공예에 관심을 가져준 적이 없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정부 관계자들과도 엄청 싸웠다. 솔직히 지금 나도 협회를 떠나고 싶지만 내가 떠나면 협회가 문을 닫아야하기에 떠날 수도 없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공예를 하는 예술가들은 여전히 많이 남아있다. 

   
▲ 공예에 대한 설명을 하는 이칠용 회장. 그의 사무실 벽면에는 각종 자료들로 꽉 차 있다.

그간의 어려움이 느껴진다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공예는 이제 끝났다고 봐야할 것 같다. 공예는 산업이라고 볼 수 없고 가내수공업이다. 이젠 소비자들도 공예품과 공산품을 구별하지 못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예를 살려야하지 않은가?

내가 몇십년간 이 일을 해왔잖나. 나름대로 대안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알려면 현장을 알아야하고 공예인들을 알아야한다. 그런데 다가가지도 않으면서 무지함과 무관심만 보일 뿐이다.

공예에 대한 정부의 무지가 드러나는 부분이 있다. 공예품을 만들어야하는데 만드는 것을 법에서는 ‘제조업’이라 한다. 그런데 제조업은 도시에서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 50평이 넘으면 안된다. 나이트클럽 같은 곳은 허가해주면서 공예는 공장지대로 가야한다. 

지금 우리 공예인들이 도심에서 작업하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불법이다. 다만 눈감아주고 있는 것 뿐이다. 서울 근교에도 지금 안 쓰는 창고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공예가들이 못 들어간다. 그건 법에 의해 농수산물 창고로만 이용될 뿐이다. 제조업이 마음대로 들어간다는 것은 결국 불법이다.

이게 왜 그런가? 현실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예인들의 상황을 보고 법을 만들어야하는데 그렇지 않고 규제만 강하게 하니 엉뚱하게 피해를 입는 것이다. 법이 특히 전통공예의 발전을 막고 있다. 

이런 제도가 계속 유지되는 한 공예진흥법이 만들어지고 (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활동을 한다고 해도 공예가 발전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진흥원도 어떤 상황인지를 명확히 모르고 있으니(한숨). 토론을 하려해도 말을 잘 들으려하지 않으니 참 어렵다. 

그렇다면 대중 속으로 들어가야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공예체험 교실이나 문화센터 강의 등 각종 행사를 통해서 대중에게 어필하는 방법도 있을 것 같은데

그걸로는 공예인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 현장체험 행사하면서 공예품 몇 점 팔고 하는 것으로는 생활이 어렵다. 직접 자신들이 판매를 한다해도 팔리는 걸 해야 사업이 되지 팔리지 않는 것으로 사업하겠다고 하는 것은 오히려 망하는 지름길이다.

각 지역에 스며들게 만들려해도 아까처럼 규제가 심한 상황에서는 힘들다. 공예촌을 만들자는 이야기도 나왔는데 공예촌을 만들면 서로 사람을 빼가려해서 싸움이 일어난다.

문화센터 강의를 해도 마찬가지다. 지금 센터에 공예 강의가 점점 줄고 있다고 한다. 왜? 사람이 안 오기 때문이다. 대부분 악기나 춤을 배우지 공예는 안 한다. 대중성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공예를 하지 않으려한다. 지금 젊은 사람들은 배우면 바로 써먹을 수 있는 것을 선호한다. 그런데 전통공예는 그게 가능하지 않으니까 배우기를 꺼려하고 어려워하는 거다. 금방 배워 금방 돈 벌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선 힘들다.

문하생을 둔다는 것이 이전처럼 쉽지 않다. 이제는 문하생을 둬도 인건비가 있어야한다. 안 그러면 바로 고발이 된다. ‘그저 배우기만 하겠습니다’라고 하는 친구들도 결국은 그렇게 하더라. 이런 문제들이 있기에 무형문화재 분들도 제자를 두기를 꺼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동안 해외 전시도 많이 한 것으로 아는데

파리 국제박람회와 낭시 국제박람회를 비롯 파리 메종&오브제 파리, 이태리 밀라노 등에 수십 차례  참가해 유럽인들에게 한국의 전통공예문화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알려왔다.

그런데 어느날 국가에서 이에 대한 지원마저도 끊었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이번 바티칸 한 곳에서 하는 전시에만도 10억이라는 돈을 지원해 주는데, 우리같은 경우 몇 억만 지원을 해줘도 훌륭하게 행사를 치루고 올 수 있다. 그래서 앞서 내가 바티칸 전시 지원액에 대해 의문을 가진 거다.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는가?

솔직히 지쳤다. 접었다. 물려받을 사람이 있다면 빨리 물려주고 쉬고 싶다. 문화부나 문화재청의 젊은 사람들은 무슨 죄인가. 이 사람들도 모르는 상태에서 나에게 한소리를 듣는 것이 아닌가. ‘뭔가 생기니까 싸운다’고 오해 많이 했을 것이다. 나도 답답하니까 그런 거지. 젊은 친구들에게는 사실 참 미안하다.

지금 유럽 관광지를 가면 다 중국 공예품들이다. 중국이 그래서 공예가 잘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한 도시에서 소량이 아닌 대량으로 도매로 판매한다. 우리도 그래야한다고 내가 90년대부터 이야기했는데 반응이 없다. 공예 분야가 참 심각하다는 것을 문체부와 정부가 알아주길 바란다.

한 가지 이 자리에서 제안을 할 것이 있다. 공예박물관이 만들어 져야하는데, 얼마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지어지면서 덕수궁을 공예인들에게 내어 달라고 했지만 결국 무산됐다. 그래서 국립민속박물관에 공예관을 만드는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미술은행처럼 공예품은행이 만들어져야 한다. 민속박물관이라고 해서 무조건 옛날 것만을 수집할 것이 아니라 근현대 작품도 꾸준히 수집해야 한다. 

민속박물관은 그 나라의 문화를 다 담을 의무가 있다. 우리 공예를 안아야하는 곳이 바로 민속박물관이다. 반드시 근현대 예술도 담아낼 필요가 있다. 민속박물관 측이 참고를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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