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다시 화려해진 부산국제영화제, 그러나 비어있는 한 자리
[기자수첩] 다시 화려해진 부산국제영화제, 그러나 비어있는 한 자리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7.10.16 16: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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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지석 수석프로그래머가 만들어 놓은 부산국제영화제였기에 다시 화려함을 되찾았다

확실히 지난해와 다르다. 지난 12일 개막한 부산국제영화제 말이다. 지난해 영화인들의 잇단 보이콧으로 위기를 맞았고 올해도 잇단 내홍 속에 결국 김동호 이사장과 강수연 집행위원장이 '영화제 폐막 후 사퇴'를 선언하며 우여곡절 끝에 개막을 했지만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스타들의 방문이 잇달았고 상영작들도 호평을 받고 있다.

해운대 비프 빌리지는 연일 사람들이 몰렸고 마침내 지난 15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영화제를 찾았다. 현직 대통령이 처음으로 영화제를 찾자 영화계에서는 '영화제 정상화'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물론 부산국제영화제의 정상화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최소한 대통령이 방문했을 정도면 정상화가 그리 먼 일만은 아닐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충분히 가질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이렇게 화려해진, 아니 예전의 인기를 다시 찾아가는 듯한 부산국제영화제이지만 군데군데 빈 곳이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 영화제를 이야기하려면 다시, 지난 5월 갑작스럽게 타계한 故 김지석 수석프로그래머를 이야기해야할 것이다.

▲ 지난 15일 부산에서 '김지석의 밤'이 열렸다 (사진제공=부산국제영화제)

고레에다 히로카즈, 바흐만 고바디 등 아시아의 감독들이 작품 혹은 심사위원으로 부산을 찾았지만 실제적인 이유는 바로 故 김지석 프로그래머를 추모하기 위한 것이었다. 실제로 이들은 부산에 온 이유를 말할 때 모두 김지석이라는 이름을 이야기했다.

바흐만 고바디 감독은 "모든 이들을 형제 자매처럼 동등하게 대한 겸손한 분이며 영화제의 심장"이라고 그를 추모하기도 했다. 회고전을 연 노배우 신성일도 "회고전을 위해 만난 사람이 김지석 프로그래머"라며 "그를 위해 묵념하는 시간을 갖자"고 말한 바 있다.

사실 그는 부산국제영화제의 산파 역할을 한 사람이면서 부산국제영화제를 '아시아 영화의 축제'로 만들었으며 또한 마지막까지 영화제와 영화계의 갈등을 중재시키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었다.

그의 노력으로 인해 지난해 여러 악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영화인들이 부산국제영화제에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고 그 결과 영화제가 치러질 수 있었다. 만약 김지석 위원장의 노력이 없었다면, 아시아 영화인들의 연대가 없었다면 어쩌면 부산국제영화제는 지난해 완전히 초라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왔을 지도 모른다. 

특히 중동 영화인들이 부산을 '영화의 해방구'로 여기게 된 것도 김지석 프로그래머의 공이 컸다. 자국의 심한 검열로 상영이 어려워진 영화를 김 프로그래머는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소개했고 이를 통해 중동 영화들이 우리들에게 선을 보였고 동시에 감독들은 '적어도 부산은 우리의 영화를 상영한다'는 희망을 가지게 했다.  

지난해 폐막작으로 상영된 이라크 영화 <검은 바람>도 바로 이라크 자국에서 상영할 수 없었던 작품이었다. IS에 의해 납치된 후 천신만고 끝에 돌아오지만 강간으로 인한 임신 사실이 알려지면서 아버지와 마을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을 받게 되는 여인의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은 자국의 상영 금지에 대한 항의와 함께 그에 필적할만한 '표현의 자유 제한'을 지속하고 있는 한국 정부에 대한 도전의 메시지였다. 그리고 그것이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를 살린 힘이 됐다.

그 힘을 준 이가 올해 없다. 칸느에서 불귀의 객이 됐다는 소식은 영화계에 큰 충격을 줬고 그가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갈등을 극복할 지가 과제가 됐다. 영화제는 올해 '지석상'을 새로 만들고 개막식 때 그를 추모하는 시간을 마련하기도 했으며 15일 '김지석의 밤'을 열고 그에게 보관문화훈장을 전달했다. 도종환 문화체육부장관이 김지석 프로그래머의 아내에게 직접 훈장을 전달한 자리였다. 

기자는 지난 부산국제영화제 기자회견 당시 중동이나 제3세계 영화들의 비중이 많이 약해지고 일본, 중국의 흥행성 있는 영화들이 주를 이룬 것을 보며 '그의 빈 자리가 프로그램에서도 보인다'라고 쓴 바 있다.

솔직히 그 생각은 지금도 가지고 있지만 한 가지 달라진 점은 있다. 이들 영화들을 마음놓고 부산에서 보게 된 것도 과거의 그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부산국제영화제는 계속 그의 빈 자리가 남을 지도 모른다. 과연 그만큼 아시아 영화인들의 신망을 받을 이가 다시 나올지, 앞으로 또 다른 문제가 생길 때 아시아 영화인들의 손을 잡게 할 매개체가 될 이가 누가 있을지 막막해지는 상황에서는 말이다. 부산은 화려하다. 그러나 한 자리는 허전하다. 그렇게 부산국제영화제가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