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정의 발레인사이트]낯선 여인의 걸음걸이-안나 카레니나
[김순정의 발레인사이트]낯선 여인의 걸음걸이-안나 카레니나
  • 김순정 성신여대 무용예술학과 교수, 한국예술교육학&
  • 승인 2017.10.29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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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정 성신여대 무용예술학과 교수, 한국예술교육학회장

수업을 마치고 이른 저녁 집에 돌아왔다. 현관 우편함에 정갈하게 꽂혀 있던 춤지 500호 기념호를 보았다. 반갑게 꺼내 품에 안고 집에 들어와 축하 반 설레는 마음 반으로 펼쳐 보았다.

근래 들어 밤이 길어지고 있어 좋다는 생각을 하던 차인지, 1966년 전혜린이 쓴 <밤이 깊었습니다>라는 육필원고 속 “우리들 인간은 너무나 불완전하기 때문에 밤이 절실히 필요 합니다”라는 구절이 눈에 들어왔고 지친 나의 몸과 마음을 부드럽고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그러면서 오래전 자주 드나들며 위안을 받았던 모스크바의 트레차코프 미술관 주변 이국적인 밤풍경과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던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트레차코프 미술관에는 발레리나 이다 루빈쉬타인과 안나 파블로바도 있어 반가웠다. 그러나 더욱 내 눈을 강렬하게 사로잡은 그림은 이반 크람스코이의 <낯선 여인의 초상>이었다. 최근 나온 책 <소곤소곤 러시아 그림이야기>에도 나오는데, 제목은 <미지의 여인>으로 되어 있다. 책에는 안나 카레니나와 브론스키의 첫 만남에서 안나가 입고 있던 검은 벨벳드레스가 <미지의 여인>과 비슷한 느낌이라 했다.

▲안나 카레니나 초연(1971) 안무, 출연-마야 플리세츠카야

<안나 카레니나>를 쓴 톨스토이(1828-1910)는 19세기 러시아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문명비평가, 사상가다. 한국에서는 1900년 즈음부터 최남선 ,이광수 등에 의해 톨스토이가 소개되면서 병역거부와 국가주의에 대한 절대적인 반대 등 급진적인 사상은 배제된 대신 비정치적 인격수양, 개량된 기독교 윤리와 같은 교양서로 읽히게 되었다고 한다. 톨스토이는 19세기 제정 러시아 시대의 농민과 귀족, 농촌과 도시, 토지문제, 농노제 등에 대한 깊은 성찰을 했고 자신의 소설에도 이를 반영하였다.

<안나 카레니나>에 나오는 인물 레빈은 톨스토이의 사상을 대변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결국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부부는 레빈과 키티이고 파국으로 치닫는 연인은 안나와 브론스키다.

안나는 남편과 아이가 있는 상류층 여인이고 브론스키 백작은 귀족 장교이다. 안나의 올케 여동생인 키티는 브론스키를 사랑하여 레빈의 청혼을 거절했으나 안나의 등장으로 인해 브론스키가 자신을 모른 체하자 심한 충격으로 병을 얻었다가 겨우 회복을 한다. 레빈은 귀족이지만 농촌으로 가서 공동체를 일구었고, 키티로부터 한 번 거절당했으나 키티를 잊지 못해 다시 찾아가 구혼을 하고 결혼에 성공한다.

<안나 카레니나>가 출판된 해는 1877년. 발레 역사로 본다면 같은 해에 <백조의 호수>가 모스크바에서 초연되었으나 실패했고, <라 바야데르>는 당시 수도인 쌍트 뻬쩨르부르크에서 성공을 했다. <안나 카레니나>에도 나오지만 두 도시의 문화적 분위기는 상당히 다르다.

<안나 카레니나>는 안나와 키티를 비롯한 다양한 인간 군상의 심리묘사가 쉽고도 자세히 나와 있어서 고전은 난해하다는 두려운 마음을 버리고 두꺼운 책을 다 읽어낼 수 있었다. 인상적인 부분은 부부가 된 레빈과 키티가 서로의 불만과 생각의 다름을 대화를 통해 하나씩 좁혀나가는 어렵고도 지루한 시간에 대한 치밀한 묘사였다.

▲안나 카레니나 역-마야 플리세츠카야, 카레닌 역-파데예체프

또 하나 작은 부분이지만 안나 카레니나를 묘사할 때 걸음걸이의 매력을 중요한 모티브로 삼았다는 점에서 작가의 심미안이 남달랐다는 걸 알 수 있다. 걸음걸이를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톨스토이가 그린 안나 카레니나의 많은 것이 그가 묘사한 걸음걸이에 담겨 있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발레로 만든 안나 카레니나는 소설보다 걸음걸이나 행동으로 인물의 성격을 나타내는데 제격이라고 판단된다.

그래서 올해11월 초 상연될 <안나 카레니나> 공연이 19세기 러시아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톨스토이의 원작을 어떻게 그리고 있을지 사뭇 궁금하다. 그동안 쉐드린 작곡, 플리세츠카야가 안무한 1971년의 볼쇼이발레단 작품만 생각했지만, 이번 국립발레단에 의해 예술의 전당 오페라 극장에 오르는 <안나 카레니나>는 독일 출신의 크리스티안 스푹이 2014년에 안무한 작품이다.

스푹은 현재 스위스 취리히발레단의 예술감독이다. 스푹의 <안나 카레니나>는 2년 전 모스크바의 스타니슬라브스키 네미로비치 단첸코 극장 벽에 광고로 붙어 있기도 했다. 까다로운 러시아 관객에게도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내친 김에 다른 안무가들의 <안나 카레니나>를 살펴보니 보리스 에이프만이 2005년에 안무한 작품이 있고, 알렉세이 라트만스키가 플리세츠카야의 초연안무를 새롭게 다시 안무한 적도 있다.

2017년 가을 한국의 무용수들이 복잡하고 깊고 미묘한 인간심리를 발레로 승화한 <안나 카레니나>를 어떻게 소화하여 무대의 언어로 풀어낼 것인지 기대를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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