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형미 솔항공여행사 대표 "그림은 여행과 같다. 끊임없는 풍경과 상상력을 자아내기에"
[인터뷰] 김형미 솔항공여행사 대표 "그림은 여행과 같다. 끊임없는 풍경과 상상력을 자아내기에"
  • 이은영 편집국장
  • 승인 2017.11.10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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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외출’전으로 8일~13일까지, 미술세계 갤러리서 정식 화단 데뷔한 한국관광업계 대모
▲김형미 솔항공사 대표(사진=정영신 사진가)

농협중앙회 공채 15기 •수필로 등단 • KBS1 TV 주부리포터 • 한국화 그룹 「아연회」 회장 • 고려대학교 외래교수 • 서울특별시 관광협회 이사 •여행사 연합회 회장 •대한민국 신지식인에 선정된 김형미 솔항공여행사 대표의 대충 추린 이력이다.

뒤늦게 여행업계에 뛰어들었지만 그 누구보다도 충실한 여행을 위해 20여 년 달려온 그가 이제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서 제2의 삶을 시작했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그 이력의 뒤에는 그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노력해온 그의 성실성과 열정이 자리하고 있다. 

지금도 간간이 그런 행태를 볼 수 있지만 ‘먹고 놀고 뛰자’판의 관광버스 여행에 그는 우리나라 여행계 최초로 문화·역사 해설 강사를 도입해 여행의 질을 향상시켰다. 

그의 이런 시도는 그냥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 자신이 시와 수필, 그림을 감상하기 좋아하고, 직접 작품을 쓰고 그리는 문화예술인으로 삶의 한 부분을 채워왔기 때문이다.

그는 2008년에 청산도(전남 완도군 소재)에 있는 KBS 드라마 ‘봄의 왈츠’ 세트장을 경영하면서 문화를 여행에 채워 넣었고, 몇 해 전에는 북한산 둘레길을 청계천과 연결해 삼청동의 갤러리와 박물관과 경복궁, 세종문화회관이 이어지는 광화문까지 문화벨트를 만들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거기에 더해 여의도 선착장 유람선상에서 음악회까지 관람하는 프로그램까지 구상했다.

▲김형미, ‘생명’,118*118

‘화려한 외출’이라는 주제로 그는 동양화의 거두, 유산 민경갑 선생의 제자로 36년간 그려온 그림을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아 개인전을 연다. 오는 13일까지 인사동 미술세계갤러리에서다.

늘 여행을 다니면서도 온전한 자신만의 여행에 갈증을 느껴온 그는 이번 전시를 기해, 오롯이 자신을 위한 ‘일탈’을 하겠다고 단단히 결심했다. 그의 삶을 보면 한 순간도 제대로 쉰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 그가 자신을 위한 ‘힐링여행, 치유의 여행’을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그림과 함께 말이다. 전시를 앞 둔 이달 초 김형미 대표를 세종문화회관 인근에서 만났다.

▲ 김형미 솔항공사 대표 (사진=정영신 사진가)

이번 전시와 작품에 대한 소개 부탁한다.

자연을 담고자 했다. 기법에 있어서는 ‘여백과 스며듬’을 중요하게 다뤘다. 여백이 없으면서 여백을 표현한 것이 장점이라 할 수 있겠다. 흑백의 단조로움을 깨고 한국적인 맛을 살리려고 노력했다.

수묵화를 그리는데 있어 한지는 기본인데 천이나 질감 있는 종이, 모시들을 이용해 소재의 다각화를 시도 해봤다. 한국적인 재료를 이용해 작품을 제작하려고 하는데 아직은 나만의 작품을 찾지 못했다. 그림을 그리지 않을 때도 끊임없이 재료 연구와 작품 구상을 하고 있다. 

모시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해보니까 한지보다 훨씬 쉽다. 한지는 수정이 쉽지 않고, 삼투압 현상이 심해 쉽게 번져서 이를 막기 위한 정교한 기술이 필요하다. 이에 반해 모시는 수정하기 용이하다.

이번 전시가 첫 전시라는 것 외에 또 다른 의의를 두자면

그려놓은 그림을 볼 때마다 마무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늘 해왔다. 어느덧 작품 활동 한지 37년 됐다는 것에 스스로 놀랐다. 그동안 일로써 관광 분야에 몰두를 해왔다. 내 나이가 75세인데 자아를 찾고, 에너지와 명료한 정신이 있을 때 마무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이번 전시를 하게 됐다. 이번 전시의 주제가 ‘화려한 외출’인 것도 쉬운 말이면서 내게 큰 의미가 있다.

 ▲김형미,비상 108*90

늘 여행이라는 ‘화려한 외출’을 하지 않나?(웃음)

사실 일로써의 여행은 고행이다. 일이 아닌 여행, 참다운 나를 찾아가는 외출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화려한 외출’이라고 전시 주제로 정하게 되었다. 손님들과 함께 가는 여행은 여러 가지 신경 쓸 일이 많다보니 고행이다. 일을 마치고 들아오는 비행기에서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할 때가 많았다. 어느 날은 돌아온 공항에서 바로 혼자의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그렇게 다닌 여행이 힐링도 되고 다음 여행 프로그램을 짜는데 도움이 많이 됐다. 그 덕분인지 많은 사람들이 내가 짠 여행 프로그램에 대단히 만족해 한다. 시간적, 정신적 여유를 가지면서도 그 나라의 역사,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여행 프로그램을 만들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늦깍이로 그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젊은 시절에 전시회 공고 같은 것을 볼 때마다 가슴이 설레면서 전시회에 가고 싶은 생각이 크게 들었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서는 아이들과 함께 전시를 많이 다녔고, 그러면서 직접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중에 동아일보에서 문화센터 1기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평소 유산 민경갑 선생님(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의 그림을 좋아했는데 마침 문화센터 강사에 그 분이 계셨다. 문화센터에는 장관, 장군, 목사 등 다양한 분야에 분들이 오셨는데 이미 그림을 많이 그려본 분들이었다. 그들에 비하면 나는 백지 상태나 다름없었다. 그렇지만 매 수업을 빠지지 않고 열심히 나가다 보니 강사 분들이 반장도  시키셨다.(웃음)

그러다 문화센터를 그만 두신 유산 선생님을 따라 나와서 ‘아연회’라는 모임을 만들고 인사동에 사무실 하나 얻어서 자생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게 됐다. 그게 어느덧 36년이 됐다.

함께 공부한 사람들 중에는 각종 공모전에도 출품해 우수한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공모전에 출품을 하지 않았다. 정신적 부담을 가지기 싫어서 그랬던 거다. 그래서 여행사 일에도 더욱 몰두했지만 여행을 하면서도 모든 것이 그림으로 보였다. 그림과 여행을 접합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관찰력이 커졌다. 이번에 그림을 내놓은 것을 보니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웃음) 

▲김형미, 외출, 108*90

스승인 유산 민경갑 선생님은 이번 전시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시는가? 

선생님 말씀이 전시 때마다 꾀를 부리는데, 내 그림에서는 어딘가에서 툭 튀어나오는 돌발성이 있다고 하셨다.(웃음) 유산 선생님이 이번 전시에 축사를 써주셨는데 그림이 훌륭하다고 많은 칭찬을 해주셨다. ‘사업가이면서 언제나 성실했고, 따뜻한 품성을 가지고 있다’고 써주셨다. 오랫동안 봐 오시면서 느끼신 점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셔서 감사드린다.

작품을 보니 그 말씀을 하실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작품 중에 닭에게 뾰족구두를 신긴 것이 무척 재미있다

그런 거다. 내 스스로가 일의 속박에서 벗어나서 ‘자유’를 ‘자유롭게’ 표현하고 싶었던 거다.그러다 보니 작품 속에 알 듯 모를 듯 나만의 ‘자유’ 코드가 있다.(웃음)

통상 전시를 하면 도록을 만드는데, 특이하게 작품을 담은 달력을 만들었다

사람들이 도록을 받으면 그냥 꽂아 놓고 잘 보지 않는다. 그래서 적어도 1년은 두고 볼 수 있도록 벽걸이 달력으로 만든 것이다. 그런데 유산 선생님이 축사를 써주셨는데, 내 작품을 보니 달력에다 차마 축사를 못 넣겠더라. 귀한 축사를 넣기에 뭔가 부담이 되기도 했다. 

▲ 김형미 대표는 이번에 첫 개인전을 열고 화단에 데뷔했다(사진=정영신 사진가)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소질을 인정 받았을 듯하다 

다재다능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잘했다. 내가 잘한 것 보다도 선생님들께서 해보도록 많이 시키셔서 그렇게 했던 것 같다. 그림을 전공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으나 마음 한 켠에는 그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그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 아이들과 전시장을 많이 다닌 덕분인지 우리 아이들도 그림에 대해서 꽤 아는 편이다.

학교 졸업 후 은행원으로 서울 농협 본점에 들어갔다. 그 당시에는 신입사원 중에 여 사원이 3명밖에 되지 않았다. 일을 열심히 했었고, 그런 중에 여러 기회가 주어져서 방송 출연도 많이 하게됐다. KBS 1TV에서 최초로 주부 리포터로 활동하기도 했다. 대학교 특강도 많이 다녔다.이런 것들이 다 어렸을 적 선생님들의 격려의 힘이 컸던 덕분이라 생각한다.

▲김형미,  변주(1)

우리나라 여행계의 대모라 할 만하다. 국내여행업협회 회장도 12년이란 오랜 세월을 맡았고, 특히 국내 관광 문화를 바꾸는 획기적인 시도, 역사문화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여행계 입문과정도 흥미롭기도 하다

내 딸인 임수연 솔투어 대표이사 때문에 시작하게 되었다. 90년대 초에 여행이 활성화 되지 않았을 때인데, 적금 모은 것에 대출을 더해서 딸을 대만과 일본 등으로 여행, 연수를 보내준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나도 딸도 여행에 대해서 눈 뜨게 됐다. 그러던 중 딸이 불문과 출신에 영어를 잘해서 한 여행사에서 내 딸을 스카우트 했었다. 그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았고, 이후에 파트너를 찾아서 여행사를 따로 차렸다. 초기에 회사 운영에 돈이 많이 필요해서 돈을 대줬는데 그 회사가 그만 부도가 나고 말았다. 그러면서 여행업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져서 여행업에 뛰어들게 되었다. 

여행업에 종사 하면서 가족들 부양하는 일은 남편이 맡았기 때문에 나는 늘 좋은 여행을 해야겠다는 생각만 해왔다. 그래서 우리 문화유산에 좀 더 알아야겠기에 ‘박물관대학’에서 공부를 했고, 우리 문화유산 답사를 통해 우리나라를 제대로 알고, 알리고자 해왔다. 

당시엔 우리나라 사람들이 해외에 나가는 것은 하나의 과시였을 뿐이었다. 다른나라 문화에 대해 전혀 모르고 나가는 ‘어글리 코리언’이 너무 많았다. 국내여행은 거의 다 버스에서 ‘먹고 뛰는’ 형태였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내가 우리나라 최초로 차에 강사를 태워서 문화·역사 해설을 해주는 답사여행 프로그램을 도입한 거다. 이게 지금은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앞으로의 계획은

일에서 온전히 빠져 나와 ‘일탈’ 을 통해 느슨한 삶을 즐기고 싶다. 그동안 나를 위한 치유의 시간은 제대로 없었다. 회사 일은 이제 거의 손을 떼고 친구들과 등산도 다니면서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려 한다. 좀 더 자유롭게 그림도 그리고 내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살아가려 한다.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른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