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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수의 무용평론] ‘모래의 여자’와 ‘포즈발표회’-SPAF와 SIDANCE에서 발견한 두 여인
2017년 11월 13일 (월) 17:00:01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sctoday@hanmail.net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공동 주최하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의 올 주제어는 ‘과거에서 묻다’ 이다. 과거를 돌아보며 그 때의 아름다움을 그리워하고 상실되어가는 인간성의 본질을 찾아보자는 염원이 담긴 구호다.

17회의 상징적 의미를 구현하기 위해 국내외에서 17개의 무용과 연극작품이 초청되었다. 마지막 날 마지막 공연으로 펼쳐진 ‘모래의 여자’(Woman in the Dunes, 마홀라컴퍼니, 10.15, 대학로 예술극장)는 아마도 올해 SPAF 주제에 가장 적합한 선택일 것이다.

아베 코보(일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작품 주제가 현실에서 벗어나 과거 인간 삶의 원형으로 복귀하여 삶과 사회의 본질을 묻는다는 것이고 연극과 무용을 함께 아우르는 복합적 형식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학을 맞아 희귀한 모래생물을 채집하기 위해 낯선 마을에 도착한 남자(홍진일)는 밤을 맞아 하룻밤 묵어갈 것을 요청한다. 마을 이장(김봉수)은 그를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야 하는 깊은 모래 구덩이로 안내한다. 한 여자(장윤나)가 그곳에 살고 있다. 말 없는 여자로부터 저녁상을 대접 받고 남자는 잠자리에 든다. 잠든 그들을 호기심으로 지켜보며 마을 사람들은 코믹하고 기괴한 군무를 벌린다.

다음 날 아침, 사다리는 치워져 있다. 사다리 없이는 지상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발견한 남자는 여자를 다구치고 성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사람들은 멀리 앉아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며 재밌어 한다. 남자의 대사가 여자의 침묵으로 끝나는 작품은 극히 추상적이고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모래마을은 인간 삶의 원형이고 남자는 복잡한 현실사회로부터 일탈하길 원하는 현대인을 상징할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본질을 찾고자 어딘가로 떠나가길 원하지만 그가 찾아간 원형의 삶은 또 다른 속박이고 모래처럼 흘러내리는 허무일 뿐 어디에도 구원은 없다는 메시지가 읽혀진다. 탈출을 위한 수많은 시도 끝에 결국은 체념하고 주저앉는 사람들, 그곳에 머물고 있는 모래의 여자는 남자의 또 다른 분신(ego)이고 운명일 것이다.

한예종 출신으로 동아무용콩쿨 금상을 수상한 안무가 김재승은 다원예술연출가인 임선경과 함께 난해한 소설의 무용화라는 어려운 숙제를 풀어간다. 대사와 춤이 공존하는 반무용이고 반연극인 작품에서 장윤나를 비롯한 한국무용수들의 몽환적인 춤이 돋보였다.  
     
유네스코 국제무용협회(이종호)가 주최하는 SIDance(10.9~29)가 올해로 창설 20주년을 맞았다. 서강대 메리홀과 자유소극장, 아르코대극장 등에서 한국, 영국, 스페인 등에서 초청된 30여개 작품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그 중에서도 스위스 현대무용가인 야스민 위고네(Yasmine Hugonnet)의 ‘포즈발표회(Recital of Postures, 10.21,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는  특이한 작품이었다. 

무대가 밝아지면 바닥에 엎드린 한 여인이 보인다. 복숭아 같은 엉덩이가 도드라진 여인의 자태는 첼로를 연상시킨다. 허물을 벋듯이 상의와 하의를 거두어내니 온전한 나신이 드러난다.  요가를 통해 다져졌을 건강하고 단단한 몸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그녀의 당당한 몸짓이 곧 음악이 된다.

‘흐르다’란 뜻을 갖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리듬(rhythm, rhythmus)은 규칙적인 기계적 박자와 달리 자유롭고 흐르는 특성을 갖는다. 매우 느리게 그러나 한 동작 한 동작 정성을 담은 그녀의 몸짓은 아디지오다. 몸이 리듬을 갖는 것은 심장의 박동과 호흡이 만들어주는 선천적인 운동감각 때문일 것이다.

엎드린 자세에서 앉은 자세로, 무릎을 구부린 채 고관절을 회전시키고 꼿꼿이 일어선 자세로 무대를 활보하는 다양한 움직임은 멜로디다. 새까만 머리털을 쓸어 올려 끝을 뾰족하게 다듬은 후 몸을 최대한으로 굽혀 발가락으로 이를 휘감는다.

머리털 속에 감춰진 유리병을 머리에 이고 그녀는 무대 상수에 정좌한다. 입술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데 몸의 어딘가에서 소리가 흘러나온다. 복식호흡을 기본으로 목젖이 움직여 소리를 내지만 이 소리는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귀와 코를 통해서 그리고 아마도 머리털로 가려진 빈 병을 통해서 공명하는 소리일 것이다.

복화술(腹話術)을 통해 울려오는 몸의 소리와  긴장하며 무대를 주시하는 관객들의 뜨거운 시선과 억제된 숨소리는 이 음악의 화음이다. 몸 하나만으로 리듬과 멜로디와 화성을 연주하는 독특한 몸짓은 춤이 음악이기 전에 몸도 음악임을 알게 해준 신선한 충격이었다.

한곡의 오케스트라 전막을 연주할 정도의 긴 시간인 50분 동안 전신누드로 자유소극장 무대를 장악한 그녀의 특별한 솔로 춤은 SIDANCE 20주년이 관객들에게 준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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