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보세요, ‘가야금’ 대한민국 대표 아이콘 만들 꺼예요”
“두고보세요, ‘가야금’ 대한민국 대표 아이콘 만들 꺼예요”
  • 이소영 기자
  • 승인 2009.09.09 1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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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 담긴 가야금과 관객들 소통, 흥분되고 즐거워~ 가야금 트로트가수 ‘가야랑’

 


“혹시 ‘국악’하면 따분하고 지루하다는 생각부터 하지 않으세요?
그건 대중매체에서 유난히 어려운 것만 들려줘서 그래요. 덕분에 잘 접하지 못한 가야금도 어려워하죠”


맑고 청아한 전통 가야금 선율이 만들어내는 구수한 트로트 리듬으로 친숙하게 다가가, 대중들의 심장을 뛰게 하는 가야금 트로트가수 ‘가야랑’의 쌍둥이 자매 이예랑, 이사랑 씨.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고풍스런 음색을 가진 가야금이 트로트와 어울릴 꺼라는 걸. 이 독특한 궁합 만큼이 재미있는 가사와 감칠맛나는 두 자매의 맑고 매력적인 목소리도 인기에 단단히 한몫하고 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그녀들의 새로운 시도는 대중들에게 지루하고 따분하다고만 생각했던 국악을 가야금이란 악기를 통해 제대로 접하고 새롭게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계기가 되고, 많은 사람들을 가야금의 매력에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

신들보다 크고 무거운 가야금을 들고 전국을 종횡무진 누비며 바쁘게 활동하고 있는 ‘가야랑’과의 인터뷰 당일, 예고에 없던 비가 내렸다. 행여 가야금이 비에 젖을까 비오는 날을 싫어하지만 가야금을 찾는 곳이라면, 날씨불문, 장소불문하고 외국도 한걸음에 달려가는 그녀들. 그렇게 가야금 트로트가수로 숨까쁘게 달려온지 벌써 1년이 넘었다.

지난달 KBS 인간극장에 출연하면서 많은 이들의 사랑과 관심으로 더 예뻐진 쌍둥이 자매는 만나자마자 누가 누구인지 물어볼 틈도 주고않고 가야금과 우리 전통 국악에 대한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들을 거리낌 없이 쏟아냈다. 

 

예랑 씨와 사랑 씨는 단순히 음악이 좋아서, 가수가 하고 싶어서 활동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쌍둥이 자매의 어머니는 가야금 연주자이자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변영숙 씨, 이모들은 거문고, 해금 연주자, 정가부문 대가인 국악 집안에서 태어나 국악을 듣고 자랐다.

언니 예랑 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음악과에 입학해 대학생 최초로 예술의전당에서 독주회를 열고, 2005년 김해 전국가야금대회에서 24살의 나이로 희귀하고 어려우며 대중화되지 않은 ‘서공철류 가야금 산조’로 최연소 대통령상을 수상해 국악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동시에 중요무형문화재 23호 이수자로 스승에게도 실력을 인정 받았으며, 국립국악관현악단, KBS 국악관현악단과 협연하고 홍콩, 일본, 베트남에서도 초청받는 가야금 명인이다. 그야말로 최고의 위치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으며 아쉬울 것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동생 사랑 씨는 가야금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듣고 보고 자라 ‘귀명창’이 됐고, 언니와 같은 학교에 예술사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인류학을 전공하며 국악과 음악 문화현상에 대한 연구로 실기와 이론을 겸비한 재원이다. 28살의 어린나이지만 우리소리와 전통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어 김명곤 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장(전 문화부 장관)이 차기 소리축제 위원장이라고 격찬하기도 했다.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한국 사람으로서 대중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소외되는 우리 전통음악 ‘국악’과 ‘가야금’에 대한 아쉬움과 애정은 아주 닮아있었던 두 사람.

“가야금을 가까이에서 접하고 그 소리를 한 번 들은 사람들은 다들 배우고 싶어할 정도로 매력적인데 제대로 만날 기회가 없는 것이 속상했어요”(예랑)

사랑 씨는 가야금 연주자로 활동하던 언니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트로트와 가야금을 접목해 가수로 활동할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언니 예랑 씨를 설득하는데 2년이 걸렸다. 하필 사람들에게 싼 음악 대접 받고 무시당하는 트로트라니...

그 시기쯤 예랑 씨는 가장 잘 팔리는 젊은 연주자임에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가야금을 보여줄 수 있는 무대에 대한 갈증이 생겼다. 결국 사랑 씨의 끊임없는 설득과 가야금 못지 않은 트로트 사랑에 결국 언니 예랑 씨도 빠져버렸다.

게다가 트로트를 관심있게 보고나니 행사장을 가도 다양한 연령층이 제일 호응하고 좋아하는 곡들은 모두 트로트라는 사실에 가야금 트로트가수로 활동할 것을 마음 먹었다.

하지만 예랑 씨가 가야금 연주자에서 가수로 활동하는 것이 쉽지 많은 않았다.

술이 있으면 앞에 누가 앉아있어도 연주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소화제가 될 거라고 우스객소리를 하며, 음향이나 조명 등 제대로 된 무대가 마련되지 않아도 불러주는 곳이면 아무리 작은 무대라도 만족스러울 때까지 공연한다.

“연주자로서의 이예랑은 무대에서 내려왔어요. 내가 낮아질수록 가야금은 대중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그 가치가 높아진다는 걸 알았거든요. 예전에는 내가 만족하는 것이 중요했는데 지금은 같이 느끼고 대중들과 내가 모두 만족하는 것이 중요해졌죠. 우리 선조들의 호흡이 담긴 가야금을 나와 관객들 사이에 두고 소통한다는 게 너무 흥분되고 즐거워요”(예랑)

하지만 여전히 그동안의 이력들을 들추며 연주자로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럽기도 하다고.

얼마 전 kbs 인간극장에 출연이후, 미니홈피 방문자가 하루 700명이 넘고 일촌신청이 끊임없이 밀려든다는 그녀들은 가야금과 우리 국악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에 눈물을 보였다.

우리전통국악기와 대중음악의 만남일 뿐인데, 국악인들도 놀라고 많은 사람들에게도 신선하고 파격적인 충격을 주고 있는 것이 속상해서였다.

그녀들의 미니홈피 댓글에는 ‘우리음악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내 나이 55살에 이제야 가야금의 알게 됐다’, ‘역사 선생이면서도 우리 음악에 대해 무관심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을 지금까지 몰랐던 게 속상하다’ 등의 반응들이 우리 전통음악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가야금으로 대중가요하는게 낯선건가요. 첼로로 한 오백년을 치면 좋아하면서 우리 국악기로 음악하면 왜 낯설게 느낄까요. 한국사람인데 한국 악기가 어색하다는 것이 슬퍼요”(사랑)

하지만 모두가 가야랑의 음악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추구하는 국악의 색깔과 성격이 확고한 사람들, 전통과 순수 예술에 대한 유동적인 국악보다는 고정적인 국악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은 거부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고.

“격이 낮은 대중음악과 가야금의 접목은 국악의 전통성과 진정성을 뭍히게 한다면서 강하게 싫어하시더라구요. 하지만 지금 우리 국악들은 전공자들이 소수 향유층의 음악이 되고 있어요. 국악을 그렇게 묶어놓으면 결국 대중들에게 완전히 소외당하고 말죠. 그런 음악적인 충격을 이해하고 친근하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 우리들의 숙제라고 생각해요”(예랑, 사랑)

국악과 음악 문화현상에 대한 연구로 실기와 이론을 겸비한 사랑 씨는 국악의 대중화, 세계화는 없는 말이라고 강조했다.

“가진 소스를 대중화 시키려고 하는 것은 진정한 대중화가 아니예요. 가야금으로는 어떤 장르의 음악도 가능해요. 물론 다른 국악기도 마찬가지예요. 대중음악으로서 즐길 수 있어야 진정한 대중화를 실현하는 것이죠”(사랑)

그녀들은 지금 특별한 요리를 준비하고 사람들에게 선보이며, 한 사람 한 사람의 반응을 살피고 있다. 처음 시도해본 음식이 어떤지, 다음에는 더 잘 대접하기 위해 어떤 맛을 더할지, 그리고 이 음식을 어떻게 알리고 지켜나갈지 고민하고 공부하고 있는 것이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대중음악으로서의 가야금을 즐긴다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아이콘이 돼서 우리나라 문화의 작은 단면을 알릴 수 있게 될 것이라는 희망으로...

“어떻게 보면 선구자 역할이지만 사명감과 책임감, 그리고 부담도 있어요. 지금의 뜨거운 반응이 식지 않도록 데워나갈 꺼예요. 누구나 김연아나 박지성처럼 될 수는 없지만 가야금을 연주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거든요. 외국인들에게도 코리아하면 가야금이 생각나도록 가야금이 대중들과 함께 하는 그날까지 가야랑은 계속 활동할 꺼예요”(예랑, 사랑)

그러기 위해서 가장 먼저 우리 국악을 단순히 전통이라고만 규정짓고 소외시키는 ‘인식’을 바꿔 대중들이 음악에 대한 편견 없이 그 본질을 보고 소리를 제대로 느끼는 ‘바른 영향을 전파시켜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대중들의 가야금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커지면 영화 같은 장면이 실현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 ‘춘향뎐’에서 판소리가 나오면 관객들이 얼쑤, 얼씨구 등의 추임새를 많이 넣어요. 현실과는 전혀 다른 장면이죠. 가야금을 통해 가야랑의 음악과 함께 우리 국악공연에서 이 장면을 현실로 이룰 꺼예요”(사랑)

가야랑의 활동은 전공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전공의 확장, 또 다른 색깔의 음악을 찾았다라고 생각하기에 각자의 분야에도 열심히 활동하며, 또다른 꿈을 꾸고 있는 욕심쟁이 그녀들.

관객들이 찾아오는 닫힌 공연장이 아니라 대중들에게 가까이 다가간 열린 무대에서 가야금 연주자로도 활동하고 있는 언니 예랑 씨는 오는 23일부터 열리는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 24일 저녁 7시 25연 가야금 솔로연주를 준비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가야랑으로 활동하면서 이제야 비로소 세상을 배우고 있다는 동생 사랑 씨는 그간의 활동들을 학습의 자본으로 삼아 대학원 박사 과정에 진학할 계획이다.

“인류학 박사 과정은 필드워크 현장조사가 있어 한 학기가 더 길어요. ‘한국음악의 현주소와 젊은이들’에 대해 연구 중인데 따로 시간내서 하지 않아도 활동하면서 피부로 느끼고 있기 때문에 복받았죠.(사랑) 20대에는 진정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지만 30, 40대는 가족사랑, 나라사랑, 그리고 삶의 고뇌를 노래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지금처럼 가야금과 함께 인생과 삶을 노래하면서 자연스럽게 늙어가지 않을까요”(예랑)

가야금을 얘기할 때마다 두 눈이 특히 반짝이며 신나서 얘기하는 예랑 씨는 가야금이 좋냐는 질문에  “가야금이 나를 참 좋아하는 것 같아요. 내가 만지면 너무 예쁜 소리를 내거든요. 그러니까 사랑할 수 밖에요”라고 가야금에 대한 마음을 전했다.

중앙대 국악과에서 강사로도 활동 중인 예랑 씨가 학생들에게 가야금을 가르칠 때 가장 강조하는 것도 바로 ‘가야금에 대한 마음가짐’이다.

“가야금을 만질 때 머리가 흐트러진다거나 손톱 메니큐어, 악세사리 같은 것은 절대 못하게 해요. 매니큐어만 발라도 무게감 중량감 느껴져서 연주가 달라지고 눈을 현옥시키는 것들은 보는 사람들도 연주자도 가야금에 집중할 수 없게 하거든요”(예랑)

사람들이 가야금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가야금의 가야와 예랑, 사랑의 랑으로 ‘가야랑’이라 이름 지었지만 아직도 거문고와 헛갈려한다며 가야금에 대한 설명도 잊지 않았다.

“가야금은 오동나무와 명주실로 만든 자연의 악기로 일단 줄이 많으면 가야금이예요. 12줄을 손으로 뜯으면 맑고 영롱한 소리를 내는 것이 가야금, 술대로 연주하고 둔탁하고 우직한 소리가 나면 거문고. 사람인자, 기러기 발모양이 있으면 가야금이죠”(예랑, 사랑)

 

서울문화투데이 이소영 기자 syl@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