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기자, 33년 만에 올곧은 서정과 순정한 혁명 안고 다시 시인으로
5.18기자, 33년 만에 올곧은 서정과 순정한 혁명 안고 다시 시인으로
  • 이은영 기자
  • 승인 2017.11.30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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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걸 3번째 시집 '유배공화국 해남유토피아!'펴내, 1일 광주 민들레소극장서 출판기념회 열려
▲12월 1일 광주 동구 소재 민들레소극장에서 윤재걸 3번째 시집 '유배공화국 해남 유토피아!’(실천문학사 刊) 출판기념회가 열린다.

1966년 시단에 처음 이름을 등재했던 윤재걸 시인이 79년과 85년에 걸쳐 두 권의 시집을 상재한 이후 33년만에 ‘유배공화국 해남 유토피아!’(실천문학사 刊)를 펴냈다.

두 번째 시집에서 세 번째 시집을 내기까지의 세월의 간극은 너무 컸다. 시인이자, 언론인으로 5·18민주화운동 보도를 주장하다 특A급 문제언론인으로 분류돼 강제해직 당한 이후의 시간이 그를 가만히 시만 쓸 수 없게 만들었다.

그는 “김대중과 노무현을 맞이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청춘들이 생을 등졌는데 자신은 한가롭게 시를 쓰고만 있을 수 없었다” 했다. “동지의 시신을 두고 나는 결코 시를 쓸 정도로 담대하거나 냉혹하지 못했다...가려지고 숨겨진 사건의 이면을 파헤치는데 온몸을 투신하고, 르뽀작가 겸 기자로서, 사회문제를 분석 비판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다”라고.

그의 세 번째 시집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언론인으로서의 생활을 접고 자신의 고향인 해남으로 글농사를 짓기 위해 10년 전 내려가면서 오롯이 시인으로서 시의 텃밭을 가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난해 뜨겁게 타올랐던 촛불혁명이 더욱 더 시집을 내도록 그를 등 떠밀었다 한다.

따라서 이번 시집에는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듯 ‘유배공화국, 해남 유토피아!’‘는 고향정신의 회복’과 함께 한국 현대사에 깊숙이 발을 담갔던 윤 시인의 인생역정을 담은 53편의 시가 실려 있다. 절제된 언어로 농축된 혁명정신은 그의 삶을 대변해주는 듯하다.

문학평론가 이경철(동국대 교수)은 해설 '반란의 땅끝 해남에서 일구는 순정한 혁명의 귀거래사'를 통해 "윤재걸 시인의 신작시집'유배공화국, 해남 유토피아!'는 우선 귀거래사(歸去來辭)로 읽힌다. 중국 진나라 도연명이 관직을 버리고 낙향해 고향의 삶을 읊은'귀거래사'에 비견되는 시편들이 눈에 띄는 시집이다. 무엇보다도 이 시집은 순정성이 돋보이는 서정시집"이라며 “전원에서 자연과 그런 자연을 꼭 닮은 민초들과 어울리는 삶에서 우러나온 시집”이라며 “당위적, 작위적이지 않고 순리, 첫마음에 따르는 올곧은 순정이 녹아든 혁명시집”이라고 평가했다.

시인은'너는 친미인가, 반미인가'라는 시편에서 내 편, 네 편을 가르는 교조주의적 이념이 아닌 순정한 진보와 혁명을 절절하게 불러낸다.

특히 이 시집 맨 앞에 실린 '그대를 향해 간다'에서 시인은 순정한 혁명의 서정을 아우르고 있다. 새 세상을 먼저 갈고 닦는 사람들의 땅인 고향 해남을 노래하면서 자연의 순리와 한 치의 어긋남이 없는 우리네 첫마음 천심(천심)인 '그대'를 노래하고 있다.

지난 9월 30일에는 윤 시인의 이번 시집 3부에 실려있는 해불양수(海不讓水) -바다공화국 예찬- 시비제막식이 지역 문인 등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해남군 옥천면 동리의 선산에서 거행됐다.

▲윤재걸 시인의 ‘유배공화국 해남 유토피아!’(실천문학사 刊) 시집에 실린 해불양수(海不讓水) -바다공화국 예찬- 가 시인의 선산에 세워졌다.

윤재걸 시인은 '조선조 최고의 직신이자, 조선 단가문학의 최고봉'으로 평가받는 고산 윤선도 선생의 11세 직손으로 1947년 해남 옥천 동리마을에서 태어나 광주서중과 광주일고, 연세대 정외과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원 정치학과를 중퇴했다.

약관 스무 살 때인 1966년 '광주 현대문학의 아버지'로 평가받는 다형 김현승 시인의 추천으로 월간'시문학'10월호와 12월호에 작품을 발표했다. 1975년'월간문학'8월호에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전개했다.

시집으로는 1979년 문명세계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담은 첫 시집 ‘후여후여 목청갈아’를 발간했다. 1985년 발간한 두번째 시집 ‘금지곡을 위하여’에서는 광주문제를 정면으로 다뤄 출간 즉시 당국에 의해 판매금지를 당하기도 했다.

1973년 9월에는 <중앙매스콤>에 제10기로 공채 입사하면서 언론인로서 삶도 함께 시작했다. 1975년 12월부터 <동아일보> 기자로 일하면서 첫 시집 <후여후여 목청 갈아>(1979년, 평민사)를 내기도 했으나 1980년 8월 5.18 광주민주항쟁 취재 건으로 강제해직 당한다.

1980년부터 1984년에는 ‘르뽀 라이터’란 이름으로 ‘탐사보도’에 새로운 씨앗을 뿌렸다. 1984년 8월에는 <동아일보>에 복직하면서 월간 <신동아> 편집위원을 맡았다. 이듬해 5월에는 두 번째 시집 <금지곡을 위하여>(1985년, 청사)를 낸 뒤 1988년 4월부터 <한겨레신문> 창간에 참여하면서 사회부 차장, 정치부 차장(국회반장), 기획취재위원을 맡았다.

89년 <한겨레> 기자 시절엔 ‘서경원 의원 밀입북 사건’으로 구속 위기에 몰렸지만 꼿꼿하게 버텨냈다. 취재 경험을 바탕으로 르포집 <국회 5공 청문회>과 베스트셀러에 단숨에 오르기도 했던 평론집 <작전명령 화려한 휴가>와  <정치,너는 죽었다> 등을 내기도 했다.

1995년 12월에는 <광남일보> 창간에 참여해 논설주간을 맡았으며, 1999년 10월에는 편집국장, 주필을 맡았다. 2004년 12월에는 시사주간지인 <일요서울> <주간현대> 편집인 겸 편집국장을 맡았으며, 2007년에는 <시사신문> 사장을 맡았다. 지금은 고향인 해남에서 글농사와 밭농사를 지으며, ‘한국정치인물연구소’ 대표와 본지 <서울문화투데이> 주필을 맡고 있다.

스스로를 '광의의 글쟁이였다'라고 평하는 윤시인이 시집 말미에 밝힌 글에서 그가 앞으로 이 땅의 역사와 함께 써내려가고자 하는 시의 결기가 가슴 한편에 쟁쟁하게 울린다.

“‘팩트에 살고 팩트에 죽는’기자의 생리대로 지금껏 저의 참된 리얼리스트로서의 시인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길을 계속 걸어갈 것이다”

한편, 윤재걸 시인의 제3시집 출판기념회는 오는 12월 1일 오후 6시 광주 동구 동명동 민들레 소극장에서 열린다. 이명한 김준태 나종영 박호재 김경윤 박관서 이승철 등 문인들이 이번 행사의 초청인으로 이름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