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 K-Arts 40회 - 김용걸과 한명옥의 2017년 신작 두 편
[이근수의 무용평론] K-Arts 40회 - 김용걸과 한명옥의 2017년 신작 두 편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17.12.07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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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K-Arts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단의 브랜드다. 1997년 탄생 후 1999년부터는 봄과 가을 정기공연을 통해 일반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재학생들만이 출연하는 발표회 형식이지만 교수들이 작품에 쏟는 긴장도가 높아 국립단체들이 주목할 만한 수준 높은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다.

전미숙의 ‘약속’, 한명옥의 ‘단청’, 김용걸의 ‘키스’로 레퍼토리를 구성한 2017년 40회 정기공연이 석관동 예술극장에서 열렸다(10.27~28). 현대무용인 ‘약속’을 제외한 한국무용과 발레 두 작품은 초연이었다. 나는 첫 날과 마지막 공연을 보았다. 

모던발레 ‘키스(Le Baiser)’는 이고르 스트라빈스키가 작곡한 ‘Le Sacre du Printemps’의 원작음악 전곡을 춤으로 풀어낸 김용걸 판 ‘봄의 제전’이다. 밖에서부터 모여든 사람들이 장막을 제치고 들어가 무대 중앙에 커다란 원을 만들면 봄의 태동을 알리듯 활기찬 군무가 시작된다.

그룹에서 불거져 나온 몇 쌍의 듀엣으로 무대는 더욱 풍성해진다. 웃통을 벗은 검정색 바지의 남자들과 흰색 신녀들 옷차림의 여인들이 만들어내는 생동감 있는 춤판에서 한 쌍의 남녀가 선택된다.

타원과 커다란 ㄷ자 모양의 둘레 안에서 춤추던 혼성 그룹이 어느 순간 남녀 그룹으로 갈라지고 두 그룹 간에 치열한 대결이 펼쳐진다. 양 팔을 높이 들어 올려 어깨와 팔목을 돌리면서 활짝 핀 손가락으로 하늘을 찌른다. 몸통을 좌우로 크게 흔들며 물 찬 제비처럼 두 발로 대지를 박차고 힘차게 이동한다.

경쾌하고 역동적인 춤사위가 전장에 나가는 전사들의 충천한 사기를 연상케 한다. 불협화음을 연주하듯 높은 음정에 마디마디를 꺾는 강렬한 스트라빈스키 음악에서 춤사위는 쉬어갈 틈이 없다. 음악 전곡이 연주되는 36분 동안 팽팽한 긴장이 무대를 휘감는다.

갈라졌던 남녀 그룹이 해체되며 짝짓기가 벌어진다. 남녀의 만남은 자연의 이치다. 만남은 키스로 시작되어 집단적인 성교의식으로 진행되고 새로운 생명을 싹틔움으로 완성된다. 전통적으로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며 태양신의 제단에 처녀를 제물로 바치는 의식으로 해석되어 온 ‘봄의 제전’이다.

김용걸의 상상력은 봄의 제전을 비극적인 제사의식이 아닌 자연 앞에선 인간의 축제로 변모시킨다. 산 제물을 바치는 제사가 마을의 축제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봄 안개 피어오르는 들판에서 마을의 처녀총각들이 뛰어나와 짝을 만나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한 본능적인 의식은 성스럽고 장엄한 신의 찬양이다.

이 작품에서 발견하는 또 하나의 메시지는 페미니즘이다. 부족 간의 대립을 남녀의 대립으로 치환시키고 여인으로 하여금 남자를 선택하게 함으로써 남성위주가 아닌 여성상위의 모계사회를 그려낸다. 빛이 터지듯 환희로 마무리되는 극적 피날레로 작품은 완성된다. 올 최고의 작품이라는 찬사를 주고 싶다.

“목조건물에 여러 가지 빛깔과 무늬를 그려 넣어 아름답고 장엄하게 장식한 것”이 단청(丹靑)의 사전적 정의다. 음양오행 원리를 바탕으로 적, 청, 황, 백, 홍의 오방색을 사용하고 궁궐과 사찰, 서원 등에만 허용된 전통적인 건축기술이었다. 무속에서 기원한 전통 춤 역시 음양오행원리를 바탕으로 궁중과 사찰을 중심으로 전승되어왔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한명옥의 ‘단청(丹靑)’은 우리 전통춤의 표현원리를 단청과 일치시키려는 사색적인 시도를 보여준다. 1부( 생의 기원)는 무당과 신의 대화를 묘사한 벽사 춤이다. 부채와 방울을 소도구로 사용하고 청색과 홍색, 황색의 무당 옷을 입혀 화려한 군무를 구성했다.

2부(씻김과 환희)는 저승과 이승을 검정색과 흰색으로 구별했다. 객석에서 무대로 걸어 올라간 젊은 춤꾼(신윤주)이 단청을 그리는 스님(김하림)을 찾는다. 무가(舞家)스님은 춤의 대가이기도 하다.

춤꾼의 질문에 스님이 답하는 형식으로 한국 춤의 원리를 풀어간 형식이 신선한데 비해 문장을 읽는 듯한 대사는 어색했다. 오방색의 중심인 황(黃)이 왜 한국 춤의 중심인 호흡과 일치하는가에 대한 설득력 있는 논리를 개발하고 무대 위의 춤과 주제를 연결시킨다면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세 작품 모두에서 보여준 재학생 군무진의 뛰어난 기량은 한예종이 왜 우리나라 무용의 미래가 되고 있는가를 보여준 현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