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경의 일본 속으로]서예가 다나카 유운(田中佑雲)이 갈망(渇望)하는 한일 평화공생
[이수경의 일본 속으로]서예가 다나카 유운(田中佑雲)이 갈망(渇望)하는 한일 평화공생
  • 이수경 도쿄가쿠게이대학 교수
  • 승인 2017.12.07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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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양국의 하늘에 빛나는 맑고 찬 별을 따라서...어둠을 뚫는 사랑의 시상(詩想)을 붓에 맡기며
▲이수경 도쿄가쿠게이대학 교수

다가오는 12월30일은 시인 윤동주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평화의 상징이자 민족 시인, 저항시인으로 평가받는 윤동주의 존재감 만큼이나 한중일 시민 관계자들도 그를 기억하는 다양한 형태의 추모행사가 열리고 있다.

필자는 매년 일본의 교사가 될 300-400명의 학생들에게 ‘국가와 민족을 초월한 인류 동포’라는 의식과 더불어, 송몽규와 윤동주, 그리고 일본의 침략 행위에 저항하다 죽어간 일본의 천재 시인 마키무라 코(槇村 浩), 츠루 아키라(鶴彬)등의 양심들을 통하여, 인권이 짓밟힌 광기어린 군국주의 시대가 두번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된다는 지구촌 사회의 평화적 공생을 역설해 오고 있다. 그런 필자의 인권 수업에 초청하여 수강생들로부터 호응을 받았던 일본의 서예가 다나카 유운(田中佑雲)씨를 소개하려 한다.

2010년에 필자가 송몽규, 윤동주의 추모회를 열면서 알게된 이 서예가는 개인의 명성이나 이해타산이 아닌 순수한 한국 문화 사랑으로 한일 시민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지방의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이제는 서예가로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 그가 한글로 된 시를 작품으로 적게 된 계기가 윤동주의 시와의 만남이었다고 한다.

근대사에서 부터 다양한 국제 인권문제까지 연구해야 하니 필자는 많은 역사의 현장에 관여하게 된다. 여러 교수들과도 공감하는 부분이지만, 특히 최근에는 어떤 이해타산의 의도나 소유욕으로 치뤄지는 역사 비즈니스가 횡행하는 구조가 씁쓰레함을 자아내는 장면을 많이 접하게 된다. 그런 실망이 겹치다 보니 그 어떤 화려한 자리도 결국 순수성은 결여되고 돈과 사람이 얽히고 설키는 곳에는 관여하지 않으려고 관계를 멀리하게 된다.

▲자신의 아뜨리에에 걸린 이육사의 시 앞에선 다나카 작가.

하지만 꽤 오랜 시간을 봐 온 서예가 다나카 유운씨는 자신의 올곧은 신념과 양심으로 일관성 있게 작품 활동을 해 오고 있는 작가이다. 그가 사욕을 떠난 한일 평화사회를 향한 갈망과 소박한 시민교류의 지향을 하게 된 계기가 적힌 글이 왔기에 여기 소개를 해 두려 한다.
다나카씨는 한국과의 역사와 문학, 일본과의 근대사에 지식을 가지려고 노력하며 한일 양국 미래지향적인 대화를 모색하려하는 정직한 시민이다.

이러한 일본 시민과 함께 한일 사회를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으로, 문대통령이 방일 때는 흔들리지 않는 한일 시민교류의 기반을 만들어 온 교류의 상징으로 격려해 주는 기회도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일전의 컬럼에서 소개를 한 적이 있다.

화려한 활동보다 겸손하게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다나카씨가 만나는 윤동주나 이육사, 김구 등의 글이 새로운 미래를 잇는 가교가 되고, 다나카씨의 순수한 활동이 한일관계를 초월한 동아시아 사회의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윤동주와의 만남과 그의 어머니에 대한 글을 번역, 소개하며, 엄동설한의 연말 연시, [윤동주]라는 특별한 존재 만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 종교, 정치 등을 초월하여 모든 부조리한 횡포 속에서 아파하고 신음하며 죽어간 사람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며, 힘들어하는 이웃에도 손을 내밀 수 있는 따스한 우리 사회로 가슴이 훈훈하게 추위를 이겨낼 수 있으면 하는 바램이다.

참고로 이 글은 지난 컬럼 소개 이후, 다나카씨가 적어서 보내 온 원문을 필자가 어려운 용어나 시(詩)적인 표현을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한글로 알기 쉽게 번역했음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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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양국의 하늘에 빛나는 맑고 찬 별을 따라서
어둠을 뚫는 사랑의 시상(詩想)을 붓에 맡기며

                                                                    서예가 다나카 유운(田中佑雲)

2011년 3월, 자그마하게 개인 전시회를 필자의 아트리에에서 가졌다. 하필이면 동일본대지진,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인한 미증유의 사태 소식이 이어졌고, 서예전을 중지해야 될지 어떨지 망설였지만, 이미 지인들에게 안내를 해 버린 상태였기에 전시장에 오기 곤란한 상황을 예상하면서도 개최하기로 하였다. 오히려 힘든 때 일수록 내 작품을 통하여 사람이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함께 생각할 수 있다면 하는 불손한 바램을 가지면서.

또한 94세를 맞는 어머니 이야기도 전시용 작품 속에 내포되어 있었기에, 조금이라도 어머니가 살아계시는 동안에 개최해야겠다는 조급함도 앞섰다. 참고로 개인전은 아트리에를 설계한 것을 계기로 4년마다 회를 거듭하여 3회 째를 맞은 것이었는데, 주제는「고통을 함께하는 지평(공고의 지평, 共苦の地平)」으로 첫 전시회 부터 변함없는 주제였다.

▲다나카 작가가 쓴 윤동주의 ‘서시’일부

이번에는 특히 한글 작품(조선 시인의 원문 한글과 일어 번역을 섞은 것)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그 속에서도 윤동주의 시를 중심으로 한 전시였다. 작품은 21점이었는데, 석문에 낙필까지 한 경위 등, 적나라하게 세세히도 적었기에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이 부끄러웠고, 모순같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안내 하는 것도 망설여졌다.

지금까지의 인생에 있었던 다양한 만남, 혹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던 시인의 시로 마음을 달래며 서예 작업에 임해 왔지만, 그(-윤동주)의 27세라는 짧았던 생의 발자취와 함께 우연히 인연이 닿은 재일한국인의 국제적 사업가 모씨의 극진한 안내로 청천벽력같이 이뤄진 (윤동주, 송몽규의) 생가와 무덤을 방문했던 여행 기억이 그때 까지의 필자의 작풍을 바꿔버리는 계기가 되었다.

윤동주를 만나기 전까지는 내가 동경하며 작품에 도입했던 일본의 시인으로 미야자와 겐지(宮澤賢治)와 야기 쥬키치(八木重吉)가 있다.

쥬키치는 그(윤동주) 처럼「별과 같은 시인」으로 평가받으며 시단과는 무관하게 29세로 1927년에 세상을 떠난 크리스찬 시인이다.

시는 모두 평범하며 짧지만 자기를 내면에서 지탱하는 강함으로 독특한 아름다움을 발한다. 천부적으로 읽혀지던 그 시정은 윤동주의 그것과 흡사하여 시대는 다를지라도 고고하게 산 그들의 시신(詩神)은 내 마음을 강하게 잡았다.

고등학교 1학년(16살) 때 우연히 알게 된「비(雨)」라는 제목의 시 속에 <비가 개이듯이 조용히 죽어가야지(雨があがるように静かに死んでいこう)>라는 한 구절에 깊이 감동한 이래 40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아직도 세상을 방황하고 있는 내 모습에는 고개를 숙일 뿐이지만, 쥬키치의 경우와는 차원을 달리하여 식민지하의 조국을 떠나 침략국이었던 이국 땅 일본으로 건너와서 보다 긴장한 관계 속에서 자신의 길을 개척하려 했던 그의 처지는 무서움을 머금고 내 앞에 우뚝 섰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空と風と星と詩)』의 「서시(序詩)」(이부키 고 伊吹郷 역)를 알지 못했다면 아마도 조선어(한글)를 깊이 배우려고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치나 역사의 조건을 초월하여, 인간이 개체로서 사는 그 근원적인 충동에 발하는 그의 짧은 시에 나는 깊이 감동했다.

운명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는 한 편의 시와의 결정적인 만남은 그 뒤의 나의 서예 세계를 풍요로운 미주(迷走)로 이끌어 갔다。요컨데 그 시정을 원어 특유의 아름다운 음향으로 낭독하면서 서작운필이 가능하다면…하는 바램도 하지만, 일본인인 내게는 너무나도 어렵고 아직까지도 멀기만 하다….

 ▲다나카 작가의 아뜨리에에 걸린 이육사의 시

그의 시는 절규하듯이 과격하게 돌려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놓여진 정황에 갈등, 자성하듯이 적고 있어서 자연스러이 근심을 위로받는다. 그의 시를 세상 밖으로 소개한 시인 정지용은 윤동주의 시집 서문에 「虚其心、実其腹、弱其志、強其骨(마음을 비우고, 배를 채우며, 허영된 뜻을 약하게 하여, 뼈를 튼튼하게 한다)」라는 노자3장의 글을 인용하여, 그는「마음이 약했기 때문에 서정시에 뛰어났고, 뼈가 튼튼했기에 일본이라는 강도에게 살을 내던지고 뼈를 얻었지 않은가」라는 글을 싣고 있다. 모국어도 생명도 짓밟은 일본에 무의식의 가해자로서 지금까지 살아온 것에 주춤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미야자와 겐지 또한 이상의 실현에 격한 희구, 구도맥진(求道驀進)하듯이 시를 짓는 한편,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는 끝을 본 듯한 자신의 한계를 한탄하듯이 토로하는 부분에 내가 공감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자그마한 기적을 일으킬 힘이 갖고 싶다. 이 큰 하늘에 마는 없단 말인가?」겐지가 읊었던 시 한 수,「서시(序詩)」는 상기시킨다.

적는다는 것, 즉 인간의 진실을 생각한다는 것. 전에 다녔던 한글강좌의 강사로 부터 조선어의 「그리다」로 「(그림을 그리다의)描く、思い描く」와 함께「(먼 곳의 사람을)그리워하다. 기리다」의 양쪽 뜻이 있다는 것을 배우고, 붓도 단순히 필기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가 정신이라는 것을 터득하게 해 줘서 감동했던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