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남미 아방가르드' , 낯설지가 않다
[전시리뷰]'남미 아방가르드' , 낯설지가 않다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7.12.21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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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 '미래 과거를 위한 일' 전, 지구 반대편이지만 같은 세상 살아간 사람들 이야기

'낯설지가 않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지난 12일부터 시작된 '미래 과거를 위한 일' 전시에 대한 필자의 평은 이 한 마디로 충분하다.

1960년대 정치적인 급진화를 바탕으로 탄생한 라틴아메리카의 이념적 아방가르드 예술을 통해 '남미 개념미술'을 이해하는 취지로 이뤄진 전시라고 소개한다면 '남미 아방가르드'라는 생소한 단어에 우선 낯설고, '아는 게 없는데'라는 고민이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낯설지가 않다'. 그것이 이번 전시의 가장 큰 매력이다.

▲ 후안 페르난도 에란 <척추> (사진제공=서울시립미술관)

전시에 초대된 14명(팀)의 작가들은 중남미 대륙 출신이라는 공통점도 있지만 서구 제국주의의 경험, 문화적 위계, 혼종 문화, 근대화와 독재 등 굴곡을 겪으며 탈식민주의 관점, 주체성, 공동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미래 과거를 위한 일'이라는 전시 제목을 자세히 보면 이 전시가 미래나 과거를 보여주는 전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과거나 현재,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미래는 결국은 하나의 이어짐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이 전시는 현재까지도 유효한 라틴 아메리카의 아방가르드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남미의 현대사는 우리의 현대사와 비슷한 점이 많다. 우리도 제국주의의 침략을 당하고 군부독재를 경험했으며 인종간의 갈등은 없지만 계층간의 갈등, 지역 갈등 등이 표면화됐었다.

남미도 우리와 같은 길을 걸었다는 생각을 가진다면 이 작품들이 결코 낯설게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전시는 이 마음을 현실로 보여준다.

▲ 라우라 우에르타스 밀란 <자유> (사진제공=서울시립미술관)

전시실 앞에는 후안 페르난도 에란의 <척추>가 있다. 콜롬비아 메데인 빈민가 지역에 실제로 존재하는 거주지에서 지역민들이 만든 계단들을 본떠 만든 조형물이다.

전시실에는 이 작품의 조형도와 함께 작가가 참고한 계단들을 찍은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그런데 그 계단들이 정말 친숙하다. '혹시 우리나라 골목에서 찍은 사진 아냐?'라고 의심할 정도다. 

아일톤 크레낙은 1987년 9월 4일 브라질 제헌의회에서 원주민 대표로 아마존 원주민들의 정체성과 인권 문제를 거론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얼굴에 검정 칠을 하면서 원주민의 인권 보장을 호소했다. 그 모습이 담긴 영상을 이 곳에서 볼 수 있다. 연설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다.

라우라 우에르타스 밀란은 영화 <자유>를 선보였다. 전업 수공예 예술가로 살아가면서 가정의 생계를 이어가는 멕서코의 토착 여성들을 담아낸 이 작품은 단순히 생계를 이어가는 여성의 모습이 아닌 가정을 이끄는, 주체적인 원주민 여성의 얼굴을 보여준다.

▲ 갈라 포라스 김 <근육 기억> (사진제공=서울시립미술관)

갈라 포라스 김은 1986년 멕시코 남부의 강에서 어부들이 발견한 유물을 보여주면서 이것이 '문화유산'으로 바뀐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질문한다.

하나의 돌덩이에 불과한 것이 '문화유산'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비춰지는 모습에서 작가는 문화유산이라고 규정해서 사람들이 문화유산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문화유산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문화유산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를 물어본다. 

이에 연장선상으로 만들어진 영상 <근육 기억>은 우리의 살풀이춤을 실연하는 무용가의 그림자를 보여준다. 무형의 춤이 어떻게 한 나라의 문화유산으로 이어졌을까? 그의 궁금증은 계속되고 있었다.

▲ 에두아르도 아바로아 <인류학 박물관의 완전한 파괴> (사진제공=서울시립미술관)

에두아르도 아바로아는 멕시코의 인류학 박물관을 폭파시키기로 한다. 인류학 박물관은 멕시코 원주민들의 유물들을 전시하며 멕시코의 유품들과 동등한 위치에 놓지만 막상 박물관 밖으로 나가면 원주민들이 차별을 받게 된다.

안과 밖의 전혀 다른 상황. 작가는 인류학 박물관이 '국가주의'의 상징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폭파시키기로 한다. 물론 실제로 폭파한 것은 아니고 영상과 파괴 사진, 각지에서 제작된 잔해 등을 보여주며 파괴의 대리 만족을 느끼게 한다.

미래와 현재, 과거는 결국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미래 과거를 위한 일' 전시는 남미의 이질적인 작품을 본다는 생각보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이들이 마음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를 눈으로, 가슴으로 받아들이면 되는 전시다.

이런 전시의 작품 설명을 온갖 어려운 표현으로 설명하는 전시장의 글들은 오히려 일반인들의 감동을 저해할 뿐이다. 지역은 다르지만 이들과 우리는 한 시대를 함께 살았다. 지구 반대편이지만 한 하늘아래 살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다. 

전시는 내년 3월 4일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