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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것 같지만 결국은 닫혀있던' 시대를 살아온 신여성을 만나며
국립현대미술관 '신여성 도착하다', 그들의 길을 따라가는 전시
2018년 01월 02일 (화) 15:43:40 임동현 기자 press@sctoday.co.kr

'신여성'. 흔히 이 말은 1920~30년대 '모던한' 모습의 여성을 일컫는 의미로 사용됐다. 더 자세히 말하면 1910년대 여자 일본 유학생들로부터 시작돼 20년대 초 중등교육을 받은 여학생들과 여성 민권과 자유연애를 주장하는 '신여자'를 뜻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이후 서구 대중문화를 향유하는 '모던걸', 나아가 시부모와 떨어져 단가살림을 하면서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양처'의 의미를 포괄하는 문화적 상징이 됐다고 한다.

근대기 다양한 시각문화를 통해 '신여성'을 살펴보는 국립현대미술관 '신여성 도착하다' 전이 덕수궁관에서 열리고 있다. 여성이 점점 자신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문제점을 당당하게 지적하고 전 세계적으로 'Me Too' 운동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열린 것 같지만 결국은 닫혀있던' 우리 신여성들의 모습은 오늘날의 사회의 모습과 맞닿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 나혜석, 자화상, 1928추정, 캔버스에 유채, 88x75cm,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소장

전시는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신여성 언파레-드'는 남성 예술가들이나 대중 매체, 대중가요, 영화 등이 재현한 '신여성'의 이미지를 볼 수 있는 곳이다.

당시 여성의 변화된 신 풍속도를 안석주가 정리한 '여성선전시대가 오면'과 '신여성', '부인' 등 여성 잡지들, 남성 화가들이 그린 여인들의 모습과 김은호의 <미인승무도>를 거치면 세련된 복장의 '기생 김영월'과 여성주의 영화 <미몽>(1936), 박향림의 노래 <찻집아가씨> 등이 관객들의 눈과 귀를 모으게 한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당시에 시작된 여성운동이다. 물론 일본의 영향이 있기는 했지만 이때부터 이미 여성의 자각이 시작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19년에 나온 '대한독립여자선언서'는 1919년 2월 간도에 있는 애국부인회가 조선의 독립을 선언한 문서다.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발표한 지 한 달 전에 이미 우리 여성들이 조선 독립을 외쳤다. 3.1운동의 시작은 결국 여성이었던 것이다.

또한 1927년에 조직된 여성항일단체 근우회는 해방운동은 물론 남성 중심의 봉건사회를 타파하고 여성의 단결과 지위를 향상하고자 했다.

'사회적 법률적 차별 철폐', '조혼 폐지 및 결혼의 자유', '농민 부인의 경제적 이익 옹호', '임금 차별 철폐, 야근 금지' 등 지금 봐도 설득력 있는(?) 구호들이 이 당시에도 울려퍼졌던 것이다.

   
▲ 대한독립여자선언서, 1919, 50x31.5, 독립기념관 소장

이들을 살펴본 후에는 '내가 그림이요 그림이 내가 되어'로 들어간다. 근대 여성 미술가들, 그리고 이들을 오마주로 한 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근대 최초의 여성화가이자 문인인 나혜석이 관객을 만난다. 해부괘도를 그려낸 박래현도 있으며 나상윤, 천경자, 정찬영, 배정례 등의 그림도 우리를 반긴다.

그리고 이제 시대를 앞서간 5인의 신여성을 만난다. 화가 나혜석, 무용가 최승희, 음악가 이난영, 문학가 김명순, 여성운동가 주세죽이다.

이들은 각자 분야에서 시대적 한계와 어려움을 극복했고 그 안에서 좌절도 맛봤던 사람들이다. 이들과의 만남이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라고 말할 수 있다.

   
▲ 박래현, 예술해부괘도 전신골격, 1940, 종이에 채색, 142x61.5cm, 조시비미술대학 역사자료실 소장

자유분방함을 추구하던 나혜석은 독립운동가 최린과의 관계가 문제가 되자 남편과 이혼 후 가부장제를 비판하는 <이혼 고백장>, 정조 관념의 해체를 주장하는 <신생활의 들면서>를 발표하면서 여성의 자유를 이야기했지만 돌아온 것은 사회적 논란이었다. 결국 그의 천재성과는 별개로 최후는 너무나 허무했다.

김명순은 소설과 시, 수필, 희곡 등을 통해 천재성을 발휘했다. 그러나 이광수, 김기림 등 소위 '문학의 남성 중진들'은 그를 '서녀'라고, '연애 문제가 있다'고 하면서 그를 매도했다. 남성들의 편견 속에서 그는 결국 일본으로 떠났고 다시는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남아있는 봉건의 찌꺼기가 천재 작가의 삶을 끝내게 한 것이다.

최승희는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무용가다. 일본은 물론 미국, 유럽에도 진출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떨쳤지만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 위문공연을 가는 등 '친일' 의혹에 휘말리며 남편 안막을 따라 월북을 해 공훈배우가 되는 등 명성을 쌓았지만 남편의 숙청과 더불어 그의 삶도 무너졌다. 

일본 작가 후지이 코유가 그의 보살춤을 표현한 조각을 만들고, 우메하라 류자부로가 그의 무당춤을 그림으로 그리는 등 다른 예술가의 작품에도 영향을 준 이가 최승희다.

이난영은 '목포의 눈물'의 가수로 알려져있지만 한국 최초의 걸그룹으로 알려지고 있는 '저고리 시스터즈', 그리고 두 딸과 조카로 구성되어 미국에서 큰 인기를 모은 '김시스터즈'를 만든, 오늘날 대형 기획사의 틀을 만든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김시스터즈의 성공 뒤에는 남편의 납북으로 혼자 악극단을 이끈 이난영의 의지가 있었다. 그의 존재를 다시 느끼게 한다.

그리고 여성운동가 주세죽이 있다. 박헌영과의 결혼, 근우회 결성, 모스크바에서 사회주의 독립운동을 했던 주세죽. 하지만 박헌영의 체포 이후 박헌영의 동지인 김단야와 재혼했지만 김단야갸 일본 간첩 혐의로 처형되면서 그도 위험 인물이 됐고 결국 카자흐스탄으로 유배된 채 그곳에서 생을 마감해야했다.

가족과 생이별을 해야했던 그였지만 결코 한을 품거나 슬퍼하지 않았다. 혁명의 기운을 가지고 있었던 주세죽의 풍모도 느낄 수 있다.

'신여성 도착하다'는 작품 하나하나에 의미가 있다기보다 '신여성'이 걸어왔던 길을 차근차근 살펴보는 것에 그 의의가 있다.

시대는 모던해졌지만 여전히 남존여비가 남아있는 상황에서 여성으로서 주체성을 가지고 살려했고 그렇게 살아왔던 여성들의 흔적을 본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전시다. 

전시는 오는 4월 1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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