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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수의 무용평론]유니버설발레단의 ‘오네긴’-오랜 사랑 슬픈 이별
2018년 01월 02일 (화) 17:54:46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sctoday@hanmail.net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할 일을 모두 마치고 머물렀던 자리를 떠나는 모습은 언제나 아름답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엄재용과 황혜민이 유니버설발레단에서의 오랜 주역생활을 뒤로하고 함께 무대를 내려오는 모습도 그랬다.

유니버설발레단의 레퍼토리공연인 ‘오네긴(9.22~26, 오페라극장)에서 이들 부부는 5회 공연 중 3회를 타티아나(황혜민)와 오네긴(엄재용) 역을 맡아 무대에 섰다. 나는 마지막 공연을 보았다.

오네긴은 러시아판 한량의 이름이다. 순수하고 꿈 많은 소녀 타티아나의 순정을 무시하고 그녀의 동생인 올가(한상이)에게 집적대다가 자신의 친구이며 올가의 약혼녀인 시인 렌스키(콘스탄틴 노보셀로프)를 결투에서 숨지게 하고 잠적한 사내다.

오랜 시간이 흘러 이제는 그래민 공작부인으로 우아하게 변신한 타티아나를 다시 만났을 때 옛일을 후회하며 그녀를 유혹하는 편지를 보낸다. 타티아나는 끝내 그의 유혹을 뿌리치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이루지 못한 첫사랑과 엇갈린 운명에 대한 회한이 짙게 남는다.

‘오네긴’은 러시아 문호 푸시킨의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이 원작이다. 슈트트가르트 예술감독인 존 크랑코 안무와 차이코프스키 음악을 재편집한 쿠르트-하인즈 슈톨제 음악으로 1965년 독일에서 초연했다. 유니버설발레가 2009년(LG 아트센터), 한국관객들에게 첫 선을 보인 후 2011년과 2013년 공연을 거쳐 레퍼토리로 자리 잡은 전 3막 6장 120분에 걸친 장막 공연이다. 전문적인 연주자들이 협동조합형식으로 조직한 코리아 쿱 오케스트라가 구모영의 지휘로 생음악 연주를 맡았다.

나무 세 그루만이 단출하게 서 있는 무대는 단순하다. 타티아나는 풀밭에 엎드려 책을 읽고 올가는 생일파티에 입을 새 옷에 정신이 팔려 있다. 활발한 성격의 올가와 새침한 성격의 타티아나 자매는 사뭇 대조적이다. 생일파티에 오네긴이 초청되면서 비극이 시작된다.

1막과 3막에서 춤추는 타티아나와 오네긴의 듀엣과 2막의 생일잔치에서 올가와 오네긴, 렌스키가 함께 춤추는 3인무가 볼만한 장면이고 샤막 뒤에서 벌어지는 결투는 한 방의 총성으로 단순하게 처리된다. 자신의 침실에 누운 채 상상 속에서 오네긴과 함께 춤추는 타티아나의 춤이 에로틱하다면 3막에서 오네긴의 끈질긴 구애를 양 팔을 펼쳐 하늘로 들어 올리며 거부하는 자세로 달아나는 타티아나의 춤은 절망을 담았다.

원래 이현준, 강미선을 포함하여 트리플 캐스팅으로 계획된 공연이 한 커플(이동탁, 나탈리아 쿠쉬)의 부상으로 더블 캐스팅으로 바뀌면서 엄재용과 황혜민에게 부담이 돌아갔다. 3일 저녁 연속 공연에 지친 표정을 보일만도 한데 그들의 파트너링은 여전히 빛났다. 15년간 1000여회를 같이 무대에 섰다는 그들이다. 타티아나가 오네긴의 끈질긴 구애를 뿌리치고 떠나는 마지막 듀엣장면은 특히 압권이었다. 

무대를 떠난 두 주역의 춤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관객들은 서운하다. 공연이 끝난 후 그들은 ‘발레 해 줘서 고마워’라고 쓰인 피켓을 흔들면서 헤어지는 아쉬움을 달랬다. 막이 오르기 전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 자리에 나온 문훈숙 단장도 해설 말미에 두 사람과의 이별을 전하면서 목이 메었다.

엄재용과는 17년, 황혜민과는 15년을 함께 했고 엄재용과는 심청에서 무대에 함께 올랐던 기억도 있다. 엄재용과 황혜민은 선화예중고를 졸업하고 워싱턴 키로프 발레아카데미에서 같이 수학한 후 유니버설발레단에 입단하여 15년을 함께 했다. 이런 인연이 그들을 부부로 맺어지게 했을 것이다.

그들은 함께 발레단을 떠나지만 밖에는 한국발레의 영원한 프리마 김주원과 김지영, 스페인국립발레의 김세연, 김현웅과 휴먼(HUMAN, 10:28~29, 자유소극장)에서 감각적 안무를 보여준 신현지 등이 기다리고 있다. 이들 동년배 스타 발레리나 발레리노 출신들이 함께 이루어갈 새로운 리그를 기대해본다.

그들의 원숙한 안무와 춤이 우리 발레 계를 더욱 풍성하고 화려하게 장식해줄 수 있을 것이다. “무용수는 두 번 죽는다.”는 마사 그레이엄보다 “무용수는 두 번의 삶을 산다”는 문훈숙의 말이 더 멋지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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