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국의 국악담론] 빗소리도 임의 소리
[김승국의 국악담론] 빗소리도 임의 소리
  • 김승국 노원문화예술회관 관장
  • 승인 2018.01.25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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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국 노원문화예술회관 관장

지난해 말 챙겨볼만한 공연이 없나 이곳저곳을 찾아보던 중에 눈에 띄는 공연이 있었다. 가야금과 아쟁 연주의 이 시대 최고의 즉흥음악 연주자였던 고(故) 백인영(1945~2012) 명인 5주기 추모 음악회였다.

백인영은 전통적인 방법으로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내는 명인 중의 명인이었으며 유대봉류 가야금산조의 1인자였다. 유대봉의 가야금산조는 자유분방한 선율과 즉흥성으로 대표되는 전통 풍류세계를 압축하는 듯한 멋과 흥취가 넘쳤으니 백인영이 그 후계자로서는 최고의 적임자라 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간 지도 5년이 지났다. 

그의 추모 음악회가 눈을 끌게 한 것은 그의 천재적인 음악성을 다시 못 보는 안타까움도  있었지만 시적(詩的)인 공연 제목 때문이었다. 공연의 제목은 ‘빗소리도 임의 소리’였다.

추모음악회를 주최하는 <유대봉제 백인영류 보존회>의 설명으로는 백인영 선생이 살아생전 가장 좋아하시고 즐겨 부르시던 소리가 남도소리 <흥타령> 중 ‘빗소리도 임의 소리’였기에 그렇게 정했다는 것이다. 나 역시 남도소리 중 가장 좋아하는 소리가 <흥타령>인데 내가 좋아하는 대목은  ‘꿈이로다 꿈이로다’이다.  

<흥타령> 중 ‘빗소리도 임의 소리’ 대목도 분명 들었을 텐데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백인영 선생이 왜 그 부분을 좋아했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내가 소장하고 있는 <흥타령> 음반을 뒤져 ‘빗소리도 임의 소리’부분을 다시 틀어 보았다. 역시 압권이었다.

‘빗소리도 임의 소리 음~ 바람 소리도 임의 소리/아침에 까치가 울어 대니 행여 임이 오시려나/삼경이면 오시려나 고운 마음으로/고운님을 기다리건만 고운 님 오지 않고/베개머리만 적시네/아이고 데고 허허 어허루 성화가 났네 에~’ 

떠나간 임을 기다리는 여인의 애절한 심정이 절절히 묻어나오는 가사이다. 그 어느 가사가 떠나간 임을 그리워하는 여인의 마음을 이토록 잘 표현해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 생전의 백인영 명인(왼쪽)과 필자 (사진제공=김승국)

남도소리의 <흥타령>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꿈이로다 꿈이로다 모두가 다 꿈이로다’이다. 그 가사를 살펴보면 이렇다.

‘꿈이로다 꿈이로다 모두가 다 꿈이로다/너도 나도 꿈속이요 이것저것이 꿈이로다/꿈 깨이니 또 꿈이요 깨인 꿈도 꿈이로다/꿈에 나서 꿈에 살고 꿈에 죽어 가는 인생/부질없다 깨려거든 꿈은 꾸어서 무엇을 헐거나/아이고 데고 허허 어허루 성화가 났네’

인생사 다 허망하고 다 부질없는 것인데 집착하지 말고 유유자적하며 살아가자는 소리이다. 그토록 내가 좋아하게 된 데에는 ‘꿈’이라는 말을 묘하게 반복 배치하면서 ‘인생사 꿈이요, 꿈같은 것이 인생사’라는 메시지가 자연스럽고도 강렬하게 마음에 와 닿는다. 

<흥타령>은 이렇게 육자배기 남도 계면조 선율에 얹혀 구성지고 애절하다. <흥타령>은 음악적으로도 강렬하고 극적이지만 그 가사 또한 문학적으로 우수하여 가슴을 뒤흔들어 놓는다.

<흥타령> 안에는 기쁨과 슬픔이 있고, 사랑과 원망이 있고, 이별의 한과 위로의 정이 깃들어 삶의 형태가 그대로 그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그 가사가 문학적으로 우수한데 내 개인적인 사견으로는 남도소리 중 <흥타령>이 가장 우수하다고 생각한다.
  
남도소리는 남도민요라고도 한다. 민요라는 용어는 일제 강점기 이후에 등장한 용어이고 그 이전에는 소리라 하였다. ‘남도민요’가 요즘 사용하는 음악용어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남도소리’가 우리의 전통적 용어이다.

<흥타령>은 남도민의 삶의 모습과 과정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노래의 형태로 정착된 우리의 소리이다. <흥타령> 안에는 기쁨과 슬픔이 있고, 사랑과 원망이 있고, 이별의 한과 위로의 정이 깃들어 삶의 형태가 그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가사 또한 문학적으로 우수하다. 

고 백인영 선생 또한 살아생전에 이루지 못한 그의 애절한 사랑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문득 문득 떠오르는 옛 사랑의 그녀를 그리워하며 <흥타령> 중 ‘빗소리도 임의 소리’로 마음을 달래며 즐겨 부르지 않았을까?

이제 그도 가고 그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그 여인도 그의 기억 속에서 떠났을 것이다. ‘꿈이로다 꿈이로다 모두가 다 꿈이로다. 너도 나도 꿈속이요 이것저것이 꿈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