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양우 칼럼] 문화를 대접하는 나라
[박양우 칼럼] 문화를 대접하는 나라
  • 박양우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교수, 전 문화관광부차
  • 승인 2018.01.25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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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양우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교수, 전 문화관광부차관

지난 정부에서 문화는 외양만 보면 꽤 호강을 했다. 모든 국정의 기반이 되는 국정기조 네 항목 가운데 ‘문화융성’이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대통령 직속으로 문화융성위원회가 설치되어 자못 문화국가가 실현되나 기대를 걸만 했다.

그러나 실상은 대통령과 내각이 문화하고는 전혀 동떨어진 반문화적이고 비문화적인 작태를 보여 국민의 공분을 산채 정부도 문화융성의 기대도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사라졌다. 지금도 문화예술계는 예술의 본령인 자율과 창의를 말살하려 시도한 블랙리스트 악몽에 신음하고 있다. 

이번 정부는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답게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만들려는 의지가 여러 곳에서 묻어난다. 예술의 자율과 창의를 존중하고자 하는 정책적 의지도 국정운영계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박근혜정부에서 보았듯이 정부의 약속이나 방침이란 것이 때로는 구호로만 끝나는 허망한 경우를 우리는 수 없이 보아왔다.

특히 문화는 국민의 피부에 직접 와 닿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책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기 십상이다. 정부 예산을 편성할 때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생색내기로 전락했던 것이 우리나라 문화정책사의 아픔이었다.

그러다가 문화와 문화산업의 중요성을 앞장서 주창했던 김대중정부가 들어서면서 문화계의 숙원이었던 꿈의 예산, 곧 정부예산 중 문화예산 1%를 달성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진보와 보수를 불문하고 문화예산은 계속 증액되어 정부예산 1.5%를 넘기는 등 세계 문화정책사에 대표적인 정부 지원사례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다가 2018년도 예산 규모를 보면 이러한 추세는 꺾이고 말았다. 지난 정부의 국정농단 사태로 인한 불똥이 문화계로 튀어 지난 해 보다 문화예산이 약 8%나 삭감되었다. 동계올림픽 준비에 소요되던 예산 수요가 줄게 되어 체육부문 예산을 삭감한 것이 주 원인이라 해도 콘텐츠 분야 예산도 줄었다. 그렇잖아도 주눅 든 채 웅크리고 있는 문화계가 혹시 동력을 잃지 않을까 우려된다. 

문화는 정부나 기업, 국민으로부터 그렇게 괄시받을 대상이 아니다. 아니 존중받아야 한다. 우 리는 지금 국민소득 3만 달러시대를 코앞에 두고 있다. 고령화사회를 넘어 이미 고령사회가 되었다. 게다가 주 5일제 근무도 20년이 넘으며 자연스럽게 정착되었다.

호이징가의 호모 루덴스(Homo Ludens), 곧 놀이의 인간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인간은 먹고 살만하면 놀고 쓰고 싶어진다. 요즘 같은 소비여가시대에 무엇으로 이 같은 국민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것인가.

재미있는 공연이나 전시에서부터 독서, 나아가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게임, 영화, 방송드라마를 비롯한 여러 프로그램 같은 문화콘텐츠가 아니겠는가. 생활체육을 직접 즐기는 것에서부터 프로스포츠를 보며 열광하고 여유가 좀 있으면 국내든 해외든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들 대부분이 문화활동들이다.

우리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임을 자랑스러워한다. 대견한 일이다. 그러나 이 같은 풍요의 이면에서 우리는 빈부의 격차, 이데올리기와 지역 간 갈등, 남북분단에 따른 대립 등으로 서로를 미워하며 눈을 부라리고 있다.

이번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추진되고 있는 남북 간의 체육 교류 협력조차도 치열한 정쟁의 대상으로 날을 지새우는 우리 현실을 똑똑히 보고 있지 않은가. 한편으론 참혹한 살인과 슬픈 자살 사건들이 연일 언론을 도배질 한다.

행복하지 않은 것이다. 이 같은 인생의 공허함을 무엇으로 달래줄 것인가. 알량한 돈 몇 푼 쥐어주는 사회구호 복지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인간의 내면을 어루만지는 종교에서부터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노래하고 춤추며 뛰고 즐기는 다양한 문화활동이야말로 훨씬 본질적이며 지속적인 처방이 아니겠는가. 

한 나라의 브랜드 가치는 그 나라 국민의 자존감과 무역, 관광 등 경제내외적으로 크나큰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나라의 브랜드 가치는 경제규모만 크다고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그 나라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 역량이 함께 하지 않으면, 아니 선도하지 않으면 과거의 강남부자나 다를 것이 없다.

세계적인 연주자나 운동선수 한 사람이 수백 명의 외교관보다 더 국위를 선양하기도 한다. 올림픽 같은 국제행사는 단순히 국제적인 체육 위상을 높이는데 그치지 않고 국가의 인지도와 이미지, 곧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결정적 자원이다.

특히 개폐회식의 공연행사는 그 나라 문화의 결정체를 세계만방에 선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그 많은 돈을 들여가며 기를 쓰고 대형 국제행사를 유치하고, 언뜻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예술 진흥을 위해 국가 재원을 투입하는 것이다. 

어디 이 같은 비화폐가치적인 유용성만 있겠는가. 황금숭배의 포로가 된 현대 사회에서 문화는 화폐가치 측면에서도 톡톡히 효녀 노릇을 하고 있다. 세계 문화산업시장은 이미 2,000조 원이 넘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시장만 해도 2017년도의 경우 110조원 정도의 규모로 추정되고 있다. 그 뿐인가. 한류에서 보듯이 문화산업 외의 다른 산업들에 대한 경제적 기여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요즈음 기업들은 경영혁신에 전력을 기울인다. 새로운 제품, 그것도 타사 제품과 다르면서도 우수한 제품을 만들어내는데 온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이 같은 포지셔닝 전략의 승패는 제품의 효능은 물론 스토리와 디자인 등 문화적 요소에 달려 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구슬이 세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제품 판매를 촉진하는 마케팅에서 소비자에 대한 다양한 문화코드의 이해는 이제 기본이 되었다. 결국 기업경영도 문화가 핵심인 세상이 되었다.

그러고 보면 인간의 삶 구석구석에 문화 아닌 것이 없다. 문화가 총체적인 우리네 삶의 양식이라는 말은 결코 허언이 아니다. 우리는 좋든 싫든 문화라고 하는 공기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공기가 귀한 줄 모르고 살 듯 우리는 문화가 귀한 줄 모르고 살고 있다. 그러나 문화는 정말 여러모로 쓸모가 많고 크다.

이제 정부는 문화를 겉에 걸치는 외투나 장식도구 정도로 치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랑스럽게 내 보이고 싶은 보석으로 대우해 줬으면 좋겠다. 경제수치 좋아하는 경제관료들도 폼으로가 아니라 머리 깊숙한 곳에서 문화가 경제의 시작이요 마침임을 알았으면 좋겠다.

4차산업혁명을 외치는 과학기술자들도 문화콘텐츠야말로 4차산업혁명의 고속도로를 채워 줄 과학기술의 알파요 오메가임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런 차원에서 문화산업 기업들이 원 없이 일할 수 있는 나라가 되면 좋겠다. 지금 외국의 대형 문화콘텐츠 기업들이 우리 시장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데 우리도 대형 문화콘텐츠기업들이 나와야 한다. 구멍가게만한 시장에서 규제가 아닌 틀을 바꾸는 획기적인 지원정책이 시행되어야 한다.문화산업이 살려면 문화가 살아야 한다.

문화는 기본적으로 자율과 창의를 먹고 자란다. 이념의 틀 안에 가두려는 유혹일랑 아예 뿌리를 뽑아야 한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팔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이 문재인정부의 2018년 새해에는 온전히 구현되었으면 한다.

문화의 진흥은 예술가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 무엇보다 예술가들이 신바람 나게 창작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말로만이 아니라 문화에 대한 정부예산의 증액은 물론 조세와 금융, 투자 측면에서 제조업 그 이상의 정책적 배려가 있어야 한다.

경제규모가 큰 나라이면서도 문화가 대접받는 나라를 가히 선진국이라 부를 수 있다. 경제규모는 선진국 수준이라 할 수 있지만 정부와 기업, 그리고 우리 국민의 문화의식과 수준을 냉정히 평가한다면 우리는 아직 선진국이라 하기 좀 뭐하다.

최근 언론의 주요 뉴스거리가 된 강남재건축아파트 가격 폭등이나 가상화폐 열풍 같은 현상이 엄연한 우리의 민낯이다. 문화가 대접 받는 정도가 아니라 문화를 대접하는 나라, 우리 대한민국이 그런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