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 최상철현대무용단의 2017 신작 ‘혼돈(Chaos)'
[이근수의 무용평론] 최상철현대무용단의 2017 신작 ‘혼돈(Chaos)'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18.01.25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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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현대무용가 최상철이 바라보는 현재는 혼돈의 시대다. 좌파와 우파, 안과 밖,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 시와 비, 효용과 무용 등이 혼재하면서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는 시끄러움이 마치 빅뱅이후의 우주와 같은 카오스다.

그래선지 그는 2017년 공연예술창작산실의 지원을 받은 신작에 ‘혼돈(CHAOS, 12.14~15, 아르코대극장)'이란 제목을 붙였다. 그러나 제목과 달리 그의 작품은 질서가 정연하다. 우주의 생성으로부터 인류의 탄생을 거쳐 삶의 질서와 균형이 찾아지고 미래의 유토피아로 나아가는 장면들이 독립된 에피소드처럼 차례로 나열된다.

장면들이 하나하나 짝을 맞추어가는 과정이 상당히 논리적이다. 심심한 여자(1999)에서 그가 보여준 관객설득력과 까망천사(2000)에서 선보였던 테크놀로지가 한 작품으로 모아진 듯 60분의 무대는 박진감과 영상미를 겸하고 있다.  

먼 곳에서 규칙적으로 울려오는 무거운 종소리를 배경으로 반나의 남성들이 무대 바닥을 훑으며 유연하게 움직여가고 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보드 위에 엎드려 미끄러지듯 이동하는 모습이 어둡고 텅 빈 우주공간을 유영하는 창세기 성경구절을 연상케 한다.

무대 반대쪽에서 빨강색 타이즈차림의 여인(유민희)이 나타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빨간 그녀는 에덴동산의 이브인가, 유혹인가. 머리에 부포를 단 남자 무용수(이정우)가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온다.

피었다가 오므라들기를 반복하는 커다란 꽃송이는 시간의 흐름을 상징할 것이다. 둥글게 원을 그리며 돌고 있는 남성 위에 올라탄 채 여인은 하얗게 핀 꽃 주위를 회전한다. 상투를 틀고 허벅지까지 바지를 걷어 올린 두 남자( 장두익,김정균)가 당당하게 걸어 나오고 그들의 2인무에 이어 새롭게 등장한 붉은 옷의 남자들과 어울리며 함께 춤을 춘다.

흰색의 남녀가 추는 2인무(임우빈, 최윤희)와 교차하며 나타나는 붉은 색과 흰색의 대비는 상징적이다. 흰색이 현실이라면 붉은 색은 가상의 공간이다. 흰색이 3차원 세계에 살고 있는 인간이라면 붉은 색은 물질이고 태양이며 신성을 나타낸다.

녹색으로 물든 벽면을 배경으로 머리에 쪽을 지고 기생처럼 치마를 받쳐 올린 여인들이 실루엣처럼 행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배경은 녹색에서 청색으로 다시 주황색으로 변화를 되풀이한다. 타원형으로 이루어진 행성 궤도를 돌 듯 무용수들은 회전을 되풀이하면서 양 팔을 활짝 펼친 채 비상을 준비한다. 무대가 몇 개의 부분으로 분할된다.

무용수들의 춤은 각각 독립적이지만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간다. 다시금 등장하는 부포를 중심으로 군무가 이어지고 짙은 안개 속에서 그들은 천천히 무대 뒤쪽으로 흡수되어간다. 공중에는 우주선을 연상케 하는 물체가 후미 등을 번쩍이며 떠 있다. 지구를 떠나 미지의 세계로 떠나가는 장면으로 피날레가 온다.    

최상철의 작품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공존한다. 의상을 통해 전통과 현대를 연결하고 동양과 서양을 대비 혹은 융합시킨다. 영상을 통해 현실과 가상의 공간을 구분하고 무대를 분할시킴으로써 이질적인 두 세계를 동시에 펼쳐 보인다.

색감 역시 스토리텔링의 중요한 수단이다. ‘혼돈’은 전체가 열 개의 장면으로 구성된다. 장면들이 무질서하게 나열되는 것 같지만 맥락으로 이어지고 하나의 주제를 향해 수렴해간다. 2010년 ‘누가 이들을 춤추게 하는가’란 책을 펴내면서 나는 최상철을 “춤과 영상을 결합하여 시각적 표현을 극대화하고 하이테크 멀티미디어기법을 무대로 끌어올려 기계와 인간의 만남을 몸짓으로 풀어낸다.

무대의 중앙 집중성보다 분산성을 드러내고 계획적이라기보다는 우연적이고 안무된 형식보다 무용가의 자유성을 강조하는 즉흥에 가까운 춤을 통해 포스트모던댄스의 특징을 가장 잘 소화해내는 무용가”라고 평한 적이 있다.

2017년 판 최상철의 ‘혼돈’은 즉흥적이라기보다는 세심하게 계획된 안무와 풍부한 연습량으로 과거의 작품과는 다른 성향을 드러낸다. 바꿀 역(易)이란 글자는 쉬울 이라고도 읽힌다. 알기 쉽게 바뀌는 것을 발전이라고 한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리뷰에서 안무가 최상철 춤의 새로운 변화를 지켜보게 된 것을 뜻깊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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