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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영원한 현역’ 김병기 화백 “시대 정신, 그것이 리얼리티고 추상도 리얼리티다”
“다채로운 색깔의 그림 선보일 것, 한국이 세계의 중심이니 여러분들이 잘 해야한다”
2018년 01월 29일 (월) 10:57:57 이은영 편집국장/임동현 기자 press@sctoday.co.kr

‘영원한 현역’. 어떻게 보면 원로 화가에게 상투적으로 붙이는, 혹은 ‘예의상’ 붙이는 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이 현역 작가는 한국 나이로 올해 102세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화실에서 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자신이 그리고 싶어하는 작품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렇다면 이 말은 그저 예의상, 혹은 높이는 말이 아니라 하나의 ‘팩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김병기 화백을 향한 세인들의 경의는 비단 그가 오랜 동안 작품 활동을 해온 것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는 지난해 한겨레신문에 ‘한 시대를 그리다’를 연재했다. 그가 구술한 우리나라의 문화사가 매주 목요일 신문을 통해 공개됐고 이중섭, 김환기, 이상, 김동인, 윤동주, 이쾌대 등 남과 북을 통틀어 우리 문화사를 빛내고 사라진 별들이 그의 구술을 통해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100년의 문화사가 정리된 순간, 그것을 모두 기억하고 알린 김병기 화백의 노고가 아니었다면 우리의 문화사가 이처럼 명확하게 정리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바로 그 김병기 화백에게 본지 서울문화투데이는 올해 문화대상 시상식에서 ‘특별대상’을 수여했다. 이 또한 단순한 ‘원로 작가를 위한 상’이 아니었다. 그의 활동과 열정을 향해 모든 예술인들이 마음을 담아 드리는 선물이었다.

‘영원한 현역’, 아니 어쩌면 지금이 또 하나의 시작일지도 모르는 김병기 화백의 끝없는 열정을 들어보기 위해 본지는 평창동 자택에서 김병기 화백과 만났다.

   
▲ 김병기 화백

서울문화투데이 특별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기분이 어떠신지

난 모든 게 늦는 것 같다(웃음). 거꾸로 가고 있다. 100살이 넘으니까 상을 다 받는다. 이중섭(소학교 동창)은 나이 40에 세상을 떠났는데 막 시작할 무렵에 세상을 떠났다. 꼭 단거리 선수같다. 그에 비하면 나는 마라톤 선수라고 할 수 있다.

상이라는 것은 연로한 사람이 젊은 사람들에게 주는 것인데 상 받을 연령은 지났지만 감사하게 상을 받으려한다. 그동안 문화의 기반을 만드는 것을 내 사명으로 여겨왔는데 상을 받을 만한 일은 아닐지 모르지만 사회가 주는 큰 상으로 알고 감사히 받겠다. 

‘리얼리티가 없는 그림은 장식품’이라고 하신 바 있다

그림은 본래 장식적인 요소가 있다. 리얼리티가 결여된 그림은 장식이 될 수 밖에 없다. 미술은 하나의 가구로서의 역할이 있어왔는데 학문과 더불어 정신을 담당하는 것이다. 

문학이나 음악도 정신적인 것을 대변하지만 문학은 한참 읽어야하고 음악도 한참 들어야한다. 문학은 우리말로 옮겨야 이해가 가능하다. 하지만 미술은 단번에 볼 수 있기 때문에 좀 더 현실을 잘 대변할 수 있다. 가장 보편적이다.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미술부터 보게 된다. 그 나라의 정신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미술관장이나 큐레이터가 상당히 중요한 사람들이다. 큐레이터는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예전엔 작가가 모든 일을 다했지만 지금은 큐레이터가 관리를 한다. ‘학예사’라고 일컫는데 그 말은 마치 하급관리 같은 인상을 줘서 좋아하지 않는다. 한 나라의 정신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큐레이터가 책임감을 가지고 정신 똑바로 차려야한다.

그렇다면 미술이 가져야할 ‘리얼리티’란 무엇인가?

사실성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을 리얼리티라고 보는 이들이 있는데 내가 말하는 리얼리티는 ‘현실성’이다. 시대 정신을 담아야한다.

몬드리안의 추상에도 리얼리티가 있다. 오히려 추상에 리얼리티가 있다. 현대의 정신에 부합되는 것이 담겨진 것이 리얼리티고 그것이 바로 본질이다. 현실을 사는 이들의 정신이 발현되는 것이 시대 정신이고 그것이 양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추상주의와 사실주의가 별개라고 생각하는데 미술 자체가 하나의 추상이다. 추상을 한다고 해도 형상을 떠날 수 없다. 나도 추상화가처럼 활동했지만 형상성을 떠날 수 없었다. 지나친 추상으로 주제도 현상도 없어지는 미술이 나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추상도 시대 정신이 살아있어야한다.

평양에서 유복한 생활을 하신 것으로 안다

고향은 이북이지만 아버님이 서울에 오랫동안 계셔서 서울 사람이나 다를 바 없다. 해방 직후 북에서 넘어왔는데 네 번을 왔다갔다했다. 아버님이 계셨고 서울에 친구들도 많아 반 서울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평양 대지주의 손자였는데 그런데도 ‘토지는 농민에게’라는 구호가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게다가 우리 형님들은 사회주의자셨다. 그런데 북한에서 토지개혁이 일어났데 그것이 무서운 결과로 이어질 줄은 몰랐다. 남쪽에는 농지개혁이 이뤄졌고 그로 인해 땅을 잃고 가난해졌다. 그럼에도 당당했다. 그리고 계속 작품 활동을 했다.

동경에서 ‘아방가르드’를 처음으로 접했다고 하는데

아버지께 동경에서 미술을 공부해서 화가가 된다고 하니 대단히 좋아하셨고 동경에서 공부하고 파리에 유학을 가라고 해서 의기양양하게 동경으로 갔다. 아버님이 다니셨던 동경미술학교에 들어가려고 석고 데생으로 시험을 보는데 이느 순간 ‘이걸 해야만 미술가가 되는가’, ‘로마의 장군을 왜 그리는가’ 의문을 가졌다. 그 정도로 건방졌다(웃음). 

그러다 본 것이 ‘아방가르드 양화연구소’ 간판이다. ‘아방가르드’라는 말이 가슴을 자극했다. 거기에 가르치는 분이 피카소의 친구라고 한다. 그렇게 아방가르드 미술과 만나고 20세기 미술의 두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추상과 초현실주의를 만나고 친구인 김환기를 만났다.

   
▲ 본지 이은영 대표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김병기 화백

앞에서 유복한 생활을 하시다가 가난을 맞이했는데 그럼에도 당당하게 작품 활동을 했다고 하셨다. 쉬운 일은 아니었을텐데

내가 지금까지 해 온 모든 일은 예술을 발전시키는데 목적이 있었다. 그랬기에 힘든 생활에도 가난한 생활을 당당하게 해올 수 있었던 거다. 요즘 보면 미술을 이야기할 때 작품값을 먼저 묻는 모습이 보이는데 문화 차원이 높은 나라에서 하는 일이 아니다. 미술이 돈벌이하는 것인가? 미술가가 명품을 찍어내는 사람인가? 이런 사람이 있다면 때려주고 싶다.

작품값으로 작품을 결정짓다보니 예술가들이 창작을 하려 하지 않고 잘 팔리는 스타일을 그대로 답습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비싸게 팔리는 사람이 더 높은 단계의 예술가로 여겨지는, 오도의 모습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세계가 그렇게 가고 있다. 이는 정신을 대변하는 위치를 버리는 것이다. 반 고흐는 그림 한 장 팔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럼에도 지금 대화가의 위치에 있다. 그때는 옥션이 반 고흐에 대한 속죄 의식이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모습도 없다. 찍어내는 그림은 예술이 될 수 없다. 나는 그것을 발전시키고 싶은 사람이다. 

지금 단색화가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데 단색화 자체는 훌륭하다. 어떻게 보면 장인이 하는 일을 현대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것을 발전시켜야하는데 그대로 따라하기만 한다. 그냥 찍어내기만 한다. 그건 곤란하다. 발전시키는 것이 예술이다. 

물론 오랜 세월이 지나면 발전할 것 같지만 지금은 누가 그린지도 모를 정도로 똑같다. 창의성이 없다. 그건 예술이 아니다. 그렇게 된다면 이제 팔리지도 않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작품을 팔아야만 활동을 할 수 있는 현실의 벽이 있다

예술이란 것이 이런 아이러니가 있다. 어떻게 보면 하나의 드라마인데 이런 드라마가 예술가의 삶이다. 그것이 없다면 작품이 되지 않고 값도 오르지 않는다. 

나는 지금의 시기를 ‘디아스포라’라고 보고 있다. 디아스포라는 2천년전 유태인들이 전 세계로 퍼진 것을 말하는데 지금은 조국을 떠나 이국 땅에서 사는 이들을 일컫는 말이 됐다. 지금의 한국인이 그때 유태인들과 같다. 

내가 이북 출신이라 실향민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만 남한에만 있는 이들도 고향이 없어진 이들이 많다. ‘진짜 고향’이 없어진 것이다. 명절 때마다 전국에 귀향 행렬이 이어지지만 이미 그들이 생각하는 고향은 다 없어졌다. 바로 그 고향을 찾는 일이 예술이다.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즈오 이시구로라는 작가가 있다. 나가사키에서 태어나 5살 때 영국으로 이민 가서 성장했다.  일본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고 봐야지. 그런데 작품을 읽어보니 패전 이후 일본의 상황을 미친 듯이 썼다. 결국 없어진 고향을 찾는 이야기다.

그렇게 예술은 ‘고향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고향을 찾기 위해 허둥대는 것이다. 비단 예술가만이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정신적인 고향이 있고 그것을 찾고 싶어한다. 바로 그것이 예술이다.

최근 ‘자코메티 특별전’에서 자코메티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한 것으로 안다

자코메티의 마지막 전시를 뉴욕에서 본 적이 있다.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 심사위원으로 그의 작품을 심사한 적이 있고 비엔날레 후에 뉴욕에서 전시를 본 것이다.

당시 김향안(김환기 화백의 부인)씨가 상파울루 비엔날레 심사위원이라고 소개해줬는데도 그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어린아이에게 자기 작품을 설명하고 있었다. 이게 진정한 작가의 태도라고 생각했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피카소는 예술가인 줄 알았는데 그냥 천재에 불과했다’. 천재 위에 예술가가 있는 것이다. 나는 자코메티의 그 말을 굉장히 신중하게 듣는다.

음악은 모차르트처럼 신동이 가능하다. 모방 예술이기에 그렇다. 하지만 미술은 모방이 아니다. 창의적인 예술이기 때문이다. 피카소가 14세 때 이미 훌륭한 작품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진정한 예술 작품은 40이 넘어야 가능하다고 본다. 그렇게 버티고 있다(웃음).

   
▲ 제9회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특별대상을 수상한 김병기 화백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 세기를 한국미술 발전에 매진했는데 그간의 한국미술을 정리해본다면

‘추상 미술과 초현실주의 미술’로 요약해볼 수 있다. 사실 이들 관계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이는 20세기 전반 세계 미술의 새로운 바람이기도 하다. 현대미술은 추상과 초현실의 관계로 이루어진 것이다. 

추상이나 초현실이 현실을 벗어난, 꿈 같은 이야기로 생각하는데 전혀 아니다. 꿈이나 잠재의식, 광기, 죽음 등 우리가 겪을 수 있는 부분을 이야기했다. 김환기나 이중섭, 그리고 수많은 동료 작가들이 있었기에 역사가 세워졌다고 볼 수 있다. 

기억나는 게 하나 있는데 오래 전에 현대미술 강의를 전국을 돌며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광주에서 강연을 하는데 반발이 거세서 결국 강연회장을 나갈 수 밖에 없었다.

워낙 그 곳에 아픔이 많아서 그런지 반발이 있었는데 세월이 지나니 그 곳에서 광주비엔날레가 열리고 또 최근에 예술원 특별전 개막식에 참석해 연설을 하기도 했다. 광주학생운동 같은 우리의 역사가 있는 광주에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미국에서 40여년을 사시다가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회고전을 계기로 영구 귀국했다. 물론 전에도 귀국 전시를 하기는 했지만 회고전을 했을 때의 소회가 남달랐을 것 같은데  

한국에서도 전시를 꾸준히 해왔고 과천서 전시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을 해왔다. 한국에 있을 때는 서양을 생각했는데 막상 서양으로 가면 동양을, 그리고 한국을 생각하게 된다. 미국에 오래 살았지만 한국에 집중했고 한국을 생각했다.  

우리나라는 미술 수준, 예술 수준이 높은 나라다. 우리나라는 ‘선’의 나라이며 돌 사이로 물이 흐르는, 석간수가 흐르는 나라다. 중국은 물을 그냥 마실 수 없다. 일본은 물이 많기는 하지만 한국처럼 석간수가 없다. 한국은 석간수로 밥을 짓고 밥을 지은 가마솥에 물을 부어 숭늉을 만들어낸다. 하나의 ‘차(茶)’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기가 막힌 나라다. 

이전에는 중국을 거쳐야하고 일본을 거쳐야한다. 그렇지만 이제는 하늘에서 왔다갔다한다. 이제 우리가 중심인 때가 왔다. 남북문제에 대해 전 세계가 집중하고 있다. 한국이 세계의 중심이다. 한국 사람이 참 똑똑하고 특히 여성들이 정말 똑똑하고 예쁘다. 여성들이 예쁜 데는 우리 할머니들이 있어서일 것이다. 우수한 할머니들에게 똑똑하고 예쁜 여성들이 나왔다. 

한국이 이제 중심이다. 여러분들이 정말 정신 바짝 차리고 잘해줘야한다. 1백살이 넘으니 이제 뭐든지 양보해야한다(웃음). 내가 앞에 나설 수는 없다. 이제 여러분들의 몫이다. 여러분이 주인이다. 

선생님 특유의 ‘낙관’이 장수의 비결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크리스천인데 기독교는 ‘영생’이라는 것이 있지 않나.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고 그래서 오래 사는 것 같다(웃음).  정신이 풀어지면 그때부터 건강이 나빠진다. 난 기독교를 통해 정신의 ‘팽창’을 하고 있다. 정신 내부에 근본적으로 있는 것이 하나님이다. 그 하나님과 상의해야한다.

일전에 일본에서 우리 근대 화가들의 작품을 모아 전시를 했던 때가 있었다. 당시 유일한 생존자가 나라서 주최 측이 내게 기조연설을 부탁했다. 몇십년을 일본말을 안하고 살았는데 연설을 어떻게 하란 말인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기도했다. 능력을 달라고 하면 하나님이 바빠지시니까(웃음) 살짝 돌려서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하고 싶다’고 기도했는데 그 때 하나님이 기회를 주셨다. 일본에서 일본어로 기조연설을 했다. 불가능이 가능해진 거다(웃음)

지난 한 해 한겨레신문에 ‘한 세기를 그리다’를 연재했다.  연재 후 변화가 있다면 

일단 연재를 통해 연락이 끊겼던 친척들을 만날 수 있었고 글을 정리한 윤범모(동국대 석좌교수)씨와 소통을 많이 했다. 주로 일요일에 이야기를 하고 목요일에 연재가 되어야하니까 일주일에 2~3일은 글을 써야하는데 윤범모씨가 잘 썼다.

글쓰는 일이 사실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는데(웃음), 미술은 어렵지만 그리는 즐거움이 있는 반면 문학은 그게 없다. 그래서 내가 문학인들을 존경한다(웃음).

윤범모씨는 소위 ‘민중미술’의 지도자고 나는 현실미술을 한다. 성향이 조금 다른 부분이 있는데 내가 이야기해고 그는 그의 방식대로 쓰는 거고 내가, 혹은 윤범모씨가 완전히 다르게 변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와 나는 다른 사람이다. 나도 양보하고 그도 양보하고 그도 기울고 나도 기운다. 그것이 순수와 민중미술이 함께 걷는, 나아가서는 한국의 갈 길을 걷는 모색인 것도 같다. 

민중미술은 어찌보면 하나의 ‘다큐’다. 리얼리티의 시작 형태 중 하나다. 다만 정치적 사건만이 리얼리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 김병기 화백은 지금도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데 전념하고 있다.

지금 젊은 작가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잘하고 있다. 잘못된 점은 이야기하고 싶지 않고 또 떠오르지도 않는다. 오로지 나는 칭찬을 해주고 싶다.

물론 이들에게도 결함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것을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계속 용기를 주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본다. 마음 속으로 용기를 주고 싶고 정말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영원한 현역 화가’가 앞으로 보여주실 그림이 궁금하다

그동안 흑백이 많았는데 이제는 다채로운 색깔을 많이 선보이고 싶다. 일전에도 말한 바 있지만 그동안 말을 너무 많이 했는데(웃음) 이제는 말 대신 그림으로 보여주고 싶다. 그리는 일이 지금 내가 해야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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