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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황병기 선생님 어디로 가신다고요?
황병기 명인 별세, 20년 전 글을 다시 떠올리며...
2018년 01월 31일 (수) 17:09:33 이동식 언론인/저술인 press@sctoday.co.kr

2018년 1월31일 새벽 3시 넘어 선생님이 영면하셨다는 청천벽력이 떨어졌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 얼마전 까지 건강하게 뵙던 분이었는데 

시를 하나 지어 올린다.

열두줄 신선이 매화 타고 오셔서 
十二絃仙梅香臨
그 천재가 80년 이 세상에 떨치셨네 
天才振世八旬年
오늘 춘설 타고 선계로 돌아가시니
今乘春雪歸仙界
달 뜨면 그 진한 향기  더욱 그리우리라  
明月出暗香更戀

 20년 전에 써올린 선생님에 관한 글을 다시 읽습니다.

   
 

황병기 선생님! 
지난 목요일 밤 근 20년 만에 다시 뵈었습니다. 그날 선생님의 모습에서 시간과 세월의 흔적을 느꼈습니다.  다만 서글픔 같은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의 얼굴에서, 선생님이 강의 중에 던진 모순이라는 화두를 듣고 육체적 생명이 영원하지 않기에 정신적인 생명이 영원할 수 있는 인간이란 존재의 모순을 다시금 생각해 보았습니다.
 
시간이란 것, 세월이란 것이 인간의 생명을 꽃피울 때는 그것들이 마냥 좋아 보이다가 그 생명을 거두어 갈 때에는 원망의 대상이 되는데, 바로 그 육체적 생명의 유한성 때문에 사람들은 사는 동안 열심히들 하게 되고 그것이 한 인간의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참으로 우리 인간도, 무정하고 매정한 시간의 유한성이란 것이 있기에, 그 존재의 의미가 드러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지난 1999년 2주나 걸린 대장암 수술을 받고 막 죽음에서 깨어나 선생님이 링거 병을 꽂고 병원을 걸으면서 느낀 생명의 유한함과 허무감과 절박감, 그것이 없었다면 어떻게 베토벤의 마지막 소나타의 2악장처럼 반딧불이 춤추는 환상이 가야금의 선율을 통해 나타날 수 있었겠습니까?

예술가들이 자신의 가슴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때로는 형체로, 때로는 소리로, 때로는 몸짓으로 토해내지 않고 못 배기는 것도, 바로 그 생명의 유한성이란 존재의 모순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날 선생님은, 영국 셰필드대 앤드루 킬릭 교수가 황병기의 음악은 “모순을 명상하는 선(禪)의 경지”라고 표현한 것이 자신의 음악세계를 가장 잘 대신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만, 인간이란 결국은 모순과 싸우는 것이고, 인간이나 우주의 가장 큰 모순이 바로 존재의 유한성이라면, 선생님은 의식하셨든 의식하지 않으셨든 가장 큰 모순과 가장 열심히 싸워온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군요.

   
 

존재의 유한성이란 모순과 싸워서 얻어낼 수 있는 것은 ‘유한의 극복’, 내지는 ‘유한의 초월’이 될 것입니다. 선생님이 1951년 피난살이 부산의 간이 천막으로 만들어진 학교에서 돌아오다 길 옆 건물에서 들려오던 김철옥 할아버지의 그 가야금 소리를 들은 것이 일종의 운명이었다고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우륵 이후 천 5백년이 지나 쇠잔해 진 가야금이 자신의 생명의 유한성을 우려해서 그것을 되살리기 위해 선생님을 점지한 것이고, 그것으로서 가야금은 자신의 존재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이후 가야금은 비로소 국악, 아니 우리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우리 음악을 배우지 않은 현대인들에게서도 삶의 뿌리를 내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야금에 배어있는 절절한 ‘김치냄새’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선생을 통해 가야금은 비로소 ‘김치냄새’도, ‘버터냄새’도 아닌 절대소리로서의 가야금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는 데서, 가야금은 제2의 생명을 얻은 셈이 되는 것이지요. 

우리의 전통문화예술을 보존하기 위해 무형문화재 제도가 처음 만들어진 바로 그 해인 1962년에 선생님은 전통을 벗어난 첫 가야금 독주곡인 ‘숲’을 발표하셨습니다. 그것도 일종의 모순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동의를 하면서도, 또 하나의 모순, 즉 “어떻게 보면 전통을 파괴한 선생님의 작품들이 어떻게 가장 우리의 전통으로 인식되고 고전으로 인식되는가?”, 바로 그런 모순이야말로 현대의 우리 후학들이 새겨보아야 할 화두라고 생각이 됩니다.

선생님은 우륵이 창시한 가야금 음악이 남아있지 않고 현재까지의 가야금 음악이 모두 조선 시대의 것이라는 데서, 그것을 깨기 위하여 멀리 신라로 올라가 보자, 그래서 발표하신 것이 1974년의 ‘침향무(沈香舞)’라고 하시는데, 전통적인 장단과 선율로 된 1장에 이어, 2장에서는 분산화음으로 서역의 이국적인 정취를 불러일으킨 후 오른손의 스타카토를 반주로 왼손에 의한 서정적인 가락이 노래하듯이 흐르고, 3장에서는 정열적으로 진행되던 선율이 갑자기 멈춘 다음 이어지는 트레몰로, 피아니시모에서 포르테로 점차 커지며 긴장감을 주다가 다시 피아니시모로 약해지는 기법, 그 여음이 사라질 즈음에 이어지는 영롱한 분산화음 등 이전까지 우리 음악에서 이런 류의 음악이 없었는데도, 국립국악원의 전통음악 연주회에 등장하는 주요 곡목이 된 것은 어떻게 설명이 되겠습니까?
 
그것은, 선생님이 때로는 서양의 음악스타일을 채용하고 서양의 기보법을 쓰고, 서양의 음악언어를 가끔 채용하지만, 그것이 한국의 전통음악에서 출발한 당신의 음악적 성장과정과 음악의 이해가 바탕으로 깔려있기 때문에 한국전통음악의 어휘를 넘어서면서도 언제나 분명하게 한국적일 수밖에 없는 때문이 아닐까요?

당신이 설명하시듯, 세계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음악을 만들어냈지만, 그 바탕이 한국이기에, 오히려 더 한국적인 것이 된 것이 아닐까요? 우리 음악, 우리 국악의 대중화나 세계화, 상품화를 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거꾸로 가고 싶었다는 선생님의 생각이 곧 가장 유망한 세계화의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우리 범인들이 궁금한 것은, 어떻게 가야금을 하면서 이른바 좋은 대학을 들어가고 나올 수 있었냐는 것이고, 어떻게 다른 과목을 전공을 하면서도 계속 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을 수 있었냐는 것이고. 어떻게 음악대학이 아닌 다른 대학 다른 학과를 졸업하자마자 가야금 강사로 남을 가르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가야금을 하기 위해서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말씀에서, 가야금으로 꼭 무엇이 되겠다는 목표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무조건 가야금이 좋았기 때문에 가야금을 위해 일반 공부를 했다는 설명에서 우리는 선생님이 정말 이 시대, 어릴 때부터 우리 음악을 듣고 보지 못한 세대들이 우리 사회의 주류가 되어 그들로부터 우리 음악이 외면당해 존재 자체가 잊혀질 그런 위기에 처했던 우리 음악을 되살리기 위해 이 땅에 보내지신 것으로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아쉬웠던 것은, 선생님의 음악세계가 좀 더 일찍이 우리 대중들에게 전달되었다면 선생님의 영감을 받은 후학들이 더 많이 나올 수 있었을 텐데, 그 음악의 음반화를 통한 대중들에게의 전달이 너무 늦었다는 것입니다.

이미 미국에서는 1965년에 선생님의 연주가 LP로 나와 절찬을 받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1962년 작곡된 ‘숲’이나, 74년 작곡된 ‘침향무’를 우리가 접하게 된 것이 70년대 후반이고, 80년대에 음반으로 나와 비로소 그 존재를 알게 된 ‘미궁(迷宮)’도 이미 73년에 공연한 것이라는 데서, 우리는 선생님을 받아들이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더군요.

그것은 선생님이 일찍이 백남준씨의 문제작 ‘오페라 섹스트로니크’의 주인공이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과도 마찬가지이고요. 1984년 이후 백남준씨가 우리에게 다가왔지만 정작 훨씬 전인 1968년 웃옷을 벗은 샤롯트 무어맨이 백남준과 함께 퍼포먼스를 하는 그 자리에서 선생님이 가야금을 연주했다는 사실을 우리들이 지나쳐 본 것이지요.

1968년이란 때는 ‘전위(前衛:아방가르드)라는 말도 모르는 시대였는데, 선생님은 이미 전위세계를 몸으로 참여하고 있었고, 그러기에 73년에 무용가 홍신자씨와 ‘미궁’을 공연한 것인데. 정작 우리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것은 1980년도 훨씬 지나서이니 그만큼 우리들은 선생님의 예술세계와 만나는데 시차가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니까 그것도 따지고 보면 우리들은, 우리가 하는 예술세계에 대해서 확신이 없었던 때문이지요. 우리가 갖고 있는 예술에 대한 기준이 우리 스스로의 것이 아니라 서양인들이 만들어놓고 가르쳐 준 그런 것이기에 우리 스스로의 기준으로 우열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꼭 외국의 무슨 대회에 입상을 하고, 그 사회에서 평가를 받은 다음에 역수입하느라 시간이 걸리는 것이지요.

그만큼 우리의 문화예술은 지력 성장이 아니라 타력에 의한 반사성장이 되고 만다는 데 우리의 아픔이 있음을 선생님을 통해서 다시 확인합니다. 오로지 세계무대에서 활동을 하신 백남준 씨만이 선생님 예술의 의미를 일찍부터 알았기에 86년 아시안 게임, 88년 서울 서울올림픽을 기념해서 백남준 선생이 마련한 범지구촌 축제에서도 선생님을 끝까지 모시고 선생님의 예술을 세계에 소개하려고 애를 쓰신 게지요.

현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음악으로 폼을 잡고 있는 사물놀이도 세계 타악인회에 소개되어 절찬을 받은 뒤에 우리가 눈을 뜨고 그것을 키우기 시작한 것이라면, 우리가 세계에 자랑할 만한 우리의 예술을 발견하는 게 이만큼이나 힘들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그런 면에서 우리의 생각을 바로 세우는 일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깨우치게 됩니다.

   
 

선생님의 음악에 대해 ‘수채화’라는 표현이 많은 것을 보면 가야금 소리의 영롱함이 그런 인상을 준 것 같지만, 사실 선생님의 가야금은 영롱하거나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슴 속에서 울려나오는 신음소리에다, 곧 사라져 가야할 운명에 몸부림치는 소리의 탄식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옛날 신라시대 백결선생이 방앗소리를 거문고로 처음 묘사했다고는 하지만 그 뒤 우리 음악은 장단과 박자를 위주로 한 흥의 세계를 주로 다루었다면 누가 정말로 가야금 소리로 뻐꾹새를 만들고 쏟아지는 빗방울이 춤추게 하겠으며, 나른한 숲의 오수를 느낄 수 있도록 하겠습니까? 누가 가슴 속의 그 쥐어짜는 고통을 찾아내어 가야금 12줄로 하여금 울게 하겠습니까?

그것을 처음 해 낸 선생님이야말로 현대의 백결선생이며, 죽으면서도 광릉산(廣陵散) 연주를 남긴 중국 진(晉)나라의 혜강(嵇康)이며, 그의 친구가 연주를 듣고 “아, 멋지도다. 마치 태산 준령(泰山峻嶺) 같도다" 하며 감탄한 백아(伯牙)입니다.

 
흔히 가야금은 화려하고 섬세하고 경쾌하고 표현력이 풍부해서 여성에 비유되고 거문고는 담담하고, 웅장하며, 막힘이 없어 남성에 비유되지만 선생님은 가야금이 남성적인 웅장함과 호방함, 장엄함과 시원함까지를 표현해내도록 함으로서 그 현대에 가장 알맞은 표현력으로 극대화했다는 평가를 받게 될 정도가 되었습니다.

과거 거문고가 선비시대의 으뜸가는 음악(백악지장:白樂之長)이었다면 현대의 우리 음악에서는 가야금이 그 자리를 치고 올라간 것도 선생님과 같은 인물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선생님이 열어놓으신 가야금의 세계는 과연 무변광대의 세계에서 마침내 하늘을 꿰뚫고 울리는 천상의 소리이며, 한스럽고 지루한 가야금 가락에서 벗어나 음악으로 그린 수채화이며, 이세기의 표현처럼 무한한 꿈과 환상, 환희와 동경,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는 고차원의 세계입니다.

그 세계로 인도하기 위해 선생님은 때로는 자르고 때로는 늘이고 때로는 부수고 때로는 펼치며 때로는 뒤집고 때로는 쓸어 담고 때로는 쏟아내고 때로는 삼키고 때로는 토하며, 때로는 참고 때로는 폭발하는 그런 소리를 만들어내었습니다.

그 소리는 과연 우리를 긴 명상으로 이끌며 우리를 무아경으로 초대하며 우리의 근심과 고통까지도 멈추게 한다는 데서 현대와 같은 “초시피드시대의 해독제”로서 평가받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지난 70년대 후반부터 선생님의 음악은 음반으로 나오면 항상 판매 1위라는 신화를 창조하는 이유이겠지요.
 
그날 선생님은 새로 나온 음반을 우리들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13년 만의 새 독집음반인 “달하 노피곰”. 곧 백제 가요 정읍사의 첫 구절이지요? 그 음악을 들려주시며 선생님은 역사상 모든 사랑노래는 이루지 못할 사랑이나 불륜이라는 용감한 정의를 내려주셔서 좌중이 웃다가 넘어졌습니다.

그렇군요. 대부분의 사랑노래가 자기 마누라가 이쁘다고 부르는 경우는 드물고 다 이웃집, 남의 여자, 떠나가서 남과 같이 사는 남자나 여자가 이쁘다는 것이라는 말을 듣고 보니 새삼 그 혜안에 충격을 받습니다.

다만 선생님이 정읍사에 대해 유일하게 여자가 자기 남편 이쁘다고, 잘 돌아오라고 비는 노래인 만큼 맑고 아름답고 깨끗하다고 하신 말씀에 대해서는 완전히 동의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설마! 여인이 자기 남편에 대해 그립고 보고 싶고 안전하게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노래가 아무렴 이 정읍사 하나이려고요.

그러나 저러나 이번 독집도 벌써 차가와지는 음반시장에서 새로운 열기로 국악판매고 1위를 기록한다고 하니 다시 반가운 마음 금할 수 없습니다.

   
 

옛날 선비들은 ‘좌서우금(左書右琴)’이라고 했다고요. 열심히 책을 보다가 시간이 나면 금(琴)을 연주하며 머리를 식히고 마음의 수양을 햇다는 뜻이라면 가야금이나 거문고나 그런 악기는 곧 심심함을 깨는 파적(破寂)의 방편일 뿐만 아니라 우주의 철리, 삶의 대도를 터득해 가는 신비의 영매(靈媒)이기도 한 것입니다.

선생님이 연주를 하실 때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단정한 표정으로 12줄, 17줄을 희롱하며 음악 속에 함몰하시는 모습을 보면 그 진지함에 우리는 다시 경건해지면서 음악의 힘, 선비의 길을 배우게 됩니다.

논어에서 공자가 말씀하신 '흥어시 입어예 성어악(興於詩 立於禮 成於樂)' 이라는 말에서처럼 음악이 인간의 완성을 위한 가장 중요한 방편이 된다는 점에서, 일찍부터 가야금이라는 한 산을 넘어서서 음악이라는 한 산맥을 찾아간 선생님의 노력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봅니다. 

사실 우리의 전통음악은 음의 농현(弄絃)이라던가 박자와 장단의 자유로운 변형, 다양한 변주, 시나위 같은 즉흥성에 의해 다른 어느 나라보다는 연주가의 기량에 따른 자유로움을 많이 인정하는 게 전통이었고 그러다 보니 어느 작곡가 개인 개인의 작품이 남아있지 않은, 그런 특이한 전통을 고수해 왔습니다.

그러기에 창의적인 것으로 전통을 새롭게 만든 선생님이야말로 근대적인 의미로 우리나라 최초의 국악 작곡자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 뒤에 우리 국악에 창작 열풍이 몰아닥친 것도 다 선생님의 덕분입니다.

창의성이 없는 전통 보전은 있을 수 없습니다. 전통도 새로운 시대에 새롭게 태어나야 전통이 되는 것이지, 옛날 그대로만 계속된다면 그것은 전통(傳統)이 아니라 죽어있는 고물로서의 전통(癲痛)일 뿐입니다.

   
 

선생님이 15살에 가야금 소리에 이끌려 우리 음악을 시작하신지 이제 56년, 굳이 60이라는 숫자에 의미를 두자는 것은 아니지만, 얼마 있지 않으면 음악인생 60년이군요. 선생님을 다시 뵈옵고 시간과 세월의 흔적과 가치를 생각하게 된 바로 그 이유처럼 선생님이 열어 보이신 음악은 시간과 존재의 유한성, 곧 존재의 모순을 극복한 영원함 그것입니다.

곧 녹아내리는 이슬이 사라지지만 이슬이란 존재는 영원한 것이며 그 아름다움 또한 영원한 것이라면 어차피 끊어지고 죽어가는 여운이지만, 소리는 그 순간의 존재를 넘어서 혹은 악보로 혹은 음반으로 혹은 화면 속에서 영원의 존재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이번 독집 ‘달하노피곰’의 발매를 축하드리며, 그것이 완결이 아니라 앞으로도 무한히 이어질 선생님의 작품의 또 하나의 징검다리로서, 그러나 그것으로도 또 많은 사람들의 삶을 유한한 차안(此岸)에서 영원한 피안(彼岸)으로 인도하는 다리로서, 많은 이들에게 안도와 기쁨과 희망을 전해주기를 기대해 봅니다.

선생님이 열어 보이신 우리 음악의 세계는 아직도 세계음악에 비하면 ‘미효(未曉)’, 곧 새벽이지만 아직 해가 뜨지 않고 먼 동쪽에 기별만 보이는 새벽입니다. 우리 음악이 새벽을 지나 해가 뜨는 진정한 아침이 될 수 있도록 선생님께서 더 많은 후학들에게 깨우침을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더욱 건강하소서!

2007년 6월 16일 이동식 올림

그러한 건강에의 기원이 허무하게 깨어졌습니다. 
하늘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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