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용두리 유적서 가야 토광묘·토기·청동기 집자리 출토
구례 용두리 유적서 가야 토광묘·토기·청동기 집자리 출토
  • 정상원 인턴기자
  • 승인 2018.02.01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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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백제 교류 양상 추측케 할 자료

구례 용두리 고분 유적에서 가야계 토광묘(목곽묘, 목관묘) 3기와 가야계 토기, 청동기 시대 집자리 등이 출토됐다.

구례 용두리 고분은 1980년대부터 경작과 개간과정에서 가야계 유물 다수가 수습돼 알려졌다. 이번 조사는 훼손을 막고 정확한 성격과 규모를 파악하기 위해 작년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진행됐다.

유적은 섬진강과 인접한 용두마을 남쪽 구릉에 위치하며, 용두마을 강변은 예로부터 하동-섬진강을 드나들던 배를 매는 선착장이 있었던 곳이다.

발굴조사 결과 총 토광묘 3기가 확인되었는데, 묘광(墓壙)과 곽(관) 사이는 회색점토를 채운 점이 특징이다. 3호묘는 구릉 남사면부에 조성되었으며, 청동기 시대 집자리와 중복돼 있다.

▲ 2호와 3호토광묘 (사진제공=문화재청)

유물은 머리 쪽에서 목짧은항아리, 손잡이잔, 바리모양토기, 가락바퀴, 쇠칼이 발견됐고, 발 근처에는 목짧은항아리, 굽다리접시 2점이 묻혀 있었다. 출토상태로 보아 목곽 내부에 안치했던 유물로 판단된다.

▲ 3호 출토유물 (사진제공=문화재청)

2호 토광묘는 3호와 바로 인접하여 나란하게 자리하였으며, 3호에 비해 규모가 작다. 등고선과 평행하게 조성됐고 묘광과 곽 사이에는 회색점토로 채워 넣은 점 등이 동일하다. 유물은 머리 쪽에 목짧은항아리와 굽다리단지, 발쪽에 굽다리접시와 굽다리입선단지가 출토됐다.

구례 용두리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은 대부분 아라가야계, 소가야계, 대가야계 등 다양한 양식의 가야계 토기이다. 이는 구례 용두리 일대가 오랜 시간 동안 섬진강뿐만 아니라 내륙을 통한 가야 무역로로 이용됐음을 알려준다.

문화재청은 “구례군과 함께 추가 조사를 통해 앞으로 섬진강을 중심으로 한 가야지역과 백제지역 교류관계를 밝히고자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