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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정의 발레인사이트]선한 웃음 속의 강인한 실천가 - 이상만
2018년 02월 10일 (토) 16:01:22 김순정 성신여대 무용예술학과 교수 sctoday@hanmail.net
   
▲김순정 성신여대 무용예술학과 교수

발레인사이트란 이름으로 글을 쓴지 벌써 4년째에 접어들고 있다. 주로 발레의 주요 작품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새해 들면서 잊혀져가고 있는 한국의 발레마스터들을 더 늦기 전에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지보다는 음지에서 묵묵히 발레에 대한 사그러지지 않는 열정으로 매진하던 스승과 선배들에 대한 오마주가 되어주면 좋겠다. 작년 몇 차례 청주무용협회에서 전화를 받았던 것이 한 요인이 되었을 것 같다.

청주태생 무용가 이상만 선생님을 기리는 행사를 청주시에서 기획하니 작은 동참을 부탁한다는 취지의 연락이었다.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1992년부터 3년간 나의 첫 대학 부임지가 청주대학교인 것도 인연이니까.

이상만(1948-2014)은 죽기 직전까지 무대에 선 투철한 정신의 무용가이자 안무가다. 충북 괴산 유복한 집에서 태어난 그는 음악, 미술 등에 소질을 보였다. 서라벌예대, 한양대를 졸업했고 한국 발레리노 최초로 한양대에서 석사학위까지 마쳤다.

   
▲1978년 내셔날 발레일리노이-레이몬다중 파드뒤 이상만(사진)

발레는 예법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듯 후배나 제자에게도 늘 경어를 쓰고 사려 깊던 이상만 선생은 임성남 발레단과 국립발레단의 촉망받던 발레리노였다. 그는 조용함과 활달함을 아우르는 재주꾼이었다. 늘 웃음 지으며 충청도 억양의 느릿한 말투를 쓰는 그가 국립극장 무대 위에서는 카르멘의 돈 호세로, 지젤의 알브레히트로 변신을 했다.

일상과 무대에서의 간극이 나에게는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른 후 그가 안무한 코펠리아를 보며, 저렇게 앞서간 안무가가 계셨구나라며 감탄사를 보냈다. 그러면서 국내의 발레단, 학교에서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음을 안타까워했다.

   
▲이상만 리허설장면(사진)

오래 전 연습할 곳이 마땅치 않았을 때 잠시 이상만 선생의 클래스를 받으러 다녔다. 교대사거리 근처 LEE발레단 연습실에는 사진 하나가 걸려 있었다. 끝없이 긴 기찻길 선로 위에 한 발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청바지를 입은 발레리노의 뒷모습. 그가 추구하는 이상과 도전의식이 사진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1977년 도미하여 미국 일리노이 내셔널발레단과 뉴욕발레단에서 주역으로 활동한 이상만의 사진.

1995년 영구 귀국한 뒤 그의 가족은 미국으로 다시 돌아갔다. 홀로 남은 이상만은 2014년 암으로 영면할 때까지 가르치고 연습하고 안무를 했다. 시간이 나면 조각을 하거나 그림을 그려 전시를 하고 팔아 약간의 수입을 올렸다. 나의 거실 한 구석에도 그의 조각품이 놓여 있다. 튀튀를 입은 발레리나 전신상인데 비율이 대단히 초현실적이다. 그런 몸이라면 세상에 못해낼 동작이나 기교는 없으리라.

   
▲이상만 선생

러시아의 안무가 중에도 그림을 잘 그리는 이들이 있다. 갈레이조프스키는 직접 구상한 동작들을 그려서 주변에 보여주곤 했는데 운동감의 표현이 대단히 탁월했다. 바실리예프도 볼쇼이극장 로비에 미술전시를 열 정도였다. 발레 역시 공간에 몸으로 디자인을 하는 것이니 일맥상통한다.

이상만의 1985년 일시 귀국하여 가진 공연 포스터는 생생한 운동감이 그대로 전해지는 사진이다. <집시의 노래> 한 장면인데, 상대역은 김선희(현 한예종 무용원장)였다. 일찌감치 뉴욕에서 활동하던 이상만의 도움으로, 한국의 무용수들이 뉴욕을 방문해 발레의 새로운 기류를 흡수하는 일도 많았다.

당시 뉴욕 아메리칸 발레시어터는 소련에서 망명한 바리쉬니코프가 합류해 주옥같은 러시아 발레 전막작품들이 선보여지고 있던 때였다. 파키타도 라 바야데르도 당시에 서방세계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문예진흥원 지원으로 뉴욕 1년 연수를 마친 김학자는 귀국하자마자 국립극장 소극장에서 라 바야데르 3막을 무대에 올렸다. 국립발레단 신입단원이던 나는, 처음 보는 신비한 작품을 만난 기쁨에 맨 뒷줄에서 춤추면서도 무척 행복했다.

   
▲임성남발레단 칼멘 전막 공연 중 이상만,진수인. (사진 가운데)

다른 예술장르에 비하여 발레는 역사적 기록 면에서 취약하다. 공연을 하는 순간 춤은 사라진다. 아무리 영상기법이 뛰어나다 해도 3차원의 입체적인 공연은 밋밋한 2차원의 평면으로 바뀐 상태에서 저장되고 복원, 재생된다는 한계가 있다.

한 시대를 살며 우리 곁에서 숨 쉬고 춤추고 안무한 흔적을 우리의 기억을 통해서 재구성된다. 세계 여러 나라의 발레단, 발레학교의 박물관, 사무실과 복도 등에는 그 곳을 오고간 수많은 예술가의 사진을 걸어 여전히 그들이 우리와 함께 살아있음을 상기시켜준다. 이상만의 존재 역시 당연히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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