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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앤 시블리 오브라이언 "어려워도 승리 믿고 나아가자, 간디와 허균처럼"
"다문화 시대에 접어든 한국, 시각을 바꾸면 충분히 문제 해결할 수 있어"
2018년 02월 12일 (월) 11:22:33 임동현 기자, 정상원 인턴기자 press@sctoday.co.kr

고백해야겠다. 앤 시블리 오브라이언과의 인터뷰를 앞둘 때만해도 우리는 그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했다. <홍길동전>을 미국에 소개시킨 인물이라는 정보를 알았지만 그것도 10여년 전에 나온 이야기였다. 단지 <홍길동전>만으로 그와 이야기를 하기에는 뭔가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사가 필요했다.

그리고 조사를 하면서, 그리고 인터뷰를 하면서 느낀 것은 <홍길동전> 소개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다른 나라 사람이라고, 피부 색깔이 다르다고 차별받는 것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미국의 양심적 병역거부를 지지하는 인권운동가였고, 간디의 영향을 받아 비폭력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활동가였다.

그리고, '미치광이 나라'로만 인식되고 있는 북한의 실제 모습을 보여주며 북한인들의 참모습을 통해 북한을 적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알리고 있는 평화운동가였다.

그런 그에게 <홍길동전>은 자신의 생각을 담아낸 책이였을 것이고 그렇기에 <홍길동전>을 미국에 알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 앤 시블리 오브라이언과 그가 미국에 소개한 홍길동전 (사진=정영신 사진가)

우리는 그 이야기를 생각하며 앤 시블리 오브라이언을 만났다. 교통체증으로 약속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지만 앤 시블리 오브라이언은 오히려 "저도 지금 막 왔다"며 여유롭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그는 중간중간 자신이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유쾌하게 인터뷰에 응했다. 그의 기억들은 모두 그의 태블릿PC 안에 담겨져 있었고 그는 그 안에 담겨진 모든 것을 보여주려했다. 쾌활함과 함께 전해진 그의 진심을 이제 들어볼 시간이다.

한국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는지?

부모님이 어릴 때부터 타국에서 일하는 것을 꿈꾸셨다. 친할아버지가 중국에서 선교사 활동을 했고 중국에서 아버지를 낳았다. 아버지는 자연스럽게 의료 선교사가 되기를 희망했고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로 해외에서 봉사를 꿈꾸는 분이셨다. 최고의 조합이었다(웃음).

형제 4명과 외국으로 떠난다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었다. 선교부에서 태국, 인도, 한국을 지정했는데 아버지가 더위를 싫어하셔서(웃음) 비교적 덜 더운 한국으로 가게 됐다. 아버지의 체질이 한국으로 갈 운명을 만든 셈이다(웃음).

미국에 살 때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 사이에서 살다보니 크게 부각이 되지 않았는데 한국에 오자마자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웃음). 금발에 큰 키, 큰 눈을 신기하게 본 거다. 사람들이 주목하는 모습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당시는 이제 막 전쟁이 끝나서 어려웠던 상황이었다. 폐허가 된 건물 사이에서 내 또래의 아이들이 깡통을 들고 구걸하기도 했고 어려운 사람은 동굴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그랬던 나라가 정말 많이 변했다. 세계에서 제일 빨리 변화한 나라라는 점에서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대구에 선교사 집이 있었는데 그 당시 살았던 대구 한옥집은 지금 박물관이 됐다. 대구 집은 온돌방이었고 고무신 신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정말 한국식으로 살았다. 그러다 1969년도에 거제도로 이사를 했고 거제도에서 문화를 체득했다.

   
▲8세 때 찍은 사진을 보여주는 앤 시블리 오브라이언. 가운데 한복을 입은 어린이가 그다. (사진=정영신 사진가)

지난 2012년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는데 다음 해에 어머니, 형제, 한국 지인들과 함께 추도식을 한국에서 치렀다. 당시 어려운 일을 한 동료들이 기억에 남고 같이 지냈던 언니도 기억이 남는다.

<홍길동전>을 미국에 소개한 계기는

하버드 대학 동양도서관 문학코너에서 처음 <홍길동전>을 만났다. 처음에는 민담인 줄 알았는데 작가가 있는 소설이라는 점에서 흥미로웠고 내용을 봐도 마술, 정의, 건국 등 재미있는 요소들이 있어 아이들이 흥미롭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양의 ‘로빈 훗’을 보는 듯했다.

책을 소개하면서 아이들에게 적합하게 보여지기 위해 정치 이야기보다는 모험 위주로 각색을 했다. 그렇지만 바로 책으로 출간되지는 못했다. 수익성의 문제가 걸림돌이었고 결국 출판되는데 10년이 걸렸다.

민속전래동화만으로는 판매가 힘들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만화를 그리기로 결심했다. 당시 그래픽노블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에 착안해 닌자와 그래픽노블을 결합한 작품을 구상했다.

한국 드라마 등을 보면서 당시 의상과 생활양식을 연구했고 큐레이터와 협업해 짚신, 호롱불 등 세부적인 요소를 살리려고 노력했다. 해인사를 방문해서 여러 영감을 얻고 거제도와 대구에서 생활하면서 본 풍경을 그림에 적용시키기도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것이 ‘사랑의 노동’이었다.

그렇다면 왜 <홍길동전>일까? 지금 이 시대에 <홍길동전>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먼저 정의. 지금 한국도 미국도 그렇고 세계 여러 나라가 빈부 격차에 시달리고 있다. 홍길동의 ‘활빈당’은 현재 사회에 만연된 빈부격차에 대해 아이들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홍길동은 서자라는 이유로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형을 형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신세다. 이는 결국 길동이 집을 나서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부모가 없는 아이나 ‘기러기 아빠’ 가정에서 아버지가 주는 의미를 색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다.

많은 시련을 겪지만 홍길동은 결국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룬다. 이를 통해 아이들이 길동의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자세를 배웠으면 하는 생각도 있다.

정말 환상적인 이야기다. 2006년 초판이 인쇄된 후 아직도 출판되고 있고 국제학교에서도 인기가 많다. 이번에 한국에 와서도 국제학교에서 <홍길동전>을 소개했다.

<홍길동전> 이외에 흥미를 두는 한국 작품이 있는가?

예전에 <바보온달> 이야기도 작품으로 낸 적이 있다. 하지만 요즘에는 특정 작품보다는 인사동에서 볼 수 있는 해태나 용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

예전에는 한국과 미국에 양국 작품을 소개하려는 시도가 거의 없었지만 이제는 양국 작가들이 서로의 작품을 소개한다. 책 중에 ‘Where is 할머니’라는 책이 있는데 한국의 민담을 이야기하면서 영어와 한국말이 섞여있다. 작품 소개가 다양해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굳이 내가 이 역할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지금은 두 나라 사이에 교두보 역할을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 <홍길동전> 책을 보여주며 설명을 하는 앤 시블리 오브라이언 (사진=정영신 사진가)

인종·인권 관련 운동을 하고 있는데

인종의 벽과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을 타파하는 책을 많이 썼다. 어렸을 적 한국에서 살았기 때문에 인종의 다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자랐다. ‘다름’은 그저 정원에 여러 꽃이 있는 풍경과 유사할 뿐이다. 이를 위해 미국에서 다문화·다인종 인식개선 발표나 워크샵을 다수 하고 있다.

한국도 이제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었다고 들었다. 미국의 경우 예전부터 여러 사람들이 같이 살았기 때문에 그나마 익숙한 풍경이지만 ‘5천년 단일민족’을 앞세우는 한국에게는 힘든 경험이 될 수도 있다.

다수의 외국인 노동자 다수가 열악한 환경 속에서 근무한다고 들었다. 그렇지만 한국은 잘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한국에 정착했을 때 당시 사람들은 나와 가족들을 환대했고 한가족처럼 생각했다. 한국에서 이런 점을 배웠기에 다문화와 인종에 대한 폭넓은 시각을 가질 수 있었고 이 경험을 토대로 미국에서 다문화 운동을 할 수 있었다. 한국인들이 조금만 시각을 전환해서 본다면 지금의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2009년 <간디의 뒤를 따라서>라는 책을 냈다. 선생이 그림을 그리고 선생의 아들이 이 책을 썼는데

간디의 비폭력 운동에 관심이 많았었고 이를 책으로 낸 것이다. 아들 페리 에드먼드 오브라이언은 공수부대 의무병으로 복무하던 시절 아프간 전쟁을 겪으면서 아이들이 폭격에 희생당하는 참상을 경험했고 양심적 병역 거부자로 명예 제대를 했다.

이후 양심적 병역 거부자가 되기 위한 정보를 알려주는 사이트를 개설했고, 지금은 ‘VetsVsHate'라는 인권단체에서 무슬림, 이민자, 성소수자 등을 위한 인권운동을 하는 중이다. 시위를 하다가 경찰에게 잡힌 적도 있었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 때문에 국제 사회에서 잡음이 많다. 한국도 최근 비슷한 상황을 겪었는데 지난해에 보여준 촛불집회에 크게 감명 받았다. 촛불집회 사진을 계속 들고 다닌다(웃음)

현재 한국에서도 양심적 병역거부를 두고 갈등이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판단이 좀 어렵다. 미국과 달리 한국은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있다. 아들이 한국의 양심적 병역 거부자와 만난 적이 있었는데 한국의 특수성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지금의 갈등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지금 한국의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이 각종 불이익을 받는다고 하는데 ‘과연 이런 판단이 최고라고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간디는 비폭력 운동의 상징으로 잘 알려져 있다. 간디에 대한 선생의 생각은?

최근에 책을 개정하면서 다시 한 번 관련 도서를 정독했다. 현재 미국은 진보와 소수자들에게 정말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지만 간디와 넬슨 만델라 모두 지금처럼 어려운 상황을 겪었지만 계속 전진했고 정의와 권리를 찾았다.

따라서 우리 모두 어려운 상황이라고 낙담하지 말고 간디처럼 승리를 믿고 나아가야 한다. <홍길동전>을 쓴 허균의 마음이 바로 그랬다. 그래서 <홍길동전>을 좋아한다(웃음).

최근 <In the Shadow of the Sun>이라는 책을 집필했다. 북한 관련 내용인데 책을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모스크바에서 지인의 소개로 김현식 교수와 알게 됐다. 김 교수는 북한 고위층이자 김정일의 러시아어 개인교사를 했던 인물이다. 김 교수와 며칠 동안 이야기하면서 북한과 관련된 책을 내겠다는 생각과 소스를 얻었다.

김 교수에게 책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기를 원하냐고 물어봤고 그는 북한주민에 대해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싶다고 했다. 언론에서는 연일 북한 정권의 핵실험을 보도하며 ‘김정은은 미치광이’라고 몰아가기 바쁘지 북한 주민의 실상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다루지 않는다.

실제 국제학교를 방문했을 때에도 아이들에게 북한에 대해 떠오르는 말을 조사해보면 'Crazy'(미친), 'Nuclear'(핵) 등이 많았다. 그러나 그런 아이들에게 북한의 일상이 담긴 사진을 보여주면 언론에서 보도되는 모습과는 다른 풍경에 모두 놀란다.

이 책은 어린이들에게 북한 주민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 내는데 중점을 두었다. 북한 주민을 설정하고 각각 인물에 대해 세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어린이들이 이 책을 보면서 북한 주민의 일상을 보고 사람들의 인식이 잘못됐다는 점을 알았으면 좋겠다.

더불어 이 책은 처음으로 나온 미국 어린이를 위한 북한 관련 책이다. 앞으로 이러한 작품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작품 활동 초기에 Juanita havill과 자메이카 관련 책에 활동을 많이 했다

대부분의 출판 과정에서 작가와 삽화가가 만날 기회는 많지 않다. 에디터의 배정대로 일을 진행했고 Juanita havill과는 딱 한번 만나봤다. 당시 출판된 책들이 미국 어린이 도서로 큰 인기를 끌어 당시 미국 영부인이던 바바라 부시(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부인)의 초청으로 백악관에서 본 적이 있다.

삽화가 굉장히 사실적이다

어릴 때부터 사람 형상에 관심이 많았다. 스케치를 자주했고 더 정밀하게 그리고자 노력했다. 7살 때 그림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는데 오늘 날 나의 위치를 보니 그 때 꿈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뿌듯하다.

   
▲ 앤 시블리 오브라이언 (사진=정영신 사진가)

앞으로의 계획은

이제 한국나이로 환갑을 넘긴 65세다. 지금까지 작품 활동을 하면서 보지 못한, 놓친 부분을 그리고 싶다. 여태까지 34권이라는 많은 책을 냈지만 놓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서 아직 내 책을 냈다고 생각이 들지 않는다.

(자신의 스케치북을 꺼내 보여주며) 지금 내 스케치북은 아직 백지 상태다. 항상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내가 그리고 싶어하는 바를 위해 탐구하고 노력하며 여백을 채워나가고 싶다. 이 여백이 해태와 용으로 채워질 수 있는 것이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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