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이윤택을 보며 촉구한다. '예술가의 자기 반성'을
[기자의 눈] 이윤택을 보며 촉구한다. '예술가의 자기 반성'을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8.02.19 16: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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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년 가까운 생활 동안 관습적으로 일어난 아주 나쁜 행태였습니다. 이게 나쁜 죄인지 모르고 저질렀을 수도 있고 죄의식을 가지면서도 더러운 욕망을 억제하지 못해 했을 수도 있습니다".(이윤택 연극연출가)

""'그래도 선생님인데', '그래도 후배인데' 라는 생각에 상처받지 않게 하려고 한 것이 어리석은 생각이었습니다. (선생님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저희 인식이 부족했습니다.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이 지금의 문제를 야기한 것 같습니다". (김소희 연희단거리패 대표)

▲ 기자회견을 하는 이윤택 연출가

성추행과 성폭행 의혹을 받고 있는 이윤택 연출가는 19일 기자회견을 통해 사과의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그가 이날 한 것은 '온전한 사과'가 아니었다. 그는 성추행을 인정했지만 폭행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성관계는 합의 하에 했으며 물리적인 폭력이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상대방이 원치 않는데 관계가 이뤄진 건 인정하느냐"는 물음에는 "죄송하다. 차라리 법적 절차에 따라 진실이 밝혀지길 원한다"고 했다. 문제는 공소시효가 지나 법적 절차가 이루어지기 어려운 상황. 결국 이는 '면피용'이라는 판단을 내리기에 충분한 것이다. 법의 뒤에 숨겠다는 의미로 보일 수 있다. 

그러면서 그는 "수차례 항의를 받았지만 제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고 이런 악순환이 오랫동안 계속됐다. 이게 나쁜 죄인지 모르고 저질렀을 수도 있고 죄의식을 가지면서도 더러운 욕망을 억제하지 못해 했을 수도 있다"고 했다. 과연 그는 그 '더러운 욕망'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모르고 있을까?

'더러운 욕망'은 우선 추행과 폭행을 당한 이들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직접 만나 사과하겠다"고 그는 말했지만 이를 곧이 들은 이들은 많지 않다. 폭행은 아니라고 하면서 사과는 하겠다고 한다.

성폭행 피해자들의 주장은 인정하지 않겠다고 했다. '법적 절차'대로 하자고 한다. 한 마디로 '법대로 하자'는 것이었다. 회견장에 있던 연극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XX"이라는 욕설이 튀어나왔다. 반성없는 이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이었다.

'더러운 욕망'은 결국 '연희단거리패'를 붕괴시켰다. 김소희 대표는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상처를 받지 않게 하려고 한 것이 어리석었다"면서 "많은 고민 끝에 우리의 문제라는 것에 인식을 같이 했다. 이번 일을 용납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해체를 결정했다. 대표로서 책임지겠다"고 했다.

연희단거리패의 '숨김'은 비판받을 대목이지만 결국 그로 인해 단원들의 꿈이 날아가고 말았다. 이는 이윤택이 저지른 또 하나의 '폭행'이다.

무엇보다 그의 '더러운 욕망'은 예술인을 향한 대중의 경멸을 가져왔다. 이미 고은 시인의 성추행이 최영미 시인의 시를 통해 드러난 상황에서 전 정권의 '블랙리스트 1호'로 한때 존경의 대상이 됐던 이가 저질렀다는 일련의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용서가 될 수 없었던 상황이다.

문단의, 연극계의 '거목'으로 추앙받던 이가 사실은 여성을 향한 추행을 일상으로 여긴 이들이라는 점은 대중의 반감은 물론 경멸을 받기에 충분하다.

설상가상으로 이윤택 연출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피해자가 밀양연극촌 촌장이자 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 밀양백중놀이 보유자인 인간문화재 하용부에게도 성폭행을 당했다는 글이 SNS에 나오면서 예술인을 향한 비난과 경멸이 하늘을 찌르게 됐다.

이렇게 가면 이제 '예술계의 거목', '인간문화재' 등의 칭호가 '공범', '똑같은 성추행범'으로 인식될 날도 머지 않은 것 같다. 

'그래도 선생님인데' 김소희 대표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그것을 막지 못한 연희단거리패도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극단 해체를 밝히고 자체 조사를 하겠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의심은 남아있는 게 사실이다.

극단이 없이 자체 조사가 가능할 것인지, 하나의 '피하는 구석' 마련은 아닌지 하는 의심 말이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큰 의심은 '과연 이윤택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는가?'라는 것이다.

이윤택은 사과했다. 하지만 그것을 사과로 볼 수는 없었다.  이날 기자회견에 선 이는 연극연출가도, 전 정권 '블랙리스트 1호'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행위를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한 권력자였을 뿐이었다. 진정한 자기 반성이 없었다. 대중의 분노는 더 거세지고 있다.

이제 예술인들은 신임을 잃었다. '블랙리스트' 때문에 신음하고 제대로 지원도 받지 못해 힘겨운 생활을 했다는 것도 모두 잊혀지고 있다. 그저 여성들에게 '추악한 행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이를 방조한 이들로만 기억되고 있다.

'지원을 늘려달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 다 좋다. '적폐를 처단하라' 해야 한다. 하지만 가장 큰 적은 늘 내부에 있다. 원로라는 이들이 '적폐'로 드러나고 이로 인해 예술계가 불신의 늪에 빠진 것은 누구의 탓으로 돌려야하나? 이것도 전 정권 탓이고 문체부 탓일까?

예술인들의 철저한 자기 반성이 필요한 때가 됐다. 원로라고 더 이상 존경받는 일은 이제 없다. 철저한 자기 반성이 먼저다. 이윤택의 '반성없는' 모습을 보며 느낀, 정말 사무치게 느껴지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