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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강의 뮤지컬레터] 신창극 ‘소녀가’, 이소연 배우에게
2018년 03월 13일 (화) 11:29:41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press@sctoday.co.kr
   
▲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소녀는, 다, 알고 있었다.” 당신의 또박또박한 대사가, 지금도 제 귓가를 울립니다. 신창극 ‘소녀가’는 동화 ‘빨간 망토’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모노드라마 형식을 취한 ‘소녀가’에서, 소녀는 늑대에게 당하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늑대를 잠시 가지고 놀게 되죠. 

이자람이 대본과 연출을 맡은 ‘소녀가’에서, 당신의 소리와 연기를 통해 그려지는 ‘소녀’는 매력적입니다. 그녀는 ‘소녀’라는 사회적 고정관념을 조롱하면서, 또한 ‘여성’이란 억압의 테두리를 빗겨갑니다. ‘소녀가’의 소녀는 찰나적 욕구에 매우 솔직한 모습으로, 이런 모습을 당신은 매우 유쾌하고 세련되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이소연이라는 배우는, 특히 두 팔과 두 다리를 매우 크게 움직이면서 동작을 강조합니다. 기존의 창극과도 다르고, 일반적 연극과도 다른 움직임이죠. 무대에서 활보하다가 두 다리를 넓게 벌리고 앉은 당신의 모습을 보면서, ‘쩍벌남’이 떠올랐습니다. 대개 중년남성의 이런 모습은 매우 불쾌하고 부정적인데, 무대에서 보여준 당신의 모습은 오히려 반대였습니다.

남녀에 따라서 이리 달라질 수 있을까요? 남자는 괜찮아도 여자는 안 된다고 암묵적인 관습이 있는 사회에서, ‘쩍벌녀’가 아닌 ‘매너녀’에게 길들여지기를 바라는 세상을 향해서, 소녀의 매우 당당하고 당돌한 ‘자기선언’처럼 비춰졌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선 두 다리를 쩍 벌리고, 또한 두 팔을 크게 펼쳐지면 누워있는 모습이죠. 우리가 보통 말하는 ‘큰 대(大)자로 누운’ 모습이죠. 관객에게도 당신을 통해서 사지(四肢)의 자유로움과 편안함이 그대로 전달되더군요.

‘신창극’은 판소리를 기본으로 한 공연형태인데, 특히 이 작품을 보면서 동양 특유의 지체극(肢體劇)이 떠올랐습니다. 서구의 연극이 대사와 표정을 중시한다면, 동양의 전통극은 몸의 움직임의 자유로움을 강조하는데, 신창극 ‘소녀가’는 당신을 통해서 ‘몸’의 움직임이 작품에 끼치는 긍정적 효과를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신창극 ‘소녀가’의 끝 장면에서, 남도민요 ‘방아타령’을 떠올렸습니다. 방아타령에서의 ‘방아’는 어느 순간에 ‘사람’이 됩니다. 방아의 생김새와 움직임이 그대로 사람의 모습을 비유하는 것이죠. 노래를 통해서 ‘19금’의 세계를 드러냅니다.

“방아 만든 형용(形容)을 보니, 사람을 비(比) 양턴가, 두 다리를 쩍 벌렸구나.” 이런 모습이 이런 행동으로 이어지죠. “한 다리 올려 딛고 한 다리 내려딛고, 오르락내리락 하는 모습이 이상하고 맹랑하다” 이런 ‘방아타령’은 판소리 ‘심청가’에도 등장을 합니다. 

이 소설 속의 소녀를, 이소연이란 배우가 참 잘 그려냈음에 탄복합니다. 내 눈에 비친 당신의 모습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서 이렇습니다. “야살스러운데 밉지 않고, 되바라졌지만 사랑스럽다” 아름다움은 솔직함에서 나온다는 말도 가능할까요?

대본과 연출을 맡은 이자람이 설정한 ‘소녀’가 그러하고, 이런 소녀를 당신의 연기와 소리로 아주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당신이 그려내는 ‘소녀’를 보면서, ‘미투’와 ‘위드 유’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의 전통예술 중에서, 탈춤과 판소리처럼 민중에서 시작한 연희에선 양반들이 못됐지만 머을 조롱하는 것이 있죠.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갑’의 존재를, ‘을’이 모여서 이런 놀이를 통해서나마 소통의 창구를 마련하는 것이죠. 

요즘 특히나 얼룩진 문화계를 생각하면서, ‘갑남을녀(甲男乙女)’를 생각하면서 참 편치 않았습니다. 원래 갑남을녀의 뜻은 매우 평범한 남녀를 뜻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여기서 쓰는 ‘갑남을녀’을 매우 다릅니다. 지금의 한국의 세태를 그대로 드러내는 사자성어죠. ‘갑’이란 위치에 있는 남성이 ‘을’에 해당하는 여성에게 행했던 못된 짓거리를 말합니다.

나는 ‘소녀가’를 보고 난 후, 이 작품과 관련된 글을 쓰면서 ‘미 투’와 ‘위드 유’를 연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건 한국의 공연계에서 오랫동안 암묵적으로 행태를 뿌리를 내렸고, 결코 묵과할 수 없는 범죄행위가 이뤄진 공연계에서, ‘소녀가’란 작품은 ‘늑대’ 혹은 ‘괴물’인 ‘남성’을 향한 여성들의 유쾌하고 상쾌하고 통쾌한 복수와 같은 골계극(滑稽劇)으로서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역할을 이소연이란 배우가 멋지게 해준 것이죠. 

‘갑남을녀’가 오래도록 고착된 사회에서 ‘갑녀을남’와 같은 작품이 나오기도 바랍니다. 그러고 보니 과거 이자람이 만든 ‘구지가’, 곧 ‘지구’를 거꾸로 부친 제목을 통해서, 여성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면서, 남성중심 사회를 예리하게 지적했던 작품도 생각나네요. 이 작품도 이소연이란 배우가 다시 무대에 올려주길 바라는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제가 원래 음악을 전공으로 하는 사람인데, 요즘 ‘시절이 하 수상하니’ 저 또한 이런 글을 쓰지 않을 수 없겠네요. 이자람과 이소연의 작품을 보면서, 두 사람이 공유하는 판소리의 스승인 ‘송순섭’선생을 비롯해서, 판소리를 연극으로 생각했던 동초 김연수 선생이 떠올랐습니다. 

그동안 이런 신창극과 같은 ‘창작판소리’를 보면서, 늘 ‘소리’의 섭섭함과 아쉬움을 느꼈는데, 이제 비로소 당신의 든든하고 탄탄한 소리를 바탕으로 한 ‘신창극’을 보면서, 이런 작품에서도 ‘소리로 승부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소녀가’와 ‘이소연’을 통해서, 전통판소리와는 또 다른 섬세하고 부드러운 ‘여성적’ 혹은 ‘소녀적’ 면을 보았습니다. 이런 표현이 지나치게 성역할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젠더폭력’을 없애려는 세상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도 걱정되긴 합니다.

하지만, 기존의 전통판소리 혹은 남성판소리가 마치 ‘무명삼베’와 같은 질감이었다면, 이번 이소연이 만들어낸 ‘소녀가’의 소리의 질감은 ‘모시비단’과 같습니다. 전통판소리가 ‘린넨’같다면, 이소연이 그려낸 ‘소녀가’는 마치 ‘실크’와 같았다는 점에 많은 분들이 동의하시리라 생각됩니다. 

앞으로 이소연이 특히 잘 그려낼 수 있는 작품을 더욱더 많이 보여주세요. 더불어서 그런 작품 속에서 ‘여성’들만이 성취해낼 수 있는 성과를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이자람 연출 - 이소연 소리의 ‘소녀가’를 보면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남성으로서의 자괴감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해주어서 고맙습니다.

먼 훗날 세상이 바뀌어서 ‘소년가’가 나오게도 될까요? ‘미투’와 ‘위드 유’에 동참하면서, 이런 농담반 진담반의 우스갯소리를 하면서, ‘소녀가’란 작품에 대해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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