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오재형 독립영화 감독 “한 장르보다 모든 분야가 결합된 것이 새로운 장르고 자신 있는 분야”
[인터뷰] 오재형 독립영화 감독 “한 장르보다 모든 분야가 결합된 것이 새로운 장르고 자신 있는 분야”
  • 정상원 인턴기자
  • 승인 2018.03.21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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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플랫폼을 통해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능력 있는 작가가 되고 싶다."

관용어처럼 쓰는 우리 말 중에 ‘한 우물만 판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한 분야에 통달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깊이 다달아야 한다는 의미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일컬어 달인이라 칭하기도 한다. 이처럼 사람들에게 ‘달인’이라는 말은 곧 존경과 동경을 담는 말이다. 오랜 경력을 뒷받침하는 빼어난 퍼포먼스는 많은 사람을 매료시키기 충분하다.

그러나 다원화된 현대 사회를 드러내기에는 한 분야만으로는 부족한 점이 많다. 여러 장르가 어우러져 내는 종합적인 시너지야 말로 앞으로 예술이 나아갈 가능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장르들을 결합해 새로운 자신만의 포맷으로 만드는 오재형 작가를 만났다. 피아노도 치고 그림도 그리고 영상도 만드는 그는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여러 가지 매체를 사용하는 작가입니다’라는 말이 더 이상 작가에 대한 설명이 되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가 그린 작품과 예술세계에 대해 듣고자 구기동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을 방문했다.

▲ 오재형 감독

작품에서 피아노뿐만 아니라 연기, 영상 작업 등 연출도 겸하고 있다. 이 중에서 가장 자신 있고 흥미를 가지는 분야는 무엇인가?

어렸을 적부터 꿈이 화가였고 너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따라서 예술의 근간이 화가이기 때문에 화가로서 정체성이 강하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는 독립영화 분야에서 활동하다 보니 작가라는 호칭보다는 감독이라는 호칭을 더 많이 듣고 있다.

화가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재능을 고려해 본다면 그림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영상 분야로 진출하게 됐고 지금은 그림과 영상 어느 하나를 선택하기보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영상을 만든다라는 개념이 좀 더 맞는 것 같다.

처음 영상작업에 입문했을 때, 조명 같은 관련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그저 DSLR만 잡고 작업을 시작했다. 그 때 영상으로만 승부하기에는 다른 작품보다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해서 애니메이션이나 그림을 다큐멘터리에 삽입하기 시작했다.

이후 작업을 계속하다보니 영상에 그림뿐만 아니라 피아노와 같은 내 장기를 살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분야가 특별히 자신 있다고 하기 보다는 모든 것이 결합된 것이 새로운 장르고 자신 있는 분야라고 말하고 싶다.

하나하나 놓고 보면 뛰어난 것을 없지만 결합해서 나만의 포맷으로 만드는 작업을 계속 시도하고 연습하고 있다. 결합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문성을 좀 떨어지겠지만 하나로 합쳤을 때 강점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미술관을 가더라도 미술 한 장르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여러 예술을 결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런 변해가는 과정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가?

스스로를 소개할 때, ‘한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여러 가지 매체를 사용하는 작가입니다’라는 수식어가 더 이상 작가의 설명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미술 베이스로 작업을 하는 분들이 정말 많기 때문에 차별화를 위해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고 영상을 제작하는 작업은 이제는 흐름에 맞춰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강정오이군>과 <블라인드 필름>은 각각 강정마을과 세월호 사건이라는 사회 상황을 모티브로 만든 작품이다. 어떤 계기로 사회 문제에 관한 창작을 하게 됐는가?

처음에 세계를 받아들일 때는 단순하고 사소한 계기가 발을 딛게 만든다. 학창시절에는 산과 숲을 위주로 그려 개인전을 했고 이대로 전업 작가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다 가족여행에서 우연히 들른 강정마을 포구에서 해군기지 반대운동을 벌여온 사람들이 그린 흔적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후 2012년에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가 파괴된다는 소식을 뉴스를 통해 접했고 그림을 그려서 강정마을로 내려갔다. 당시에 집 뒤에 위치한 매봉산을 자주 그렸는데 이런 점에서 구럼비 바위에 감정이 이입됐던 것 같다.

결정이 쉽지는 않았는데 기왕 갈 생각이면 작가의 방식으로 도움을 주자라는 생각으로 갔다. 그 때부터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작품 활동에 반영하기 시작한 것 같다.

▲ 자신의 작품 세계를 설명하는 오재형 감독

작가의 방식으로 도움을 준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가?

학교 다닐 때는 작업실에서만 있느라 세상 돌아가는 방식을 하나도 몰랐다. 그러다 전용택 감독의 <파티 51>이라는 작품을 봤는데 소설가가 소설가의 방식으로 투쟁하는 방식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그로 인해 승리로 귀결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도 그 길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림을 그려서 돕고 싶은 장소에 가서 그 그림이 가장 잘 활용이 됐으면 좋겠다. 그러다보니 순수와 참여라는 이분법 논란이 될 수도 있지만 지금 그런 구분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에도 숲이라는 순수의 결정체를 그리면서도 단식 투쟁에 즉흥적으로 촌스러운 그림을 가지고 행동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순수와 참여라는 개념이 나뉘어 정체성을 갖기보다 한 작가 안에 모두 내재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참여할 때는 작품의 완성도나 예술성을 최대한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그렇지만 나중에 그런 작품을 다시 되돌아본다고 해도 후회는 없다.

이러한 사건을 영상과 예술로 재구성 할 때 어떤 부분에 주안점을 두는가?

어떤 형상을 봤을 때, 작가가 작품으로 구현하기 위해서 일정한 시간과 거리가 필요하다. 거리와 시간이 길면 길수록 완성도가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그 시간이 짧거나 거리가 좁다면 작품의 완성도가 그만큼 떨어지는데 사회문제가 예상하고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보니 그 때마다 다르다.

어떤 경우는 며칠 동안 시간을 가지고 작품을 그려 나가는 반면 ‘블라인드 필름’의 경우는 오랫동안 먼 거리에서 시간을 들여 만든 작품이다. 만약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작가로서의 오재형 이전에 사람으로서 오재형으로 참여하는데 주안점을 뒀다.

▲ <덩어리>

작품 <덩어리>에서 UFO와 공황장애를 비교해 연출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처음에 공황장애가 오고 나서 그 당시에는 괴로웠지만 몇 개월 이후 지나고 나서 돌아보니 굉장히 이상한 병이었다. 실체가 없었기 때문인데 병원에서 검사를 해도 아무런 이상도 없었지만 신체적으로는 느껴졌다.

과학적으로도 증명이 안 되니 ‘있기 때문에 믿는 것인가 아니면 믿기 때문에 있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가지게 됐다. 이렇듯 공황장애는 믿음의 문제이고 믿음을 버리면 증상이 완화되는 것이 정설이다. 단지 신체로 다가오는 통증이 있기 때문에 좀 더 쉽게 믿게 되고 믿음을 버리기 힘들다.

UFO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목격했기 때문에 과학적인 증거를 떠나서 믿게 되는 것이다. 어렸을 적부터 UFO에 관심이 많았고 공황장애 메커니즘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재기발랄하게 작품으로 엮었다.

<블라인드 필름>으로 칸영화제에 초청됐고 블랙텐트에서도 공개가 됐다

칸영화제는 정확하게 말하면 박찬욱, 홍상수 감독처럼 초청 받지는 않았다. 자라섬 페스티벌로 비유하자면 본 무대와 사이드 무대, 버스킹은 각각 규모 면에서 차이가 있는데 내 경우는 버스킹 정도에 해당한다. 초청장이 왔고 필름 마켓 성격인 쇼트 필름 코너에서 내 작품을 상영할 공간을 얻었다.

칸 영화제는 나와는 거리가 먼 세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인터넷에서 구글 번역기를 활용해서 지원서를 넣으니 초청장을 받게 됐다. 가서 작품도 상영하고 셀프 카메라도 여러 장 찍고 왔다(웃음).

블라인드 필름은 2016년에 개인전을 위해 제작했다. 처음부터 퍼포먼스 형식으로 준비했는데 피아노를 치면서 영상을 상영하는 방식이었다. 전시 방식이 특이했는데 ‘일년만 미술관’이라는 공간에서 하루에 두 시간을 정해서 연주를 했다.

등촌동이 문화적 기반이 없는 곳이라 관객이 한 명도 없던 적도 있었지만 계속 영상을 틀고 연주를 했던 이유는 필리버스터에 영향을 받아 그 공간에서 행위를 지속한다는 수행적인 퍼포먼스를 시도해보고 싶은 열망이었다.

칸 영화제는 퍼포먼스 형식이 허용되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영상에 음악을 삽입해서 상영했고 블랙텐트 같이 허용되는 곳에서는 퍼포먼스 활동을 했다.

블랙텐트 같은 경우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 곳 기획자와 함께 무대를 꾸리게 됐고 만약 퍼포먼스를 한다면 광화문 광장이 가장 적합한 장소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제안이 왔을 때 반가웠다.

공연을 하면서 관객들의 피드백을 받아보니 내가 생각한 포맷이 굉장히 전달이 잘 되고 있다는 생각을 받았다. 감정에 묻어나는 직접 작곡한 곡을 연주하다보니 관객에게 울림을 줬다고 생각한다.

이후 장문의 방문록도 받았고 현장에서 우는 관객도 있었다. 이런 계기로 내가하는 장르가 결합된 포맷에 확신을 가지게 됐다.

작가가 작가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집회를 도왔고 결국 백만 촛불로 이어졌다.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느낀점은?

처음에 텐트가 들어서고 퇴진 전까지 계속 노숙하면서 활동을 했던 분들도 있었다. 세월호가 터진 여름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미술계의 참여가 없었다. 그래서 그림을 가지고 1인 시위를 하면서 여러 갤러리들은 왜 참여하지 않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그 당시에는 서운함을 느꼈지만 나중에 미술계에서 큰 규모로 참여했을 때 일전의 생각에 대해 반성하기도 했다. 이렇듯 사회 문제에 참여하는 작가들이 많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 댄스필름 <봄날>

댄스 필름 <봄날> 제작 당시 출연자들에게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을 것을 부탁했다. 소설 중 어떤 대목에서 모티브를 얻었는가?

<소년이 온다>는 5.18이라는 역사적 비극을 재현한 작품이다. 보통 영화나 다른 작품은 1차원적이고 자극적인 방식으로 재현하는 편인데 <소년이 온다>의 경우에는 입체적이면서도 당시의 광주를 가장 잘 설명하는 작품이었다.

시체의 입장에서도 서술하기도 하고 특히 마지막 챕터에서 희생당한 아들을 떠올리면 어머니가 하는 독백에서 큰 인상을 받았다. 이러한 감상을 바탕으로 5.18 기념 재단 측에서 의뢰가 들어왔을 때 큰 바탕으로 삼았다. 무용수들에게도 공유되는 감정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읽을 것을 추천했다.

5.18을 다루면서 댄스 필름으로 연출하고자 한 의도가 궁금하다.

댄스필름이라는 장르를 알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작품에 참여했던 무용수 중에 김수진 무용가가 있다. 안무가로도 뛰어나지만 연출가로도 이미 정평이 나있는데 몇 년 전에 김수진 무용가가 연출한 작품을 보고 좋은 인상을 받았다.

단순히 멋있다라는 생각을 넘어서 나도 언젠가는 저런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 작품에서 폐허 속에서 안무를 추는 장면이 인상적이었고 5.18과 비슷한 맥락을 가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강의 소설이 다양한 시점에서 진행된다는 점에서 착안해 댄스 필름을 연출할 때 4팀 각각의 시각을 보여줘서 여러 명의 다양한 시점을 반영하도록 기획했다.

수화 통역도 정보전달의 역할이라기보다 움직임을 갖는 퍼포머로서 섭외했다. 개인적으로 필름 후반부에 댄스 영상을 광주 곳곳에 투사하는 장면을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한다. 이는 좀 전에 말했던 장르의 종합과도 연관되는 부분이다. 댄스 필름이 처음이기 때문에 연출에서 부족한 점이 많다고 생각했고 나만의 색깔을 입히기 위한 아이디어였다.

인디필름 플랫폼이 자신들의 스타일만 고수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영화제라고 해도 관객이 많은 편은 아니다. 거기다가 심사위원에 취향에 따라 영화가 결정되다 보니까 그들만의 리그이다. 사실 영화제에 영화를 출품한다고 해도 금전적인 이익 등 이점이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만약 고정 관객층이나 고정 수입이 있는 플랫폼이 있다면 그 곳에 지속적으로 출품을 하고 싶지만 현재 한국에서는 없는 실정이다. 해외에서는 감독이 영화를 출품하면 제작자들이 모여 하나의 마켓이 형성되는데 반해 한국은 아직 그렇지 못하다.

물론 열악한 환경에서 매해 영화제를 개최한다는 점은 대단하다고 평가하지만 실질적인 영화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때 제작자의 입장에서도, 관객의 입장에서도 회의가 든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만들고 어떤 작가로 남고 싶은지 궁금하다.

최근 도시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보이지 않는 도시’를 읽고 나서인데 나오는 환상의 도시를 내가 느낀 감상을 토대로 그림으로 구현하고 있다. 어떤 방식으로 작품을 전시할까 고민했는데 피아노를 연주하며 영상을 보여주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결정했다.

앞으로는 볼 만한 것을 만드는 작가로 남고 싶다. 볼 만한 작품을 만들면서 그만큼 인정도 받고 작품 수익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있는 작가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