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숙의 문화읽기]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북한 땅에서 咆哮하기를
[성기숙의 문화읽기]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북한 땅에서 咆哮하기를
  • 성기숙 무용평론가/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 승인 2018.03.27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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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숙 무용평론가/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봄이 온다’ 라는 문구가 주말동안 인터넷 포털사이트 실검 상위에 랭크되면서 매스컴을 뜨겁게 달궜다. 오는 4월 1일, 3일 한국 공연단이 ‘남북평화협력 기원 남측 예술단 평양공연’을 타이틀로 북한의 동평양극장과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두 차례 공연을 갖기로 합의했다는 전언이다.

공연주제는 ‘봄이 온다’로 정해졌고 걸그룹 소녀시대 소속 서현이 사회를 맡는단다. 서현은 삼지연관현악단의 서울 국립극장 공연때 깜짝 출연하여 북한 가수와 함께 ‘다시 만납시다’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열창하면서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이번 방북공연단엔 국민가수 조용필을 비롯 이선희, 최진희, 윤도현, 백지영, 걸그룹 레드벨벳, 정인 등 대중가수들이 대거 명단에 올라와 있다. 도종환 문체부 장관이 약 160여명에 달하는 대규모 공연단을 직접 인솔해 방북할 것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이렇듯 남북관계가 평창올림픽 이후 해빙무드로 전환되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번 평양공연은 지난 3월 현송월이 이끈 삼지연관현악단의 방남공연에 대한 답방형식으로 치러진다. 남한의 대중음악이 약 10여년 만에 북한 땅에서 다시 공연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예상과 달리 속전속결로 추진되고 있어 놀랍다. 국제사회의 강력한 경제압박으로 고립무원에 처한 북한 김정은 노동당위원장의 절박함이 묻어난 결과가 아닌가 싶다. 다른 한편, 이른바 한반도 운전자론의 주인공 문재인 대통령의 탁월한 외교술이 빚어낸 값진 결과라 하겠다. 이로써 남북한 화해무드와 함께 한반도의 ‘봄날’은 보다 더 성큼 앞당겨질 것으로 예측된다.

돌이켜 보면, 남북 대치상황에서 한반도의 ‘봄날’은 정치적 액션 이전, 늘 공연과 함께 서서히 도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한예술단의 방북공연은 1985년 이산가족고향방문단 및 예술공연단 교환방문으로 시작됐다. 그후 1990년 범민족통일음악회를 비롯 1998년 리틀엔젤스공연·윤이상통일음악회, 2002년 남북교향악연주회, 2003년 통일음악회, 2005년 조용필단독콘서트 등 약 10여 차례 남한예술인들이 북한관객과 만났다.

그동안 남북한공연단의 주요 프로그램은 양측 모두 대중음악이 주류를 이뤘다. 정통클래식과 국악이 일부 포함되기도 했으나 순수예술의 비중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왜 그럴까? 공연이 남북정상회담 사전행사 성격으로 치러진다는 특수한 사정이 고려된 때문일 것이다. 또 남북한의 이질화된 문화적 감성의 간극을 좁히고 최대한 정서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장르로 구성한다는 의도가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한반도는 6·25전쟁 이후 분단이 고착화되면서 남북 상호 간 문화적 감성과 정서가 극명하게 갈렸다. 자연히 민족동질성에도 균열이 생겼다. 냉전이데올로기 체제에서 남북한이 오랜 세월 빗장을 걸어 잠그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북한은 사회주의 체제를 신봉했고, 남한은 자유주의 체제를 따랐다. 정치적, 정서적으로 완전히 남남이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민족동질성의 관점에서 남북한 사람들의 저변에 흐르는 감성과 정서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없지 않다고 여겨진다. 예컨대, 아리랑을 부르면서 눈시울이 젖는다거나 삼박자로 이루어진 민속악에 흥과 신명을 느끼고 흥겨운 장단에 맞춰 자연스레 어깨춤을 들썩이는 몸짓들이 이에 해당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 민족 개개인의 유전자 속에는 아직도 고구려의 동맹(東盟), 예의 무천(舞天) 등과 같은 고대 북한 땅에서 기원된 제천의식의 음주가무(飮酒歌舞) 풍속이 깃들어 있는 셈이다.

며칠 후면 한국 대중가수들이 부르는 국민애창곡이 ‘동토의 땅’ 평양에 울려 퍼질 것이다. ‘부르주아 반동’으로 비판받는 한류 아이돌이 평양에 입성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변화다. 북한은 한국의 대중문화를 ‘자본주의 날라리풍’이라 하여 철저히 배격해 왔다. 김정은 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혁명적인 사회주의 문학예술의 힘으로 부르주아 반동문화를 짓눌러버려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정부가 한류의 아이콘 싸이의 평양공연 합류를 추진하고 있으나 북한이 난색을 표한다는 전언이다. 북한의 관점에서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선정적이고 타락한 자본주의 퇴폐적 산물로서 철저히 짓눌러버려야 할 대상인 것이다. 우리측이 제안한 싸이의 ‘강남스타일’ 평양공연은 사회주의 체제의 북한 특성상 선뜻 수용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의 수용여부와 상관없이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세대와 국경을 넘어 여전히 인기를 얻고 있음은 주목거리다. 인기의 중심엔 말의 움직임을 희화화한 빠른 비트의 소위 말춤이 있다. 두 발을 벌려 엉거주춤 서서 굴신을 반복하는 획일적 동작으로 이루어진 말춤의 메커니즘은 비교적 단순한 편이다. 거기에 파격적 가사, 중독성 강한 음악 등 쉽고 재미있는 요소들의 조합으로 세계인의 감성을 자극했던 것이다. 2012년 싸이가 발매한 ‘강남스타일’은 유튜브 조회수 약 31억 명을 넘기며 전지구로 확산되고 있다. 빌보드 차트 2순위 기록도 경이롭다. 혹 월드스타 싸이가 북한 무대에 선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세계의 이목이 한반도로 집중될 것이다.

과거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이번 평양공연 역시 남북정상회담의 사전행사 성격으로 열린다. 오는 4월과 5월 남·북 그리고 북·미정상회담이 잇따라 예정돼 있다. 정부는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군사적 긴장완화를 통한 평화체제 구축을 의제화할 것으로 알려진다. 북한 역시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국제사회의 경제적 압박을 돌파해 보겠다는 의중이 깔려 있다. 북한은 미국 주도로 결행되는 국제사회의 경제압박 철회를 희망할 것이고,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주문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결과를 낙관하긴 아직 이르다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대중예술로 채워지는 이번 방북공연은 남북한이 공히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한국은 문재인 대통령이 표방하는 한반도 운전자론이 탄력을 받으며 한층 담대한 행보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강남스타일’의 평양공연이 성사된다면 폐쇄적인 북한사회에 자본주의 바이러스가 급속히 확산될 것으로 예측된다. 북한으로서도 나쁘지 않은 카드다. 경제적 고립위기에 처한 북한이 국제사회 흐름과 보조를 같이한다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유능제강(柔能制剛)이라는 말이 있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뜻이다. 자본주의 친화적인 싸이의 ‘강남스타일’ 평양공연이야말로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길 수 있는 고도의 전략이 아닐까? 우리 정부 또한 ‘동토의 땅’을 녹이는데 있어 ‘예술의 힘’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겠다. 더구나 시공을 초월하여 고구려 기마민족 특유의 역동적 몸짓이 세계인의 심미안을 사로잡은 소위 말춤으로 승화되지 않았던가. 그리고 지금 북한 땅에서 터 잡고 사는 사람들이 바로 고구려의 후예가 아니던가. 그런 점에서 싸이의 ‘강남스타일’과 그의 말춤이 옛 고구려의 땅 북한 평양에서 힘차게 포효(咆哮)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