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자의 여정'을 따르니 이성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성자의 여정'을 따르니 이성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8.03.27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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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이성자: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

"5,60년대에 이런 추상화가가 있었다. 70년대에 이미 멋진 디자인 작품이 등장했다. 90년대에 정말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졌다. 2000년대에 우주를 표현한 화가가 있었다. 그리고 그 화가는 우주로 돌아갔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성자: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 전시를 통해 본 화가 이성자(1918~2009)에 대한 한줄 평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이번에 이성자를 택한 이유가 있었다. 우선 올해가 이성자의 탄생 100주년이라는 것, 그리고 <신여성 도착하다>전을 시작으로 그동안 덜 조명받은 한국 여성미술가들을 연구하고 조망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국립현대미술관의 설명이었다.

▲ 눈 덮인 보지라르 거리, 1956, 캔버스에 아크릴릭, 73x116cm, 개인소장

그는 미술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었다. 남편이 외도를 하면서 세 아이와도 생이별을 해야했다. 결국 그는 아무 것도 없이 무작정 프랑스로 향했고, 그 곳에서 미술로 방향을 튼다. 그러면서 우리가 알지 못했던 5,60년대 추상미술의 역사를 그려나가기 시작한다.

그의 추상미술은 자신의 생각대로 그림을 그리고 자신이 임의로 그림의 제목을 붙이는 식이다. 당시 작품 중 <오작교>만이 유일하게 그리기 전 제목을 붙이고 작업을 한 것이고 나머지는 모두 그림을 그린 후 자신의 생각대로 제목을 붙였다. '이런 추상미술이 5,60년대에 있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는 이성자를 알아가는 여정을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여자이고, 여자는 어머니이고, 어머니는 대지이다". 그의 말은 어머니와 고국, 세 아이에 대한 그리움으로 작품을 만들었던 이성자의 초기 작품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후 1965년 고국에서 개인전을 열고 이를 통해 가족과 장성한 세 아이를 만나면서 이성자는 드디어 '자유'를 찾게 된다. 

이제 그는 음과 양, 동양과 서양, 정신과 물질, 자연과 인공 등 전혀 상반된 요소들을 하나의 화폭에 담아 조화를 이루는 작업을 하게 된다. 그가 보여준 '음과 양'의 디자인은 지금의 눈으로 보아도 세련됐다.  이미 70년대에 이 멋진 디자인이 등장한 것이다.

▲ 음과 양 7월, 75, 1975, 캔버스에 아크릴릭, 200x200cm, 개인소장

그리고 이성자는 이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을 떠난다.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한국과 프랑스를 다녔던 이성자는 자신의 세계를 전 지구로, 우주로 확대한다. 그리고 그동안 그가 그렸던 작품과 디자인을 하나씩 하나씩 정리해간다. 

마치 자신의 인생을 마무리하는 듯한, 아니 이전의 것을 모아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이성자의 꿈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렇게 90년대에 아름다운 그림이, 2000년대에 우주를 표현한 화가가 우리 곁에 있었다. 그리고, 2009년에 그는 우주로 돌아갔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담은 작품들을 남기고.

▲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 1월 4, 90, 1990, 캔버스에 아크릴릭, 150x150cm,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 소장

"동양화의 가장 큰 단점은 물질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반면 서양화의 가장 큰 단점은 정신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을 합치는 것이 내 작업이라고 생각했다"는 이성자. 60년의 세월 동안 변화와 실험을 거듭하고 그것을 정리한 화가의 모습을 이제야 발견했다는 것이 이번 전시의 가장 큰 공헌이라고 할 만하다.

사실 그의 그림 한두점만 보고는 이성자의 특징을 알기가 '어렵다. 이성자 작품의 위대함은 전시를 봐야만 비로소 알 수가 있다. 이성자의 여정을 따라가야 비로소 이성자의 진면모가 보이는 것이다. '이런 화가가 있었다'는 발견의 희열을 느끼게 해 줄 <이성자: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은 오는 7월 29일까지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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