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 ‘넥스트 스텝’-국립무용단의 신선한 안무자들
[이근수의 무용평론] ‘넥스트 스텝’-국립무용단의 신선한 안무자들
  • 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18.04.01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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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 명예교수

1월과 2월, 두 달의 동면기를 보낸 공연이 3월에 접어들며 기지개를 켰다. 내가 본 첫 공연은 국립무용단의 ‘넥스트 스텝’(3.15~17, 달오름극장) 세 작품이었다. 국립무용단이 엄격한 내부 오디션을 통해 선정한 단원들에게 첫 안무를 맡긴 2018년 젊은 창작 프로젝트 기획 작품들이다. 신진안무자들이 한국무용을 바라보는 참신한 시각과 함께 이요음, 이의영, 장윤나, 박혜지 등 기대되는 춤꾼들을 확인하는 의미가 있었다.

정소연의 ‘싱커페이션(Syncopation)'은 음악문외한에게는 생소한 음악의 기술언어다. 안무자는 싱커페이션이 센 박자가 여린 박자로, 여린 박자가 센 박자로, 박자의 위치가 바뀌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듣는 사람의 기대감에 혼란을 줌으로써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기술이라고도 부연한다. 실제의 삶에서 일어나는 불규칙성이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고 예기치 않은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점에 착안한 주제일 것이다.

작곡에서 쓰이는 테크닉을 춤으로 보여준다는 다소 무모해 보이는, 그러나 신선한 발상이 흥미를 느끼게 했다. 건반이 무대 맨 앞자리에 놓이고  대금과 아쟁, 타악기들이 무대 주변을 돌아가며 분산 배치되어 있다. 건반 뒤쪽에 나지막한 언덕이, 그 대각선 쪽에 서클 하나가 그려져 있다. 검은색 옷을 입은 5명의 남녀 무용수가 정상적인 박자의 리듬을 보여준다면 붉은 색 옷을 길게 늘어뜨린 여인(이의영)은 센 박자를, 흰색 옷의 여인(김미애)은 여린 박자를 상징하는 듯하다. 군무 속에 소리꾼(김율희)도 섞여 있어 음악과 춤을 연결시킨다.

무대는 건반과 연주대, 서클로 분할된다. 안무자는 그녀의 삶을 관통한 세 개의 속성을 죽음과 욕정과 인내라고 정의한다. 이들을 연결시켜 예측할 수 없는 변화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분할된 각각의 공간에서 다발적인 춤과 연주가 동시에 전개된다. 시계바늘과 같이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연출이 조명의 밝기와 높낮이, 거리 등 요소들을 정확히 배려하면서 한 폭의 그림같이 전개된다. 이러한 무대구조에 맞춰 솔로와 3인무, 군무의 역할도 섬세하게 구성될 필요가 있다.

안무자의 논리적 사고와 이를 풀어가는 드라마트루기 역량이 돋보이는 참신한 작품이었다. 리진에서 주역으로 발탁된 이의영의 감각적인 춤과 김상덕 감독체제 아래서 국립무용단 훈련장을 맡은 김미애의 안정된 춤이 조화를 이루며 탄탄한 완성도를 보여준 35분 작품이었다.

이어진 자품인 ‘가무악칠채’(이재화 안무)는 또 한 편의 음악 춤이다. 안무가의 몸속에 자리한 칠채 장단의 기억을 꺼내 몸의 감각과 충돌시키는 작업이라고 안무가는 말한다. 30분의 공연은 칠채 장단의 박자를 소개하는 것에서 시작되어 여러 형태로 변화하는 장단의 구조를 보여주는 것으로 진행된다.

칠채에서 사용되는 일곱 번의 징소리를 드럼이 대신하고 아쟁, 피리, 태평소 등 국악기와 함께 기타(선란희)가 무대 전면에 등장한다. 서양 악기와 국악기를 함께 사용하면서 소리꾼(김준수)이 객원으로 출연하여 가무악의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앞 작품인 싱커페이션이 춤이 중심이 되고 음악이 따라가는 방식이었다면 가무악칠채는 음악이 중심이 되고 춤이 박자를 따라가는 형식이란 면에서 대비된다.

또한 싱커페이션이 자로 잰 듯 섬세한 춤 구성과 정교한 무대 구조를 강조한데 비해 이 작품은 즉흥과 같은 자유로운 춤사위를 통해 무대에 활기를 주고 전통 농악의 개방성을 표현했다는 데서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송설, 조용진, 이재화, 조승열 등 남성무용수 한 가운데서 붉은 옷을 입고 춤추는 박혜지의 춤도 강한 인상으로 남았다.

이날 세 작품 중 맨 먼저 무대에 오른 작품은 김병조의 ‘어;린 봄’이다. 기성단원에게서 훈련을 받는 신입단원으로부터 시작하여 중견단원으로서의 전성기를 거쳐 은퇴를 앞둔 선배단원으로 변화해가는 무용수의 성장과정을 3장으로 나누어 추적했다. 어느 단계에 있거나 무용수의 내면에 살아 있는 것은 봄, 청춘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 텍스트는 신선했다.

안무자는 각각의 장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자막(1장), 내레이션(2장), 영상(3장)으로 설명하면서 이를 예시하는 수단으로 춤을 보여주는 방법을 택했다. 춤이 중심이 되지 못하고 메시지 전달을 위한 보조수단으로서 보여 졌다는 면에서 미흡함이 느껴진 작품이었다. 춤 자체가 완벽한 언어임을 깨닫고 춤의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살리기 위해 고심한다면 창의적인 안무가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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