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레터]<아빠 얼굴 예쁘네요>의 김민기에게
[윤중강의 뮤지컬레터]<아빠 얼굴 예쁘네요>의 김민기에게
  • 윤중강 평론가/연출가
  • 승인 2018.04.01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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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강 평론가/연출가

“태양은 묘지위에 붉게 떠오르고 /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아침이슬>을 목청껏 불렀던 시절이 있습니다. 군사정권의 엄혹한 시절, 신촌의 대학가와 구로동의 공장에서 공유하는, 흔치 않은 노래였습니다.

당신 자신은, 당신의 노래가 한 시대와 한 세대의 ‘민중가요’에 규정되는 걸 마뜩치 않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노래가 저항의 중요한 수단일 수밖에 없던 시절, 당신의 노래는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었고, 그렇게 퍼져나갔습니다.

‘김민기’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이렇게 <아침이슬>(1971년)입니다. 다음은 뭘까요? <지하철 1호선>(1994년)을 꼽고 싶습니다. ‘아침이슬’을 부른지 20년 만에, 대학로에 학전소극장이 문을 열었죠. 김광석과 겹쳐지는 공간입니다.

“인정함이 많을수록 새로움은 점점 더 멀어지고 / 그저 왔다갔다 시계추와 같이 매일 매일 흔들리겠지.” 김광석의 <일어나>란 노래에 긍정적인 의미를 덧씌우면서도, 왠지 ‘학전블루소극장’을 지날 때면 애써 그쪽을 외면하면서 발걸음을 빨리 재촉하게도 되었습니다. 바로 거기서 4000회를 달렸다고 하는 <지하철 1호선>은 2008년에 중단했었죠. 이제 꼭 10년 만에 <지하철 1호선>이 달린다니 반갑습니다.

언제부턴가 당신을 ‘아동·청소년극 지킴이’로 부르기 시작했더군요.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그 때가 언제였던가요? <엄마, 우리 엄마>(1987년)를 음반으로 발매됐을 때가 생각납니다. 어린이가 쓰는 일기의 형태로 만든 노래극이 정겨웠지만, 생소했습니다. 그 시절의 어린이공연물과 당신의 작품은 꽤 거리감이 있었죠. 올림픽을 개최하게 된 대한민국이 이제 잘 살게 됐고, 앞으론 더 그렇게 될 거란 희망이 부각되던 시절 농촌과 광산촌에 눈을 돌린 당신을 오히려 ‘시대착오’라고 생각했던 사람도 있었겠죠. 누구는 보다 더 ‘피가 끓어오르는’ 민중가요나 만들어주지, 그런 생각을 했을지 모릅니다.

<엄마, 우리 엄마>와 <아빠 얼굴 예쁘네요>를 처음 대했을 때 궁금했습니다. “이 노래는 어느 방송에서 틀 수 있고, 이런 식의 작품은 어디에서 공연될 수 있을까?” 결국 당신이 해냈군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여러 차례 수정을 거쳐가면서 오늘날의 공연물이 만들어졌다고 들었습니다.

어린 소녀 ‘연이의 일기’ 형태로 그려낸 <엄마, 우리 엄마에선> ‘엄마’가 제목에 들어간 세 편의 노래 <엄마 생일날>, <어젯밤 꿈에 엄마가>, <엄마 구름 애기 구름>가 귓전에 지금도 맴 돕니다. 여기서 우리는 김민기의 또 다른 모습을 봤죠. 리듬만이 강조된 어린이공연물과는 다르게, 어린이 음악에서도 좀 더 색다른 화성을 쓰고자 했던 당신의 의도가 읽혀졌고, <학교 가는 길>에선 전래동요의 색다른 편곡이 귀에 쏙 다가왔습니다.

똑같이 연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아빠 얼굴 예쁘네요>는 탄이가 등장을 합니다. 이런 작품을 통해서 당신은 소외된 이웃을 향해 ‘공동체’ 의식을 갖게 해주었죠. 당시에는 개념조차 자리 잡지 못했던 ‘결손 가정’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당신의 작품을 통해서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미 당신의 노래엔 ‘어린이’에 대한 시선이 존재하더군요. 세상을 떠난 강아지를 그리는 ‘백구’를 비롯해서, ‘인형’ ‘고무줄놀이’가 모두 그렇습니다. 딱 어린이의 노래는 아니지만, ‘작은 연못’과 ‘가뭄’도 동화(童話) 혹은 우화(寓話)의 영역 안에서 동요풍으로 민요풍으로 그려냈지만, 그 안에는 민족적 담론(談論)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한겨레신문사와 함께 작업했던 ‘겨레의 노래’(1990년)에 실린 많은 노래 중에서, ‘고리’(윤석중 작사, 이성복 작곡, 구의초등학교 어린이들)도 그런 연장선이구요.

노래영상극을 표방한 <아빠 얼굴 예쁘네요>을 보면서, 한없이 울었습니다. 탄광촌이 배경이지만, 거기에 너무도 많은 사람과 너무도 여러 상황이 겹쳐지기에 그랬습니다. 요즘도 한국사회에서 ‘힐링’이란 말을 즐겨 쓰던가요? 이 작품을 보다가 “까만 집, 까만 길, 까만 물, 까만 산”을 노래하면서, 울다가 웃는 제가 1980년대로, 또 더 거슬러 올라가서 ‘동심’의 나를 만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부모가 자녀들과 함께 와서, 예전의 삶을 애기해주면서,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공연물이 있다는 게 참 좋습니다.

김민기, 당신은 어떤 사람일까요? 세상에는 불합리한 ‘구조’를 바꾸려고 애쓰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신은 사람들의 ‘마음’을 바르게 만드는데 기여하는 사람이더군요. ‘심리’를 바꿈으로 해서 궁극적으로 ‘구조’를 바꾸는데 기여한, 또 기여할 사람이 김민기입니다.

이 땅의 어린이들에게 ‘힘든 어제’를 정겹게 따뜻하게 보여주면서, ‘참된 오늘’과 ‘복된 내일’을 생각게 만들어주는 당신이 참 아름답게 보입니다. 청년 김민기는 할배 김민기가 되었다지만, 마음에 늘 ‘소년’을 품은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 노래영상극 <아빠 얼굴 예쁘네요>, 3. 17~ 4. 1. 학전블루소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