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길 벼랑에 처량하게 핀 동강할미꽃이 슬프다.
열길 벼랑에 처량하게 핀 동강할미꽃이 슬프다.
  • 정영신 기자
  • 승인 2018.04.06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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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귤암리에서 열린 제12회 동강할미꽃축제에서..

정선의 동강할미꽃이 피어나야 강원도의 봄은 시작된다.

정선읍 귤암리의 ‘동강할미꽃 보존연구회’가 마련한 제 12회 ‘동강할미꽃축제’가 지난 3월30일부터 4월1일까지 3일간의 일정으로 ‘동강생태체험전시관’일원에서 열려, 봄나들이 한 상춘객들을 맞이했다.

▲ 귤암리 벼랑에 피어있는 동강할미꽃 Ⓒ정영신

‘동강할미꽃’은 아우라지를 사이에 둔 애틋한 연인의 연모가 조양강 뼝대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이야기도 있고. 동강할멈과 할아범에 대한 그리움이 동강할미꽃으로 피어난다는 소문도 있으나 아무런 근거는 없다. 꽃이 알려진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근거 없는 이야기들이 전설이란 이름을 달고 등장해, 자칫 역사를 왜곡시킬 수 있기에 경계해야 한다.

▲ ‘동강할미꽃보존회’최완순 회장 Ⓒ정영신

동강물줄기를 굽어보는 척박한 환경에서 자라는 동강할미꽃은 머리카락 같은 미세한 뿌리가 바위틈에 들어가 자생하는 꽃으로, 마치 강원도 산골 사람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것 같아 더 애착이 간다. 산소에 피어나는 고개 숙인 할미꽃과는 다르게 하늘을 향해 꽃을 피우는 동강할미꽃에서 신비로운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 내빈축사하는 신주호 정선부군수 Ⓒ정영신

동강할미꽃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1988년 야생화 사진가 이석필씨가 최초로 촬영할 당시에는 강을 건널 땐 다리가 없어 헤엄을 쳐서 건너갔다고 했다.

이석필씨는 그 당시 들꽃이 살아가는 환경 차원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그 후에 사진가 조문호씨가 이끌어온 '환경사진가회' 일원으로 활동하며 최초에 찍은 할미꽃 사진을 환경사진집에 발표한 것이다.

그 이후 1997년 김정명씨가 동강할미꽃을 찍은 동강할미꽃을 찍은 꽃 달력 사진을 본 한국식물연구원 이영노박사가 2000년 ‘동강할미꽃’이란 이름을 달아 세계 유일종으로 발표하며,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 1988년 4월 야생화사진가 이석필씨가 최초로 찍은 동강할미꽃(1999년 발행된 '동강' 환경사진집에서 스크랩)

한국특산종인 보랏빛 나는 ‘동강할미꽃’은 정선, 영월, 삼척, 태백 등, 석회암지대에서만 서식하는데, 그 중 굽이굽이 절벽으로 이어진 정선 귤암리의 아름다운 경관 속에 피어나는 꽃이 가장 아름답다. 그 이후 귤암리 주민들이 협력하여 ‘동강할미꽃 보존연구회’가 만들어지며, 2008년 정선군 군화로 지정된 것이다.

또한 동강할미꽃은 2,000년 동강댐 건설 백지화 결정에도 크게 기여한 식물이다. 당시 고 김대중 대통령은 세계 최초의 신종으로 추정되는 7종의 동식물과 20여종의 멸종위기동식물 보호 및 생태계 보전을 위해 동강 댐 설치를 막은 것이다.

▲ ‘아리랑예술단’의 아리랑공연 Ⓒ정영신

구구한 세월동안 석회암 절벽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며 살아 온 이름 없는 야생화가 세상에 알려지며, 사진인들이 몰려드는 등 오히려 수난을 당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또한 꽃이 피는 4월이 되면 야생화를 사진에 담으려고 무분별하게 자연을 파괴하는 사진인 들이 많이 생겨난다.

자연환경을 다치지 않도록 있는 그대로의 꽃의 습성이나 주변여건까지 함께 담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꽃만 부각시키기 위해 꽃을 보호하는 주변의 마른 풀을 다 뜯어내고, 심지어 꽃잎에 물을 뿌리는 일들이 종종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 '제12회 동강할미꽃 축제'에 참석한 내빈들모습 Ⓒ정영신

이를 막기 위해 주민들의 모임인 ‘동강할미꽃보존회’에서 생태계를 보호하려 공을 들이고 있다. 야생화가 있는 모습 그대로 자랄 수 있도록 둬야함에도 불구하고, 지역축제로 인해 자연생태환경이 몸살을 앓아 온 것도 사실이다. 야생에서 자라는 식물은 인간의 숨소리와 입김마저도 치명적인 독이 된다는 것을 진정 모르고 있는 것일까.

▲ 귤암리부녀회에서 음식을 장만하는 모습 Ⓒ정영신

강원도 문화관광해설사인 서덕웅씨는 “사진을 예쁘게 찍으려고 잎을 뜯어내는 과정에서 손을 타기 때문에 수정되지 않는다. 무분별한 사람들의 행동이 자연을 죽이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서덕웅씨는 지역자산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지금까지 동강할미꽃 보존을 위해 애쓰고 있다.

▲ 동강할미꽃지킴이 서덕웅님 Ⓒ정영신

이날 열린 ‘제 12회 동강할미꽃축제‘ 개막식은 정선 군립 ‘아리랑예술단’의 아리랑공연으로 시작되었다. ‘동강할미꽃보존회’ 최완순 회장의 개막선언과 신주호 정선부군수 등 내빈의 축사가 이어진 후, 다양한 공연과 전통놀이 마당, 동강할미꽃 심기 등의 많은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축제장을 찾은 관광객들과 함께 즐기는 축제의 마당이 되었다.

▲ 동강할미꽃 심기 Ⓒ정영신

축제가 펼쳐진 생태공원에는 수필가 우애자씨가 준비한 한복체험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교복과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는데, 어느 지역을 가보아도 똑같은 행사를 진행해 지역적인 특색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눈앞에 보이는 아름다운 자연을 즐길 줄 모르고, 타지의 가수를 초청해 흥을 즐기는데, 차라리 정선주민들의 삶의 애환을 노래한 정선아리랑을 관광객과 함께 배우는 시간이 마련되면 좋지 않을까 싶다.

▲ 떡매치기 하는 관광객 Ⓒ정영신

이번 축제엔 필자의 ‘장터 사람들’과 조문호씨의 ‘산골 사람들’ 사진전이 열려 멀리서 지인들이 찾아왔는데 다들 불편하고 불쾌감을 호소했다. 축제장으로 올 수 있는 교통편의가 마련되어 있지 않고, 손님을 맞을 기본이 되어있지 않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정선터미널에서 축제장까지 셔틀버스를 운행해야하고, 물을 마실 수 있는 식수대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 '산골사람들'사진전시에서 만난 사진의주인공 이선녀씨와 사진가 조문호 Ⓒ정영신

요즘은 지자체에서 마련하는 축제의 전성기다. 그러나 지역적인 특색은 사라지고 천편일률적인 행사로 관광객들을 식상하게 한다. 지역축제는 그 지역에 가야만 볼 수 있는 것들을 보여주는 소중한 체험을 통해 지역문화를 함께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