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마농' 2018 국립오페라단의 인사이자 화두
[공연리뷰] '마농' 2018 국립오페라단의 인사이자 화두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8.04.09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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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 살린 대형 오페라 인상적이지만 일반 관객 부담 최소화시킬 노력 필요

국립오페라단이 지난 5일부터 8일까지 선보인 쥘 마스네의 오페라 <마농>은 크게 두 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나는 신임 윤호근 예술감독 부임 이후 처음으로 선보이는 국립오페라단의 작품이라는 것, 또 하나는 지난 1989년 김자경오페라단이 선보인 후 29년 만에 전막 오페라로 공연된다는 점이었다.

사실 '대형 오페라'라는 점은 오페라 매니아들에게는 큰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오페라에 익숙치 않은 일반 관객들에게는 여전히 부담스러운 부분이기도 하다.

지난해 야외오페라 <동백꽃 아가씨> 등을 통해 대중에게 다가서려는 노력을 오페라인들이 보여주기는 했지만 대극장의 오페라 무대는 여전히 낯선 것이 사실이다. 거기에 3시간이 넘는 시간을 한 자리에 앉아서 봐야한다는 것은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고역이나 다를 바가 없다.

▲ 국립오페라단 <마농> (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

그런 면에서 <마농>은 신임 예술감독과 새출발하려는 국립오페라단이 먼저 오페라 매니아들에게 첫 인사를 하는 공연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관객의 취향에 맞게 배경을 바꾸거나 내용을 약간 수정하는 것과는 달리 <마농>은 원형을 살리는 데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고, 대신 화려한 무대와 의상으로 18세기 유럽의 모습을 보여준다.

오페라 <마농>은 주인공 마농이 중심이 된다. 마지막 아리아처럼 '이건 마농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순진무구하던 마농이 점점 매력적이면서도 치명적인 여성으로 변해가고 끝내 안타까운 최후를 맞이해가는 과정을 그리다보니 자연히 마농 역을 맡은 소프라노의 노래와 연기가 중심이 될 수 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소프라노 크리스티나 파사로이우가 보여준 마농의 매력은 인상적이다. 원숙함보다는 젊음과 신선함으로 마농의 매력을 전달한 크리스티나 파사로이우의 존재감이 무척 인상적이다. 데 그리외 역의 테너 이스마엘 요르디와의 앙상블, 여기에 레스코 역으로 극 중간 긴장감과 유머를 선사하는 바리톤 공병우도 <마농>을 지탱하는 공신들임에 분명하다.

▲ 첫눈에 반하는 마농과 데 그리외 (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

연출가인 뱅상 부사르는 "돈에 울고 웃는, 신구세력이 충돌하는. 신흥부자가 생기기 시작한 18세기 사회의 자본 이동을 통한 인간들의 심리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히고 있다. 즉, 마농과 데 그리외의 로맨스에 집중하기보다는 마농과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 속에서 변화하는 모습을 더 중요시하고 이를 통해 마농이 현대 여성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려한 것이 연출의 의도인 셈이다.

국립오페라단의 2018 첫 공연이라는 점에서 <마농>은 분명 의욕 넘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드는 아쉬움을 감출 수는 없었다. 그것은 <마농>이라는 특정 작품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오페라'라는 장르가 던진 화두 때문인 것 같았다. <마농>에서 현대 우리의 모습을 찾기보다는 그저 18세기에 나온 이야기로만 머문 듯한 아쉬움 말이다.

▲ <마농>은 원형 오페라의 멋을 살리는 데 성공했지만 오페라계의 하나의 화두를 던진 작품이기도 하다 (사진제공=국립오페라단)

사실 오페라는 우리나라의 정서에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우선 17.18세기 유럽문화가 우리에게 아직 낯선 부분이 남아있고 오페라 음악 또한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와 우리 감각에 맞지 않은 곡조로 극이 이끌어지다보니 드라마적인 재미를 좋아하는 일반 관객들에게 쉽게 다가가기가 어렵다.

무엇보다 마당에서 같이 춤추고 어우러지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정서에서 2,3시간을 먼 거리에서 꼼짝없이 앉아서 봐야한다는 점이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크게 어필이 되지 못하는 점이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원형을 살린 <마농>에서 일반 관객들이 쉽게 현대의 여성상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요소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원형의 오페라를 통해 오페라를 좋아하는 관객들과 평론가들, 기자들의 호평을 받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페라를 잘 모르는 관객들에게도 <마농>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무엇인가가 선행이 되어야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더 이상 매니아나 평론가가 좋아하는 작품만으로는 오페라의 발전은 정말 요원하다. 대중의 지지 없는 장르는 결국 도태될 수밖에 없다. 대중 없이는 순수예술도 존재 가치를 잃는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그런 면에서 이번 국립오페라단의 <마농>은 2018년 국립오페라단의 출발을 알리는 작품이지만 동시에 앞으로 국립오페라단이 어떤 행보를 걸어야할지를 돌아보는 하나의 숙제를 제공한 작품이기도 하다.

한국오페라 70주년을 맞은 올해, 국립오페라단이 어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지, 그리고 이들이 그동안의 틀과 아집을 깨고 대중에게 새롭게 다가갈 수 있을지를 주목하며 <마농>을 떠나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