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까이에서 늘 함께하고 있는 책과 책장, 그 사이에서 우리가 남긴 흔적들은 각각 어떤 모습일까? 책은 그 사람의 생각이고 가치관을 형성한다고 말하는 박찬우 작가는 자신의 서재의 책과 책장을 통해 중첩된 삶의 기억들을 사진으로 소환한다.
박찬우 작가의 ‘Engram – 기억흔적’ 개인전이 JJ중정갤러리(평창동 소재)에서 오는 4월14일(토)부터 5월12일(토)까지 열린다.
박찬우 작가의 전작인 Stone 시리즈가 둥그스름하게 매만져진 돌의 표면과 부서지지 않은 견고함으로 시간의 영속성에 포착된 찰나를 명상적으로 기록한다면, Engram은 언어와 기록으로 남기고 남겨진 인간 정신, 선택을 거쳐 저장된 책장의 비움과 채움을 펼치고 중첩시키며 시각이미지로 말을 걸어온다. 겹쳐진 언어는 때로는 언어인지 무엇인지 모를 흔적으로 남고, 때로는 생생한 독백으로 되살아나 과거와 미래를 속삭이며 그 틈에 “지금 이 순간”을 만들어낸다.
“잠겨있는 시간이다. 사물과 말들이 깊은 시간 속에 잠겨있다. 기억은 분해되고 흔적은 공간으로 남았다”
박찬우는 2015년 "Stone"의 작가노트에서 돌이 간직한 시간의 깊이를 언급했었다. 시간은 깊이를 가지는 것일까? 이번 작업에서 그가 선택한 대상은 공간, 책장, 선반, 백과사전이다. 선명한 틀 안에 투명하게 겹쳐진 사물과 글자와 이미지는 흐릿한 형태로 화면을 채운다. 펼쳐진 백과사전의 글과 이미지는 중첩되고, 비우고 채운 공간의 사물이 있음과 없음 사이로 기록되었다. 선택된 장은 발생한 시간의 순서와 상관없이 작가의 현시점에서 하나의 공간 안에 재배치된다. 겹쳐진 이미지 사이로 시간의 위치가 재구성됐다.
그가 한 화면 안에 묶어 놓은 중첩된 이미지들은 남기기 위한 능동적인 행위로써 '기록'보다 남겨진 '흔적'에 가깝다. 비움에서 채움까지, 선택과 중첩의 간격마다 행위의 주체로서 그가 의도한 것은 남기기보다 남겨짐이다. 이번 전시에서 백과사전과 책장은 작가 개인의 오랜 기억의 표상으로 시간의 관계를 이어주는 단초가 된다. 관심은 이어 타인의 시간이 축적된 책장, 선반, 공간으로 이동하였다. 이곳에는 타인의 시간과 그것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간이 중첩돼 있다.
백과사전과 책장에 보존된 작가의 기억은 그가 39살 되던 해 마주한 죽음에 대한 의식의 과거, 현재, 미래이다. 그 시간 작가는 흔적을 정리했고 책장을 비웠다. 그 당시 책이란 자신의 생각과 마음, 미련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Bookshelf란 작업은 내 책장에서 시작되었다. 아프기 전에 있었던 책장과 수술과 함께 비웠던 책장, 그리고 다시 새 책으로 차있는 책장을 중첩시켜 한 장의 사진으로 만들었다. 책은 그 사람의 생각이고 가치관이라 한다. 즉 이 작업은 그 전의 나와 모든 걸 비웠던 나, 그리고 현재의 나를 한 장의 사진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작업이다."
(Engram - 기억흔적, 박현수 전시서문 中)
■관람시간 : 10 am - 6 pm (화~토)
■문의: jj중정갤러리( 02-549-0207)
▷ 작가 약력 1963 출생 개인전 그룹전 아트페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