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문병남 M발레단 대표 “드라마틱한 ‘한국형 발레’로 서양에 우리 문화 알려지길”
[인터뷰] 문병남 M발레단 대표 “드라마틱한 ‘한국형 발레’로 서양에 우리 문화 알려지길”
  • 이은영 발행인/임동현 기자
  • 승인 2018.04.16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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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기관 창작발레 반드시 역점둬야, 5.18과 8.15 소재 창작발레 꼭 만들고 싶다”

왕자 호동, 안중근, 처용... 우리 역사 속의 이야기를 발레로 표현한다. 얼핏 어색함을 느끼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발레로 무대에 올랐고 호평을 받았다. 우리의 이야기를 발레로 풀어내며 창작발레의 힘을 보여주고 있는 이가 바로 문병남 M발레단 대표다.

그는 창작발레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며 ‘드라마틱한 요소’가 있어야하고 기획 단계부터 일반 관객들이 편하게 볼 수 있는 발레를 생각해야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의 소망대로 발레를 통해 우리 문화가 알려지고 이로 인해 한국이 창작발레의 강국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담아 본지는 문 대표에게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을 수여했다. 창작발레에 대한 열정이 담긴 문병남 대표의 이야기다.

▲ 문병남 M발레단 대표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수상을 축하드린다. 수상자로 선정됐을 때 느낌은

이전에 몇 번 상을 받은 적은 있지만 한동안 가려져 있던 상황이었는데 수상 소식을 접했는데 ‘이제야 나의 노력이 보여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정말 기뻤다. 서울문화투데이에서 이렇게 큰 상을 주시니 감사하다.  

1984년 국립발레단 입단 후 주역 무용수로 활동했고 이후에도 부예술감독 겸 상임안무가로 활동했다. 국립발레단의 역사와 함께 한 셈인데 

국립발레단을 거쳐가신 분들은 다 열심히 하시려했다. 물론 국립발레단에 있던 당시에는 단장과 의견 충돌을 빚은 적도 많았지만 지나고 보니 다 열심히 하시려고 한 것 같았다. 누가 잘했고 누가 못했다고 말할 수가 없다.

내가 외국을 돌아다니고 국립발레단 활동을 하면서 느낀 것은 어떤 생각, 어떤 철학을 가지고 운영을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러시아 유학 당시 보면 발레단마다 다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적 지향점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수시로 단장이 바뀌고 하다보니 지향점이 도통 보이지 않는다. 

우리 예술단체들이 지향점이 없다는 것을 외국에서 실감했고 그것이 보이지 않는것이 지금 우리 예술계의 가장 큰 문제라고 보고 있다. 누구나 열심히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목표점, 지향점이 중요한 것 같다.

창작 발레가 드문 점이 참 아쉬운 부분이다. 국립발레단 등 유수의 발레단들이 거액의 저작권료를 써가며 외국 작품을 들여오는 것에서 벗어나야할텐데

맞는 말이다. 물론 외국에서 사오는 것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외국의 좋은 공연은 물론 소개되어야한다. 문제는 균형을 맞춰야한다는 것이다. 작품이 세 개가 올라온다면 적어도 하나는 창작 발레가 올라와야한다.

왜 창작을 하지 않을까. 핸드폰 회사가 핸드폰을 만들지 않고 자동차 회사가 자동차를 안 만들면 쓰나. 발레단이 예술공장이 되어야하는데 남의 작품을 브로커처럼 팔고 있는 게 지금 모습이다. 

이미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웠다. 배웠으면 써야하지 않은가. 지금 외국 작품들은 창고에 이미 쌓여있다. 작품 만드는 데 제일 많이 드는 것이 라이센스비다. 언제까지 사오기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 유명한 <백조의 호수>도 창작 발레였다. 처음에는 그렇게 호평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수정과 변화, 보완을 거치면서 200년의 시간을 거쳐 지금 최고의 발레가 됐다. 

지금 당장 부족한 점이 많을 수 있다. 좋지 않은 평을 들을 수 있다. 그래도 시도해야한다. 그렇게 작품을 없애지 않고 수정하고 보완하고 변형해서 10년, 20년 부지런히 길을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첫 무대는 단점이 많이 보이기 마련이다. 우리는 우리 세대에서 끝내려하니까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다음 세대가 성공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고 계속 해야한다.

특히 국립단체나 공공기관은 시스템이 충분히 갖춰져 있다. 우리 같은 이들은 한 번 실패하면 손해가 크지만(웃음), 국립단체는 실패해도 큰 문제가 없지 않은가. 시스템도 잘 되어 있다. 그렇다면 꼭 해야한다. 

새로운 내용의 작품을 만든다는 것에 대한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창작의 개념은 상당히 넓다. 기존 원작이 있는 것도 의상을 바꾸고 수정을 하는 등의 노력을 하면 새로운 버전으로 작품이 나온다. 러시아에서도 기존 작품을 안무가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바꿔서 결국 그 안무가 버전의 작품으로 새롭게 재탄생됐다.

특히 우리는 우리의 문화, 우리의 색깔이 있는 작품들이 분명히 있다. 이것을 서양에 보여줄 기회가 있는 것이다. 우리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우리 발레가 서양에 소개되어 수출이 되는 것이 지금 내가 바라고 있는 것이다. 

<왕자 호동>,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 <처용-화해와 관용을 춤추다> 등 우리의 인물들과 이야기를 소재로 한 발레를 선보였다. 우리 이야기를 발레 소재로 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발레가 외국 것이다보니 한국에서만 배우니까 답답했다. 여러 나라를 많이 돌아다니고 싶었다. 7년간 러시아에 있으면서 러시아 발레를 배웠는데 어느날 불현듯 멘붕이 오더라. 

내가 이렇게 배워봤자 결국 이들을 따라하는 것에 불과하잖나. 내가 정말 뭘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정말 답이 없었다. 그 답은 한국에 있었다. 답은 한국에 있고 한국의 무용수에게 있고 한국 주변에 얼마든지 있는데 그걸 모르고 외국을 돌아다녔던 거다.

이를 바탕으로 발레로 할 수 있는 우리의 이야기를 찾기 시작했고 그것이 작품으로 나왔으며 앞으로도 작품으로 나올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 이야기로 만든 발레가 서양에 알려지고 소개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발레와 안 맞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한국 무용의 손기술과 발레가 참 비슷하다. 

도리어 우리의 경우 내면 표현을 정말 잘한다. 서양은 동작이 아름답고 기술이 화려하지만 내면이 보이지 않아 왠지 ‘보여주기’에 그치는 듯한 인상을 주는데 우리는 내면의 감정을 끌어올리며 동작을 하기에 깊이가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음악성이 정말 뛰어나다. 정말 예술적으로는 한국 사람들이 뛰어나다고 본다.

▲ <처용-화해와 관용을 춤추다>

‘완벽한 한국형 창작발레’란 무엇일까?

드라마 발레. 드라마틱한 것이다. 한국적인 이야기를 하려면 드라마틱하게 풀어가야한다. 동작이 먼저가 아니라 이야기가 먼저가 되어야하고 그 이야기의 주제를 가지고 쭉 풀어나가야한다.

우리는 서양의 영향을 받아 동작을 먼저 만들려하는데 사실 세계적으로 창작되는 동작은 없다. 동작이 우위다보니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잖나. 동작보다는 이야기가 우선이어야한다.

<왕자 호동>의 경우 키가 큰 무용수를 호동과 낙랑공주로 했다. 여기에는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했으면 좋았을텐데’라는 내 생각을 집어넣은 것이다. 안중근은 정말 영웅이다. 이런 분을 우리나라뿐 아니라 외국에 알리고 우리에게 이런 영웅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지난해 선보인 <처용>은 화합과 평화, 용서를 이야기한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가 정말 시끄러웠는데 이제 치유를 하자, 서로 용서하고 화합해서 평화를 만들자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서양 사람의 입장에서는 사실 처용의 이야기가 이해가 안 갈 수 있지만 용서를 하는 처용의 모습을 통해 주제를 전하려 했다. 하나의 주제로 쭉 달려가기위한 작업을 한 것이다.

발레를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고 1때. 원래는 연극영화과를 가고 싶어했는데 선생님께서 키가 크고 체격이 맞다고 생각하셨는지 엄청나게 발레를 권유하셨다. 결국 해봤는데 재미있더라. 그게 지금까지 이어진거다. 

무용수로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노틀담의 꼽추>.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때 안무가가 이시다 다메오 선생이었는데 이분의 창작 발레가 이 작품이었다. 그 때 꼽추 콰지모도 역을 맡았는데 발레로 어떻게 표현할 지를 어려워해서 역할을 안 하려 했고 고민을 했는데 이시다 선생이 지도를 해주시더라.

이 작품을 하면서 연극적인 부분을 많이 배웠다. 선생은 동작을 제시하면서 눈빛 연기, 표정 연기도 가르쳐주셨다.  그렇게 배우면서 하더니 발레가 되더라. 놀랐다. 그 때 알았다. 발레가 꼭 아름다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공연에서 종을 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장애인의 어려움까지 느끼게 되면서 정말 감동했다. 발레는 슬픔도 표현하고 다양한 감정도 표현해야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때 연극적인 요소들도 배웠다. 많은 영향을 준 작품이다.
그 외에도 여러 에피소드가 있다고 들었다

<돈키호테>를 했을 때는 공중에서 두 바퀴를 도는 기술을 선보여야했다. 지금은 대학생부터 하는 동작이지만 그때는 그런 기술이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어려운 동작을 해야했던 것이다. 그걸 해내려고 얼마나 연습을 했는지 피로골절이 왔다(웃음). 

<지젤> 때도 새로운 동작 익히느라 엄청 연습한 기억도 나고, 외국에서 온 안무자가 보조로 와서 그 동작을 처음 배운 거다. 지금이야 쉽게 배우지만 우리 시대는 그랬다. 그 정도로 동작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M발레단 단원들에게 강조하는 것이 있다면

첫째는 연기다. 춤이 아니라 연기를 하라고 한다. 특히 표정 연기는 연극하는 사람만큼 연습을 해야한다고 보고 있다. 외국의 경우 무용수들도 연극 수업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전혀 안하다보니 연기가 자연스럽지 않다.  

사람을 보면 누구나 얼굴부터 먼저 보기 마련이다. <백조의 호수>를 예로 들면 백조와 흑조의 자연스런 표정을 먼저 보고 동작을 봐야하는데 지금의 발레는 연극적인 부분이 너무 약해서 얼굴이 아닌 발목을 봐야하는 게 사실이다. 

둘째는 발레를 하지 말고 춤을 추라고 한다. 사실 모든 춤이 다 발레다. 춤을 춰야 발레가 된다. 러시아의 경우 모든 춤을 다 ‘발레’라고 칭한다. 현대무용도 발레인데 우리는 자꾸 갈라놓는다. 현대무용도 발레 안에 다 포함이 되어 있다. 

실제 현대무용을 하는 사람들은 발레를 배운다. 클래식 발레에도 보면 이미 그 안에 현대적인 동작이 나온다. 누구나 다 발레를 하고 있다. 그걸 너무 나누지 말았으면 좋겠다.

지금 보면 여러 무용단이 많은데 사실 복잡하잖나. 정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용단 각자가 자신만의 색깔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차별화가 없고 똑같은 작품을 똑같이 하고 있다. 그렇게 중복으로 할 바에는 정리가 됐으면 한다. 예술계 일자리를 위해서라도 이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배출되는 무용수에 비해 안정된 발레단이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발레를 배우는 사람에 비해 발레단이 적다. 그러다보니 발레하는 사람이 줄어들고 지방의 경우 폐교되는 경우도 많다. 국립발레단도 수용을 못하니 외국으로 나가고 인재들을 외국에 뺏기는 것이다. 발전을 위해 일하도록 나라가 보호해줘야하는데 인재가 다 나가니 발레단에 인재가 없다. 

훌륭한 무용수가 있어야 좋은 안무가 된다. 물론 안무가가 훌륭해야하지만 훌륭한 안무가 옆에는 훌륭한 무용가가 있어야한다. 작품을 공연할 때 보면 꼭 세계적인 무용수가 있지 않나. 발레는 무용수보고 오는 건데 지금 같은 상황에서 우리나라에서 좋은 무용수가 나온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 지난 1월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을 받은 문병남 대표. 왼쪽은 시상자 이애주 교수.

발레를 포함한 무용계를 보면 유명 예술단 공연 외에는 대중들이 잘 찾지 않는다 

기획단계부터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하는 무대를 만들어야한다. 평론가를 위한 안무에서 벗어나 관객과 소통해야한다.

오늘날 한국무용계의 가장 큰 문제로 생각하는 것은

파벌을 벗어나야한다. 합쳐야한다. 예술계 곳곳에서 다 자기들끼리 뭉친다. 그 중 우리가 제일 심한 것 같다. 무용계 전체 발전을 위해 뭉쳐야한다. 

콩쿨이 너무 많은 것도 걱정이다. 학생들이 1년 내내 콩쿨 무대를 거치며 안 되는 동작도 해야하고 긴장하면서 몸이 굳어지고 하지 않나. 몸이라는 것이 한계가 있는데 결국 부상을 당하게 된다. 

지금 생각하는 것은 발레학교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발레학교를 통해 배운 학생들이 무대에서 맹활약하고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학교로 돌아와 다시 아이들을 가르치고 그 아이들이 다시 무대에 서는 선순환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앞으로 만들고픈 작품이 있다면

5.18과 8.15다. 묘하게도 5.18을 거꾸로 하면 8.15다(웃음).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루기보다는 자유와 해방을 말하고 싶다.

나도 대학교 때 5.18을 경험했는데 그때만해도 발레에만 집중했지 사회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그런데 어느날 연습하러가는데 갑자기 경찰에게 잡혀갔고 3박 4일간 갇혀 매를 맞기도 했다. 총알이 빗발치는데도 어머니가 나를 찾으러 돌아다니셨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시민들도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목소리를 낸 것이지,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잖나. 그로 인해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학생들, 일반 시민들까지 붙잡혀가고.  5.18을 나는 잔인한 광주의 모습이 아니라 자유, 그리고 사랑을 집어넣으려한다. 이 자유가 그대로 해방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언젠가 꼭 마지막 작품으로 이 작품을 하고 싶다.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힘이 닿는 한 우리 이야기를 담은 작품을 더 만들고 다음 세대들이 완성된 모습을 보여주길 바라고 있다. 존경하는 임성남 선생은 스승이기도 하지만 <춘향의 사랑>, <배비장> 등 창작 발레를 일찍이 만드셨다. 지금 이렇게 창작발레를 하는 것도 그분의 영향이 크다.

임성남 선생이 초석을 다졌고 나는 돋움 역할을 하면서 그 뒤를 이어 누군가가 완성된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언젠가 어린 친구들도 고민에 빠질 것이고 ‘이 길을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분명 누군가가 이어갈 것이다.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