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숙의 문화읽기]4·27 남북정상회담 속 문화코드
[성기숙의 문화읽기]4·27 남북정상회담 속 문화코드
  • 성기숙 무용평론가/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 승인 2018.05.01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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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숙 무용평론가/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2018년 4월 27일 한반도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 남북한 정상이 분단의 상징 판문점에서 회담하는 쾌거를 이뤘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남쪽 땅을 밟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렇기에 관심이 더욱 증폭됐을 것이다. 국군의장대의 사열과 전통의장대 호위를 받은 것도 처음이란다. 어디 그뿐인가. 남북한 퍼스트레이디가 한 자리에 모인 것도 최초였다.

오전 9시경 검정색 인민복 차림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북쪽 판문각 계단을 진중하면서도 경쾌한 발걸음으로 내려왔다. 사방에서 그를 호위하던 일행이 순식간에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군사분계선을 향해 성큼성큼 내딛는 그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시종 위풍당당했다. 어둡고 침침한 오랜 은둔에서 벗어나 환하고 따사로운 세상 밖으로 외유(外遊)를 나선 젊은 지도자다운 담대함이 엿보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온화한 미소로 세상 밖 외유에 나선 그를 맞았다. 군사분계선에서 남북한 두 정상이 손을 맞잡았다. 순간 판문점은 ‘위대한 역사’의 성소가 됐다. 두 정상은 전통의장대의 호위를 받으면 서서히 이동했다. 문 대통령이 차분하면서도 안정된 겸양의 걸음새를 보였다면, 김 국무위원장은 호방하면서 절도 있는 디딤새를 과시했다.

레드카펫이 깔린 130mm를 이동할 때 연주된 ‘여명’은 ‘하나의 봄’을 예고했다. 이어진 전통민요 아리랑과 편곡된 신아리랑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남북한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아리랑 선율이 남으로는 한라산, 북으로는 백두산까지 온 겨레에 울려 퍼졌으리라.

저녁만찬에 합류한 남북한 퍼스트레이디의 존재감은 한층 빛났다. 리설주 여사의 깜짝 등장으로 북한은 ‘은둔의 왕국’을 벗어나는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정상국가의 퍼스트레이디로서 그의 최근 행보는 파격적이다. 특히 이번 판문점 만찬참석은 한마디로 ‘신의 한 수’였다고나 할까.

남북 퍼스트레이디가 착용한 드레스 코드의 속살을 살피는 것은 퍽 흥미롭다. 김정숙 여사는 파란색 원피스 차림에 브로치를 달고 귀고리로 포인트를 줬다. 우아하고 단아한 차림새로 안정감이 돋보였다. 봄향기가 물씬 풍기는 화사한 차림새는 행사의 분위기와도 잘 어울렸다. 리설주 여사의 차림새도 이에 못지 않다. 연분홍색 투피스에 검정색 하이힐을 신고 클러치백을 손에 쥐었다. 세련된 이미지의 고전적 품격을 연출했다. 단아한 맵시의 고전적 품격은 반 묶음 머리스타일에서도 느껴졌다.

남북한 퍼스트레이디의 드레스 코드는 요란하지 않지만 확실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김정숙 여사의 파란색 의상은 희망의 메시지가 돋보인다. 한반도의 미래를 좌우할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을 기원하는 색깔로 손색이 없다. 봄의 색상인 연분홍색 투피스를 착용한 리설주 여사의 드레스 코드는 더욱 직설적인 은유가 깃들어 있다. 북한 이데올로기를 상징하는 진달래꽃을 연상케 하는 분홍색 투피스는 우아하면서도 격조있는 디자인으로 퍼스트레이디의 품격을 강조했다. 특히 사회주의체제 분위기를 물씬 풍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검정색 인민복 차림의 딱딱하고 경직된 이미지를 중화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렇듯 두 퍼스트레이디의 옷차림에서 풍기는 상징과 기호의 이미지가 미치는 영향은 실로 적지 않다. 김정숙 여사가 착용한 파란색 의상은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판문각의 전체 이미지와 중첩되면서 그 의미가 한층 배가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파란색 넥타이와도 조화를 이뤘다. 파란색 이미지는 도보다리로 이어진다. 도보다리 담소는 이번 남북정상회담 3대 명장면의 하나로 손꼽힌다. 남북 정상이 이른바 ‘공개된 비밀회담’이 진행된 그 도보다리의 색깔도 온통 파란색이었다.
  남북정상회담 준비과정에서 보여준 김정숙 여사의 정교한 참견도 관심사다. 특히 평화의집을 장식한 미술품에 꽂힌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평화의집 꾸밈의 화두는 ‘환영과 배려’, ‘평화와 소망’으로 집약된다. 주제를 구현함에 있어 미술품은 숨은 주역으로 손색이 없다. 

우선 1층 로비에 걸린 민정기 화백의 ‘북한산’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리얼리즘 작가 특유의 거칠고 투박한 선 굵은 붓터치가 인상적이다. 동양화 기법으로 그린 서양화라는 점도 흥미롭다. 북한의 지도자를 서울의 명산으로 초대한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환담장 벽을 장식한 김중만의 ‘천년의 동행, 그 시작’은 압권이다. 세종대왕이 만든 훈민정음을 사진작가 김중만이 재해석한 작품으로 익숙하면서도 남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우리에게 한글은 무엇인가. 한글은 남북한이 공유하는 최고의 인문자산이다. 떼려야 뗄 수 없는, 민족의 실체를 하나로 묶어주는 겨레말이 아니던가.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을 소재로 한 김중만의 작품이 환담장 배경을 장식할 그림으로 선택된 것은 사려 깊음과 수준 높은 안목의 반증이다. 모두에게 남북이 하나의 민족임을 새삼 일깨웠다. 글씨에서 “서로 사맛띠는 우리말로 서로 통한다는 뜻이고, 글자에 미음(ㅁ)자가 들어가 있다. 또 맹가노니는 만들다는 뜻으로, 여기엔 기역(ㄱ)자가 들어가 있다. 두 문장을 합치면 ‘서로 통하게 만든다’라는 의미로 승화된다.

이 작품에 깃든 문화코드는 또 있다. 문재인 대통령을 가르키는 ㅁ자엔 파란색을, 그리고 김정은 위원장을 가르키는 ㄱ자엔 붉은 색을 입혔다. 김정은 위원장이 ‘세부에까지 마음을 썼다’고 화답했을 정도다. ‘동토의 땅’ 은둔의 지도자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정성을 다해 하나하나 배려하고 세심하게 챙긴 결과다.

특히, 작품 ‘천년의 동행, 그 시작’이 반가웠던 것은 여초 김응현 선생의 서체가 활용됐기 때문이다. 여초는 한국 근대무용의 선구자 ‘조택원 춤비’를 쓴 분으로 무용계에도 그리 낯설지 않다. 함흥 출신 조택원은 이른바 신무용가로 세계를 활보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의 업적을 기념해 1996년 국립극장 앞마당에 조택원 춤비가 세워졌다. 조택원 춤비에 쓰여진 여초의 서체는 단호하면서도 강한 기운이 돋보인다. 20여년의 세월이 흘러 남북정상회담장을 장식한 미술품을 통해 여초의 서체와 재회할 줄이야.

이른바 ‘금강산의 작가’로 불리는 신장식의 ‘상팔담에서 본 금강산’도 남북정상회담의 가치 창출에 힘을 보탰다. 이 그림은 평화의집 2층 두 정상이 마주한 탁자 뒤편에 걸려 언론에 가장 많이 노출되는 행운을 누렸다. 푸르른 하늘을 배경으로 단풍이 든 외금강의 장엄한 풍광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금강산은 한국미술사의 중요한 테마였다. 겸재 정선을 비롯 소정 변관식이 금강산의 빼어난 절경을 화폭에 즐겨 담아냈다. 우리시대의 ‘금강산 작가’로 불리는 신장식은 금강산을 ‘한민족의 기운을 상징하는 백두대간의 꽃’으로 이해하고 있단다. 그렇다. 민족의 상승하는 기운과 역동하는 생명력이 4·27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판문점을 견고하게 휘감고 있는 듯 했다.

한국무용사엔 금강산이 어떤 모습으로 투영되어 있을까? 최승희가 주인공으로 출연한 영화 ‘대금강산보(大金剛山譜)’가 떠오른다. 1937년에 제작된 이 영화는 최승희가 주연을 맡았다. 야마다 고우사쿠, 홍난파 등 근대 한·일 양국의 저명한 아티스트들이 참여하여 화제를 낳았다.

아쉽게도 영화 ‘대금강산보’의 필림은 전하지 않는다. 기록이 없어 영화내용은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서사구조를 띤 일종의 극영화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의 향토색 짙은 풍광을 배경으로 무용가 최승희의 신체미학에서 발현된 예술성 그리고 약간의 로맨스가 곁들여진 작품이 아닐까 짐작될 뿐이다.

‘대금강산보’는 3개월 만에 로케이션을 마쳤다. 금강산의 석왕사를 비롯 평양, 수원, 부여, 경주 등에서 촬영했다. 놀랍게도 ‘골드 마운틴(gold mountain)’이라는 영문제목까지 붙였단다. 최승희는 세계순회공연 때 영화 ‘대금강산보’를 활용할 계획이었다. 이 영화가 수출용으로  제작됐음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계적인 무용가로 발돋움하기 위한 최승희의 열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대금강산보’ 제작에 일본 철도국이 1만원이라는 거금을 지원한 사실은 재음미할 점이다. 왜 철도국이 무용영화인 ‘대금강산보’의 제작비를 지원했을까? 관광산업 활성화 및 수익창출에 ‘대금강산보’가 보탬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은 조선 내 주요 역사유적지나 온천지 또는 자연풍광이 뛰어난 지역을 중심으로 관광자원화를 추진했다. 이른바 콜로니얼 투어리즘(colonial tourism)과 연동된 철도가 한반도 산천에 놓여질 무렵과 맞물린다. 민족의 명산 금강산도 예외가 아니었다. 금강산으로 향하는 동해선 철도가 건설되자 자연히 금강산으로 향하는 관광객이 급증했다.

오래잖아 분단과 함께 끊겼던 남북한 철도가 복원될 전망이다. 일본의 철도제국주의라는 지배전략에서가 아닌, 우리 스스로의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자유의지에서 추진된다. 가슴 벅찬 일이다. 경의선과 동해선이 우선적으로 연결되어 개통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반도 서쪽에서 북진하는 경의선을 따라 중국을 관통하고 실크로드를 거쳐 유럽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한반도 동쪽에서 북진하는 동해선을 통해 시베리아횡단철도를 따라가면 유럽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말이다.

철도의 출현은 인류의 진보를 가져왔다. 철도가 건설되는 곳에는 새로운 도시가 생겨났다. 도시를 근간으로 자본주의가 꽃을 피웠다. 철도는 도시와 도시를 연결할 뿐만 아니라, 각자 독립적으로 존재하던 비서구권 국가에 산업혁명의 결과를 전파했다. 철도는 자본주의를 전지구적으로 확산시키는데 큰 공을 세웠다. 이 지점에서 철도는 ‘진보의 드라마’를 견인한다고 지적한 에릭 홉스 봄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은 일찍이 메이지 유신을 통해 서구의 근대문명을 수용하여 이른바 ‘제국’을 건설했다. 조선을 식민화하고 중국과 러시아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로서 한반도에 철도를 놓았다. 1899년 한국 최초의 철도로 기록되는 경인선이 개통됐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당도한 철마의 기적소리는 근대를 알리는 여명(黎明)의 소리였다. 다른 한편으론 식민지의 어둠을 예고하는 불길한 소리이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춤의 선구자들 역시 한반도 남북을 가로지르는 철도를 따라 춤의 여명을 일깨우고 어둠을 타파하며 계몽과 진보를 실어 날랐다. 공교롭게도 일제시대 우리 춤의 시조 한성준을 비롯 신무용가 최승희·조택원의 한반도순회공연은 대부분 기차역 인근도시 중심으로 이뤄졌다. 이렇게 철도가 가져다준 문명의 혜택으로 근대 한국의 춤은 개화하고 진화했던 셈이다. 그런 점에서 한반도는 ‘근대의 실험실’이라는 주장은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여기’ 21세기의 한반도는 어떠한가?

흔히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 말한다. 4·27 남북정상회담 곳곳에 문화강국 대한민국의 저력이 기운생동의 품새로 은근하게 스며들었다. 회담장을 가치있게 장식한 미술품, 환송공연으로 선보인 ‘하나의 봄’ 등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또 만찬장을 빛낸 제주소년 오연준 군의 꾸밈없는 천진스런 목소리가 온 겨레에 큰 울림으로 퍼져나갔으리라. ‘예술의 힘’으로 부드러운 리더십이 발현되어 부디 통일이 그날이 앞당겨지기를 고대한다. 웅비하라 민족이여! 비상하라 한반도여!
성기숙(무용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