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세 현역' 김병기 화백의 생생한 한국현대문화사 증언
'102세 현역' 김병기 화백의 생생한 한국현대문화사 증언
  • 이가온 기자
  • 승인 2018.05.03 17: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범모 저, 한겨레 연재 '한 세기를 그리다' 정리한 '백년을 그리다'
 

'102세 현역 화가' 김병기 화백이 구술로 전한 한국 근현대문화예술사를 정리한 <백년을 그리다>가 한겨레출판에서 나왔다.

<백년을 그리다>는 지난해 한겨레에 연재된 <한 세기를 그리다>를 모아 책으로 엮은 것으로 김병기 화백의 구술을 윤범모 동국대학교 석좌교수가 정리해 신문에 연재한 글을 정리한 것이다.

이중섭, 김환기, 박수근, 이쾌대 등 한국미술사를 장식한 화가는 물론 김동인, 이태준, 백석, 이상, 윤동주, 유치진, 황순원, 선우휘, 박경리, 주요한 등 근현대 대표 문인들, 그리고 김일성, 이승만, 장준하 등 거물급 정치인들이 모두 김병기와 삶을 함께한 인연들이다. 

그들과의 인연, 에피소드를 전하는 김병기 화백의 구술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한국문화사라고 할 수 있다. 김 화백이 아니면 말할 수 없는 수많은 에피소들 속에서 역사의 인물들이 현실로 다시 소환되고, 우리는 뜻밖의 문화에술 비사를 만나는 흥분을 느낄 수 있다.

동기인 이중섭과 함께 한 에피소드, 병으로 신음하던 이상의 모습, 김환기와의 우정, 김일성과 이승만이라는 두 대립된 지도자들과의 만남, 조각가 자코메티와의 마지막 만남과 악수 등을 전하는 김병기의 증언과 함께 실린 도판 자료들을 통해 서양미술의 도입 과정, 일제강점기 화가들의 동향, 해방 전후 미술계의 좌우 대립 등 근대미술사의 굵직한 줄기들을 파악할 수 있다.

특히 해방 후 조선미술동맹 서기장을 맡아 남북의 화해를 시도했지만 좌우 분열 속에 '반동분자'로 몰렸다가 이쾌대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평양을 탈출하고 서울에서 50년미술협회를 조직해 창립전을 준비하다가 6.25로 인해 무산되고 종군화가단 부단장으로 활동하던 상황을 전하며 김병기는 "종군화가라는 명칭부터 비예술적이다. 예술과 전쟁은 상극의 개념"임을 밝힌다.

▲ 김병기 화백

뿐만 아니라 전쟁 후 한국현대미술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하지만 서울대파와 홍대파의 갈등, 주도권을 차지하려는 미술단체의 분열과 이합집산과 함께 '냉면 대접 투척 사건'등 미술계를 둘러싼 다양한 사건들의 전말도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김 화백은 1965년 미국 미술계를 둘러본 후 뉴욕 새러토가에 정착해 1986년 귀국 때까지 20여 년간 작품 활동에 몰두했다. 김 화백은 이때의 선택에 대해 “20년 봉사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면서 “현대미술의 현장인 뉴욕에서 작가의 길을 가보고 싶었다”고 회고했다. 

▲김병기 화백과 1년간 매 주 인터뷰를 통해  '대한민국 근대 문화예술사'라는 평가를 받는 책을 펴낸 윤범모 동국대 석좌교수.

65년부터 20여년간 있었던 뉴욕에서의 생활도 주목된다. 먼저 뉴욕에 정착해 있던 김환기, 김창열, 김보현 등이 생계를 위해 도배나 넥타이 공장에 다녔고, 그때의 경험이 훗날 그들의 작품 스타일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이야기와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에 나란히 출품했던 김환기 화백이 대표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로 대상을 받으며 금의환향했던 뒷이야기는 50여년을 건너 우리에게 미술사의 한 장면으로 생생하게 다가온다.

"백 살 먹었으니 이제 그림을 알 것 같다"는 김병기가 전하는 생생한 한국 문화의 기록. 신문 연재만으로는 부족했던 감동을 채울 수 있는 기회가 이 책 속에 있다.

"내가 이처럼 거창하고 이처럼 멋있는 나라를 두고 어디 있었나 하는 느낌을 지금 갖습니다. 제가 돌아왔습니다. (중략) 한국에 있을 때는 서양만 생각했습니다. 서양에 가서는 동양만 생각했어요. 동양을 생각함은 나 자신을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2014년 12월 국립현대미술관 초청으로 열린 회고전 인사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