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국립현대무용단의 신작 ‘SWING’에서 본 흥과 끼
[이근수의 무용평론]국립현대무용단의 신작 ‘SWING’에서 본 흥과 끼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18.05.04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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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 명예교수

‘스윙(SWING)’은 국립현대무용단이 안성수 예술감독 취임 후 보여준 두 번 째 신작이다. 첫 작품 ‘장미의 잔상’(2017,7월)이 국악기와 현대무용춤사위의 결합을 시도하고 현대춤과 전통춤을 뒤섞는 실험으로 관객들의 관심을 끌면서 기대가 컸던 후속 작이다.

‘SWING’(2018, 4.20~22, CJ토월극장)은 스웨덴의 예테보리(Goeteborg)에 거점을 두고 세계 각지를 순회하면서 활발한 연주활동을 펼치고 있는 6인조 남성재즈밴드인 ‘젠틀맨 앤 갱스터즈(Gentlemen & Gangsters)’와 국립현대무용단의 협업 작품이다.

무대 후면 가운데 6명의 악사들로 구성된 악단이 자리 잡았다. 더블 베이스, 드럼, 기타, 트롬본, 트럼펫, 클라리넷이 ‘젠틀맨 앤 갱스터즈’의 악단구성이다. 악단 좌우에 무용수들의 자리가 길게 배치되고 중앙이 비워진 무대 구조다.

첫 번 째 곡인 ‘In the mood'가 연주된다. 6명 씩 남녀무용수들이 등장하여 스윙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기 시작한다. 검은 색이 주조지만 정민선의 의상 디자인은 다양하고 조명(장진영)은 푸른색이다. 연속적으로 연주되는 SWING 리듬의 핵심은 흥(fun)과 끼(soul)다. 16개의 재즈곡을 16명 남녀무용수가 짝을 이루며 흥겹게 노는 무대가 인상적이다. 두 번 째 연주곡인 '벅시(Bugsy)'와 13번 째 연주곡인 ’류블랴나 스윙(Ljubljana Swing)'은 악단 트롬본 연주자인 헨릭 존슨의 자작곡이고 다른 곡들은 모두 미국의 정통 재즈 풍 기성곡들이다.

춤과 음악에 대한 안성수의 융합적 콘셉트는 이 작품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젠틀맨 앤 갱스터즈’의 스윙음악과 국립현대무용단 무용수들의 스윙댄스를 동기화함으로써 전작인 ‘장미의 잔상’에서 보여준 것과는 다른 효과를 관객들에게 선물한다. 첫 번 째 다른 점은 국악기와 현대무용춤사위의 이질적 결합보다 스윙재즈와 현대무용은 훨씬 더 동질적이라는 것이다. 스윙음악과 현대춤이 모두 1920년대에 출발을 같이 했다는 태생적 배경과 서양적 리듬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용수들이 좀 더 자유롭고 편안해질 수 있는 이유는 이 때문일 것이다.

무용수들이 달라졌다는 것이 두 번 째로 눈에 뜨인다. 전작에 출연한 무용수들은 모두 큰 키와 마른 몸매, 작은 얼굴에 검은 색 의상으로 통일된 모습이었다. 몰드로 찍어낸 듯 무표정한 인상이었던데 비해 체형이 다양하고 의상과 머리모양을 개성적으로 치장한 무용수들은 스윙 무대에 활기를 불어넣어준 원동력이었다.

세 번 째로 무대 구조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장미의 잔상’에서는 무대 2층에 배치된 국악기 아래에서 무용수들을 춤추게 함으로써 음악과 춤과의 간격이 느껴졌다. 스윙은 ㄷ 자형 무대로 악단과 무용수를 배치하고 가운데 공간을 만들었다. 이러한 무대구조는 중앙의 floor에서 등거리에 악사와 무용수가 자리 잡음으로써 음악과 춤과의 거리를 좁히고 악사와 무용수들의 수평적인 소통을 가능하게 했다.

스윙이 보여준 이러한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두 개의 아쉬움을 지적하고 싶다. 춤과 음악이 동격이라기보다는 춤이 연주에 종속되는 한계를 보여주었다는 점과 악단을 소개하고 공연순서를 안내하는 악사의 멘트가 모두 영어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한글자막을 같이 띄워주는 것이 바람직했고 일일이 소개된 악사들과 함께 무용수들도 일일이 소개되는 것이 마땅한 처우였다.

예술성에 중점을 두었던 첫 작품과 관객과 함께 즐기기를 표방한 두 번 째 작품이 모두 일찌감치 전석매진된 것을 보면 관객들의 안성수 사랑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재즈 풍의 가벼운 곡 16개가 차례로 연주될 때마다 무용수들은 흥겹게 몸을 흔들고 곡이 끝날 때마다 관객들은 박수로 호응했다. 콘서트에서 앙코르 곡이 연주되는 것처럼 인사를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간 무용수들이 앙코르 춤을 추러 무대에 다시 등장한 것도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예술가가 진심을 찾는 것은 쉽지 않지만 한 번 찾아진 진실은 결코 난해하지도, 관객들이 멀리 하지도 않는다. 취임 후 1년 내에 공개된 두 편의 작품을 통해 안성수는 그가 지향하는 국립현대무용단의 색깔을 명확히 해주었다. 그의 춤은 결코 음악을 놓치지 않을 것이고 그가 예술성과 대중성이란 두 마리 토끼 중 어느 한 쪽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다. 예술성을 바탕에 깐 대중성이라 할까. 이는 고급의 춤이란 말로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