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레터]연극 <손 없는 색시>, 여섯 배우에게
[윤중강의 뮤지컬레터]연극 <손 없는 색시>, 여섯 배우에게
  •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18.05.04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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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 어릴 때, 피아노의 건반의 여덟 음을 손가락으로 정성스럽게 눌렀던 기억이 있으시죠? ‘도레미’까지는 엄지, 검지, 중지로 눌렀죠. 이어서 다시 엄지부터 시작을 해서 검지, 중지를 거쳐서 약지, 소지까지 누르면, ‘파솔라시도’까지 모두 소리를 낼 수 있었습니다. 한 옥타브를 다 칠 수 있게 되었을 때, 마음으로 뿌듯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때, 우리의 잠재의식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손’은 참 위대하다!” 젓가락질을 능숙하게 되고, 가위로 종이를 오리는 걸 잘 하게 될 때도, 내심 손의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연극 ‘손 없는 색시’를 보았습니다. 제목처럼, 색시는 손이 없습니다. 아니, 없어졌습니다. ‘손 없는 색시’는 손의 위대함을 생각게 합니다. 많은 연극을 봤지만, 연극에서 ‘손’을 이토록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 있었을까요? 작품제목에 ‘손’이란 글자가 들어가서 그런 건 아닙니다.

배우들의 손이 귀해서 그런 겁니다. 인형을 다루는 배우들의 ‘손’이 참 귀하게 보입니다. 공연 중에서 선보이는 악기를 연주하는 ‘손’으로 해서, 더 그렇게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요, 요즘 말로 풀어내자면,  ‘손 없는 색시’의 배우들은 ‘손’으로 열일을 했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 커튼콜 때, 예술무대 ‘산’의 여섯 명의 배우에게 큰 박수(拍手)를 보냈습니다. 새삼 박수(拍手)란 단어가 더 뜻 깊어지네요. 박수란 손[手]으로 쳐서[拍] 리듬을 만들어내는 것이죠. 여섯 배우의 이름이 궁금하신가요? 저는 모두 처음 만났는데, 앞으로 이 배우들이 나오는 작품은 꼭 배우가 싶더군요. 김양희 김다영 최석원 김상환 박선민 박형채. 이렇게 여섯 명의 배우입니다. 이 배우들에게, 참 여러 가지를 배웁니다.

커튼콜 때, 여섯 명의 배우가 무대에 출연할 때, 살짝 놀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왜냐구요? 오직 이렇게 여섯 명의 배우가 인형을 조작하고, 악기도 연주하고, 배우도 되고, 내레이터가 됩니다. 여섯 명이 이 모든 걸 다 해냈다고 생각하니, 정말 전통적인 표현으로 ‘열일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어사전에 “물건이 자신의 용도 내외에서 높은 효율로 이용되는 것을 뜻함”이라고 풀이되어 있습니다. ‘최소인원의 최대효과’ 혹은 ‘가성비’란 말을 우리가 종종 쓰는 것처럼, ‘손 없는 색시’는 ‘최소 배우가 만들어낸 최대 감동’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겁니다.

아참 빠트린 게 있네요. ‘손 없는 색시’에는 그림자극도 삽입됩니다. 배우들이 그림자극의 조정자가 되기도 하고, 또 그림자극에서 그림자를 만드는 것도 이 배우들의 몫입니다. 참 궁금한 게 있어요. ‘엄마 뱃속에 있는 태아는, 어떤 배우가 했나요?’ 그러니까 손 없는 색시가 낳은 아들 ‘붉은 점’입니다. 실제 초음파사진보다 더 ‘정겨웁고’ ‘신비로운’ 느낌 마저 들더군요.

연극 “손 없는 색시‘가 전해주는 키워드를 저보고 정리하라고 하면, 한마디로 ’상처와 치유‘입니다. ‘손 없는 색시’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 전해 내려오는 민담입니다. 경민선 작가는 이런 얘기를 가져와서, 이 시대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작품의 기틀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이런 극본이 ‘재밌는’ 연출을 만났습니다. 조현산은 극을 즐겁게 풀어가려하고, ‘훌륭한’ 배우를 힘을 더해가면서, 그들만의 독특한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요즘 좋은 작품이 꽤 많지만, 늘 ‘여운’이란 게 아쉽습니다. 작품을 볼 때는 즐겁거나 슬프지만, 되새김해서 그걸 생각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연극 ‘손 없는 색시’는 자꾸 되새기게 되더군요, 작품의 소재와 내용을 보면, 분명 어두울 수 있죠. 하지만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객석에서 군데군데에서 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모두 보는 것만으로 즐거운 행복한 웃음이에요. “어두운 것도 밝게 보이고, 무서운 것도 귀여워진다!” 믿을 수 있겠어요? 작품을 본 분이라면, 이 말에 공감할 겁니다. 연출 ‘덕’이고, 배우 ‘덕’입니다. 연출이 작품을 잘 ‘손’ 본 덕분이고, 배우가 무대에서 ‘손’을 잘 놀려서 그런 겁니다.

이쯤해서, 이런 질문을 할지 모르겠네요. “뮤지컬을 다루는 지면에서, 왜 연극을 얘기하니?” . 요즘 대한민국 뮤지컬이, 참 대단치 않아서 그래요. 너무 싸잡아서 하는 얘기인 것 같지만, 사실 좀 그렇습니다. 뮤지컬 마다 배우는 많고 소품도 많은데, 감동은 적고 여운을 기대하기 힘들어요. 작금의 대한민국 뮤지컬을 ‘노래만 있는’ 혹은 ‘노래만 많은’ 뮤지컬이라고 싸잡아 말한다면 무척 섭섭하겠죠? 제가 이렇게 하는 말에 흥분하면서, 제발 제대로 좋은 뮤지컬을 만들어주세요.

지금 제 귀에 다시 “도레미파솔라시도”. 이 소박한 멜로디가 울립니다. 연극 ‘손 없는 색시’는 이건 만으로도 훌륭하고 애틋한 음악적 분위기를 만들어주죠. 왜 그런가 하면, 이게 전쟁으로 끌려가서 목숨을 잃은 ‘손 없는 색시’의 남편의 머리에 박힌 여덟 개의 구멍이랍니다. 이 작품을 그 여덟 개의 총알구멍을 ‘도레미파솔라시도’라고 얘기합니다. 죽은 자를 위안하듯, 중간에 배우가 피리(tin whistle)를 불어줍니다. 그 소박한 관악기에는 구멍을 뚫려져 있고, 그런 구멍을 열고 닫으면서 음정을 만들어내죠. 매우 슬프고 애달픈 스토리가 매우 간단하고 숭고한 멜로디를 통해서, 보는 사람의 가슴을 촉촉이 적셔줍니다. 대한민국 창작 뮤지컬도 가끔씩 이랬으면 정말 좋겠어요.

이 작품을 보면서, 우리말의 독특한 표현 하나에 공감했습니다. ‘손길’이란 표현입니다. ‘발길’이야 당연한 말이죠. ‘손길’이란 말은 따져보면, 좀 어색치 않았나요? “내밀거나 잡거나 닿거나 만지거나 할 때의 손”을 ‘손길’이라고 합니다. 이 작품을 보면, 피부로 와 닿을 겁니다. 연극 ‘손 없는 색시’에는 많은 ‘손의 움직임’이 있습니다. 그 변화무쌍한 손길을 당신도 한번 느껴보세요. 연극 ‘손없는 색시’에는, ‘구원의 손길’ 혹은 ‘사랑의 손길’이 있습니다. 물론 ‘미움의 손길’도 있답니다. 이 작품을 보면서, 지금 내 몸에 붙어있는 손이 참 고맙고 미안하단 생각이 들 겁니다. 아울러, 여섯 배우들의 ‘손’이 더욱 귀하게 느껴질 겁니다. 여섯 배우들의 그런 ‘손길’을 닮고 싶네요.

연극 ‘손 없는 색시’, 2018. 04. 26. ~ 2018. 05. 07.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