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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숙의 문화읽기] 무형문화재 원로전승자들의 ‘고려장’을 경계한다
2018년 05월 08일 (화) 23:55:55 성기숙 무용평론가/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sctoday@hanmail.net
   
▲ 성기숙 무용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지난 주말 아침 주륵 주륵 비가 내렸다.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가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할 즈음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며칠 전 발표된 무형문화재 위원 및 전문위원 선임과 관련된 얘기였다. 전문성이 결여된 편파적 인선으로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무용계 현장의 기대를 저버렸다는 것이 중론이다. 절망에 빠진 원로무용가의 한숨 섞인 한마디가 가슴에 내리 꽂혔다. “우리는 이제 뒷방늙은이 신세로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라는 것이라고”.  

 최근 문화재청이 무형문화재 원로전승자들에게 특별히 어떤 액션을 취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왜 이런 극단적인 소리들이 튀어나오는 것일까? 무형문화재 위원 및 전문위원 선임에서 뭔가 벌써 불길한 징후가 예단된다는 얘기일 것이다. 부디 빗나간 예단이기를 믿어보는 수밖에. 그럼에도 절박한 심정으로 토해낸 원로무용가의 한마디가 주말 내내 귓가에 맴돌았다.

한순간 고려장(高麗葬)이 떠올랐다. 늙고 쇠약한 부모를 산에 갔다버린다는 슬픈 이야기 말이다. 고려시대 설화에서 비롯됐다고는 하나 역사적 사실은 아니라는 것이 정설이다. 그럼에도 고려장 이야기가 널리 유포된 것은 일본인이 쓴 설화집과 동화책 등에 이 내용이 전해오기 때문일 것이다. 미와다 다미키의 『전설의 조선』(1919), 나카무라 료헤이의 『조선동화집』(1924) 등에 고려장 이야기가 전해진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병도가 펴낸 『조선사대관』(1948)에 고려장 설화가 수록돼 있다. 1960년대엔 고려장을 소재로 한 영화까지 등장했다. 옛 설화를 모티브로 만든 김기영 감독의 ‘고려장’이 바로 그것이다. 먹고살기 힘든 궁핍한 시절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유머와 재치, 코믹성으로 예술성과 대중성을 구현해 깊은 인상을 남긴 영화로 평가된다.

‘유가의 나라’, 효(孝)를 중시한 동방예의지국에서 고려장이 존재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노부모를 제대로 공양하지 않는 자를 죄로 엄히 다스렸다는 기록도 전한다. 그렇다면 어째서 부모를 버린다는 내용의 슬프고도 끔찍한 이야기가 고려시대의 설화인양 전해지고 있는 것일까?

고려장이라는 용어의 기원은 미국의 그리피스가 발간한 『은자의 나라 한국(Corea: The Hermitit Nation)』(1882)에서 비롯됐다. 옛날 한국에는 노인을 산 채로 묻어버린다는 고려장 이야기가 전한다고 썼다. 그리피스는 일본 정부의 초빙으로 도쿄에 머물며 대학 강의와 연구를 병행하면서 이 책을 집필한 것으로 알려진다. 조선의 미신과 전제왕권을 무너뜨리고 서구문명을 전파해야 한다고 역설했던 인물이다. 고려장은 편견에 사로잡힌 서양인의 시선으로 조선을 바라다 본 왜곡과 날조의 산물인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 터, 사실 고려장을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형문화재 원로전승자들이 처한 작금의 사정을 고려장 이외는 적절히 비유할 방도를 찾을 길이 없음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왜 무용분야 무형문화재 원로전승자들은 고려장에 처할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는가?

2017년 11월 15일 문화재청은 무용분야를 대상으로 공청회를 개최했다. 2016년 태평무 보유자 인정예고 파동이후 실시한 무형문화재 제도개선을 위한 여론수렴의 일환으로 치러졌다.  당시 명예보유자제도 개선방안도 소개됐다. 75세 이상 또는 25년 이상 경력의 전수조교에게 명예보유자로 전환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겠다는 내용이다. 파격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 그 파격이 긍정이 아닌, 부정적이라는 점에서 씁쓸함을 남겼다.

명예보유자제도란, 보유자가 고령화에 이르러 신체기능저하로 인해 전수활동이 어렵게 될 경우 명예보유자로 전환한다는 취지에서 생겨났다. 명예보유자가 되는 길은 의외로 간단하다. 우선 무형문화재 전수활동을 정상적으로 실행할 수 없는 보유자의 경우 명예보유자로 전환된다. 명예보유자는 전수교육 의무에서 자유롭게 해방되며, 따라서 전승지원비 지급도 중단된다. 국민의 혈세로 충당되기 때문에 전승지원비가 중단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 하겠다.

작년 문화재청이 제시한 명예보유자제도 개선안은 어떤 측면 획기적이라 할 수 있다. 공개행사를 비롯 전수교육 의무를 면제해주는 대신, 실질적 혜택은 그대로 유지시켜준다는 것이다. 즉 명예보유자에게도 전수교육 권한을 부여하고 전승지원비를 지급한다는 복안이다. 또 인간문화재 호칭도 기존과 동일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얼핏 보면 호감을 살만한 달콤한 제안들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제안은 명예보유자제도 본래의 취지에서 어긋난다는 점에서 치명적이다. 즉 고령화에 따른 신체기능저하로 인해 전수활동이 불가능하기에 명예보유자로 전환하라고 하면서 명예보유자에게도 여전히 전수교육 권한을 부여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완전히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다. 또 전승지원비도 그대로 지급하고 인간문화재 호칭도 종전대로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인데 공감하기 어렵다.

보다 치명적인 결함은 또 있다. 명예보유자 자격 논란이다. 문화재청은 75세 이상의 전수조교에게 명예보유자로 전환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고 한다. 우선, 명예보유자란 보유자 단계를 거쳐야만 도달할 수 있는 지위이다. 그런데 전수조교 신분에서 보유자 단계를 건너뛰고 곧바로 명예보유자로 직행하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넌센스다.

예컨대, 명예보유자란 교수로서 고유의 직무를 다하고 퇴임해야 비로소 명예교수 자격이 주어지는 것과 같은 맥락인 것이다. 보유자 단계를 건너뛴 명예보유자는 겉으로는 신분상승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빈 껍데기에 불과한 공허한 지위일 뿐이다. 타이틀만 명예보유자일 뿐 어떤 측면 ‘불명예 보직’을 얻는 것과 다름없다.

나이 문제도 모순으로 지적된다. 기존 보유자는 80세 이상의 나이에 이르면 명예보유자로 전환될 수 있다. 이에 반해, 전수조교는 75세를 기준으로 명예보유자로 전환하라는 것이다. 보유자, 전수조교 모두 ‘사람’을 대상으로 하다는 점에서 5년이라는 나이 편차를 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불공정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기존 보유자의 명예보유자 전환은 각자의 자율적 선택에 맡겨졌다. 그러나 사실상 종신제(終身制)와 다름없었다. 작년 문화재청에서 실시한 공청회에서 보유자도 전수조교와 동일하게 75세를 기준으로 명예보유자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되자 보유자들이 거세게 반발했다고 전해진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보유자들의 철벽방어에 문화재청이 한 발 물러난 셈이라고나 할까. 이 계획은 철회된 것으로 알려진다. 대신, 상대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는 전수조교들에겐 75세를 기준으로 명예보유자로 전환하라고 유도하는 형국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강요로 해석될 소지도 없지 않다.

무용종목의 경우, 보유자든 전수조교든 모두 신체를 매개로 무형문화재 전수활동이 이뤄진다. 장르의 특성상 춤은 신체건강 유무가 전수활동에 절대적으로 영향 미친다. 따라서 전수활동 가능여부는 개인의 신체관리에 따라 편차가 나기 마련이다. 가령, 80세라도 건강하다면 전수활동이 가능할 것이고, 반대로 60대라도 건강에 이상이 있는 경우엔 정상적인 전수활동이 불가능할 것이다.  

찬찬히 생각해 보자. 80대의 전수조교보다 60대의 전수조교가 보다 더 건강하다고 누가 보증할 수 있겠는가? 60대의 전수조교 중에서도 불량한 건강상태에 직면해 있는 경우, 정상적인 전수활동은 불가능할 수 밖에 없다. 무용분야 무형문화재 전승에서 이른바 ‘신체나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따라서 명예보유자 전환을 단지 생물학적 나이를 기준으로 삼는 것은 적절치 않다. 더욱이 법규에도 없는 명예보유자제도 개선안을 내놓은 문화재청의 행보는 이해하기 어렵다.  

문화재청이 유도하는 75세 이상 전수조교에 대한 명예보유자로의 전환은 비단 무용종목에만 해당되지는 않을 것이다. 문화재청은 국가무형문화재제도의 관리주체이다. 여타 지자체의 무형문화재 행정의 준거가 됨은 당연하다. 따라서 엄중하고 정교하게 다뤄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문화재청의 명예보유자제도 개선안은 아마추어적 발상이라는 비난을 벗어나기 어렵다. 문화재청은 왜 이토록 모순투성이인 명예보유자제도 개선안을 내놨을까?

해답은 의외로 쉽게 찾아진다. 75세 이상 전수조교들이 명예보유자로 전환될 경우, 가장 혜택을 보게 될 사람들은 과연 누구일까? 예컨대, 강선영류 태평무에서 75세 이상의 전수조교 2명이 명예보유자로 전환되는 순간, 단 한 사람이 남는다. 보유자 인정예고자로 낙점됐으나 무용계의 거센 반발로 보류 결정됐던 60대의 전수조교가 이에 해당된다. 승무·살풀이춤의 경우, 75세 이상의 전수조교는 3명이다. 이들이 명예보유자로 전환될 경우, 3명의 전수조교는 물론 이수자로서 심사에 응시한 원로무용가들 역시 보유자인정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자연히 60대의 전수조교들이 혜택을 보게 될 가능성이 농후해진다.  

돌이켜 보건대, 태평무 보유자 인정예고 파동이후 지난 2년 6개월 동안 무용계는 혼란과 분열 속에 놓여져 있었다. 2015년 12월 문화재청은 승무·살풀이춤·태평무 등 3종목에 대한 무형문화재 보유자 선정심사를 실시했다. 약 15년 만의 심사라서 문화계 안팎의 관심이 최고조에 달했다. 3개 종목에서 총 27명이 응시했고 그중 태평무 1종목에서 단 1명만이 보유자로 인정예고 됐다. 결과는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 지난 2016년 3월 무형문화재 태평무 전수조교보유자인 이현자씨가문화재청의 '태평무보유자 후보 선정'에 반발해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서울문화투데이 DB사진)

심사위원의 편파구성, 특정 학맥의 영향력 행사, 콩쿠르 심사방식 등 불공정 심사를 행한 문화재청은 성토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무용계의 공분(公憤)은 수차례 성명서로 표출됐고, 언론은 약 100여건에 달하는 비판기사로 호응했다. 강선영의 제1호 제자이자 태평무의 진정한 계승자로 손꼽히는 이현자는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펼쳤다. 사회적으로 핫이슈로 떠올랐다. 무용사적으로도 유례없는 일로 기록된다.

상황이 극단으로 치닫자 문화재청은 무형문화재 제도개선 카드를 들고 나왔다. 여론수렴 목적으로 세미나·토론회 등을 개최하며 의욕적으로 ‘공론의 장’을 펼쳤다. 그러나 문화재청의 움직임은 자체의 정책적 판단이 부재한 채 허공을 맴돈다는 인상이 짙다. 시간과 노력은 물론이요 적잖은 예산이 투입됐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된다. 제도개선을 위한 여론수렴의 결과가 무엇인지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이 지점에서 국가의 역할을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반추하건대, 무형문화재와 연동된 국가의 역할론은 훨씬 이전부터 제기됐었다. 1990년대 무형문화재 전수체계는 ‘보유자-보유자후보-전수조교-이수자’의 구도로 그려졌다. 보유자 바로 아래단계에 ‘보유자후보(준보유자)’라는 명칭이 존재했다. 보유자후보는 보유자(인간문화재) 사후(死後) 후계구도에서 영순위에 해당되는 지위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보유자후보가 하향되어 전수조교와 통합됐다. 보유자후보는 국가에 의해 한 단계 강등되어 전수조교로 전락한 셈이다.

그후 약 15년의 세월이 흘러 보유자 인정심사가 실시됐다. 원로전승자 몇 분은 망실된 보유자후보 명칭대신 전수조교라는 명찰로 심사에 응했으나 이번엔 불공정심사로 인해 탈락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탈락한 75세 이상의 전수조교들에게 명예보유자로의 전환을 유도하는 문화재청의 의도는 과연 무엇인가? 원로전승자들은 그동안 허망하게 소진된 세월을 누구에게 보상받을 수 있을까? 국가의 직무유기를 탓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의 직무유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2015년 승무·살풀이춤·태평무 등 3종목을 대상으로 보유자 인정심사를 실시했으나 태평무를 제외한 나머지 2종목에 대해서는 지금껏 결과발표를 미루고 있다. 그 사이 안타깝게도 시간만 속절없이 흘러갔다. 보유자 인정심사 공모 시점부터 계산하면 약 5년의 세월이 낭비됐다. 금쪽같은 시간들이 증발되는 사이 박근혜 정부는 국민의 이름으로 불명예 퇴진했고, 같은 국민의 이름으로 지난해 5월 ‘장미대선’을 거쳐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그리고 어언 1년이 지났다. 박근혜 정부에서 파탄난 문화재행정이 부디 정상화되길 바라는 것은 비단 무용계의 희망만은 아닐 것이다.    

올해 초 정부관료 워크숍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어록을 남겼다. “국정운영 중심을 국민에게 두고, 나라의 근본부터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 “국민의 삶을 지키는 것을 정부의 최우선 역할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곱씹어 보면, ‘나라의 근본’ 그리고 ‘국민’, 두 단어에 방점이 찍혀있다.

무형문화재 춤은 나라의 근본이요, 우리 민족의 혼과 얼이 스며있는 역사의 상징체이다. 우리 스스로 보존하고 지켜야 할 귀중한 문화유산인 것이다. 국가는 근현대 질곡의 역사를 헤치고 명무(名舞)의 반열에 오른 무형문화재 원로전승자들의 삶을 지켜줘야 할 책무가 있다. 그분들은 자랑스런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이다. 우리가 아는 바, 그분들은 삶이 곧 춤이었고 춤이 곧 삶이었다.

호소한다! 일평생 온 힘을 다해 이 땅의 춤을 지키고 가꾸어온 무형문화재 원로전승자들이 박근혜 정부에서 자행된 부당한 문화재행정으로 인해 부디 ‘고려장’을 당하지 않도록 지켜달라고. 이른바 ‘국가’의 이름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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