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소중한 사람을 살려야 해, 그러려면 너가 죽어야하고'
[공연리뷰]'소중한 사람을 살려야 해, 그러려면 너가 죽어야하고'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8.05.17 1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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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의 딜레마'를 질문하는 연극 '피와 씨앗'

나는 소중한 사람을 살려야한다. 그러나 그 사람을 살리려면 누군가가 희생이 되어야한다. 흔히 '살신성인'이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것 자체가 다른 사람에게 주는 파장은 상당히 크다. 대체 무엇이 '윤리적'인 것인가? 희생을 한다는 것 자체가 비윤리적인 상황인데 어떻게 그 곳에서 윤리적이라는 말이 나올 수 있는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공연 중인 롭 드러먼드의 <피와 씨앗>은 바로 이 윤리의 딜레마를 관객들에게 제시한다.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옳다고 판단하는 상식의 기준이 과연 정말로 옳은 것인지, 무엇이 진정으로 옳고 그른지를 이 연극은 관객들에게 계속 질문을 한다.

▲ 연극 <피와 씨앗> (사진제공=두산아트센터)

시골 농장에 사는 의사 소피아(우미화, 강명주 분)은 신장 질환을 앓고 있는 손녀 어텀(최성은 분)과 어텀의 이모 바이올렛(박지아 분)과 함께 살고 있다. 어텀을 살리려면 신장 이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 어느 날, 감옥에 있는 아이작(이기현 분)과 그의 보호관찰관인 버트(안병식 분)가 농장에 나타난다. 아이작은 어텀의 아버지였고, 유일하게 신장이 맞기에 보호관찰관과 함께 온 것이다.

버트를 제외한 가족들은 무엇인가 불안한 모습을 계속 보인다. 어텀은 자신이 태어난 과정을 이야기하는 듯한 독백을 들려주고 라이브 영상이 무대에 드러나지 않은 뒷모습을 보여준다.

인물들은 수시로 욕설을 내뱉는데 그 욕설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뭔가 강해보이려하는 듯한, 억지로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들린다. 극은 끝까지 '뭔가가 터질 듯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이들 가족의 삶을 계속 보여준다.

딸에게 신장을 줄지 말지 고민하던 아이작은 결국 자신의 삶을 찾고 싶다며 신장 이식을 거부하고 소피아는 아이작을 해치고 자신이 직접 신장을 취해 어텀에게 신장을 이식하려한다. 이들의 미쳐가는 모습을 통해서 아이작을 살리려는 버트 역시 미쳐간다.

인물들은 서로의 불행을 상대방 탓으로 돌린다. 하지만 정확히 무슨 일이 과거에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끊임없는 갈등의 표출과 마치 자신의 삶을 체념한 듯한 어텀의 독백이 극을 끝까지 긴장감있게 몰아간다.

▲ <피와 씨앗>은 윤리에 대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사진제공=두산아트센터)

작품을 보는 이들은 '밀알의 여신' 등 켈트족의 전통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가 다소 낯설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이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것은 가족을 살리겠다고 하면서 다른 가족을 희생시키려는 것이 진정한 가족의 사랑인지, 과연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진정 숭고한 삶인지를 인물들의 대사와 행동을 통해 전하기 때문이다.

손녀의 생일상을 차리기 위해 양고기를 먹으려면 양을 죽여야한다. 우리도 그 양과 다를 바 없다. 식탁에 오르는 고기처럼 희생될 수도 있는 인간의 모습을 자꾸만 생각나게 하는, 그래서 극을 보고나면 하고픈 이야기가 많아질 것 같은 작품이 <피와 씨앗>이다.

<피와 씨앗>은 오는 6월 2일까지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