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 질긴 생명력과 한(恨)의 정서를 새긴 문영태 유작전 ‘심상석’(心象石)
민중의 질긴 생명력과 한(恨)의 정서를 새긴 문영태 유작전 ‘심상석’(心象石)
  • 정영신 기자
  • 승인 2018.05.22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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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북단마을 김포시 월곶면 ‘민예사랑’에서 다음달 2일까지 열려...

‘문영태추모위원회’에서 기획한 문영태 유작전이 지난 19일 오후4시, 북한을 눈앞에 둔 최북단마을 김포 월곶면에 자리한 갤러리 ‘민예사랑’에서 개막되었다. 이 유작전은 인사동에서 ‘민예사랑’을 운영하는 미망인 장재순씨가 미술관을 새롭게 개관하며 마련하였다.

민중문화운동가이기도 했던 문영태화백의 유작전에는 80년대 작업한 연필화 ‘심상석’(心象石) 연작에서 부터 사진작업 ‘분단 풍경’까지 고인의 대표작을 한자리에 모아 보여준다.

▲ 심상석-상황, 종이에 연필, 53X53cmX4

3주기에 맞춰 마련한 문영태 유작전 개막식에는 많은 선후배 화가와 학교동문, 문화예술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화가 박진하씨의 사회로 진행했다. 축사에 나선 민중미술가 신학철선생은 “선비 같은 모습으로 세상을 바라본 문영태의 작품하나하나에 그의 인격이 들어 있다.

다른 사람은 그의 그림을 어떻게 볼지 모르지만 내 눈에는 분단의 문제로 보인다. 그의 ‘심상석’(心象石) 연작은 어떤 표현도 가능하기에 아직까지 유효하다고 본다. 모더니스트임에도 불구하고 통일과 민주화에 열정을 쏟은 그의 모습이 보고 싶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 자화상,종이에 연필, 31X49cm, 2002

이재권 동문은 ”대학 다닐 때의 문영태는 함석헌선생의 장자관을 손에서 놓지 않을 정도로 심취해있었다. 그의 그림 속에도 도를 보는 관점, 칼라를 보는 관점이 장자처럼 ‘천하를 너그럽게 놓아두기’에 있다고도 했다.

린다노클린은 "예술의 목표는 그 시대의 모습을 분석하고 묘사하는 것이며, 예술은 구체적인 모습을 갖는 그 시대의 세계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이상이나 상징보다는 사회적 제 조건과 보다 간접적이고 실질적인 관계가 있다"고 밝힌바 있다.

▲ 장재순'민예사랑'대표 Ⓒ정영신

민중문화운동가였던 문영태는 홍익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한 뒤 1980년대 ‘서울미술공동체’를 시작으로 ‘시대정신’, ‘삶의 미술전’, ‘해방40년 역사전’을 추진하였고, 민족미술협회를 창립하고 ‘그림마당 민’을 운영하면서 출판과 전시기획, 민주화운동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활동을 펼치며 동시대의 삶을 성찰해왔다.

▲ 천지인 115X77X20cm 상석에 조각 1995

화가 박건씨는 1980년 문영태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의기투합해 <시대정신>창간호를 발간하게 되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미술운동가들이 함께 만든 최초의 민중문화운동 담론지로서 나중에 ‘민미협’과 ‘민예총’으로 가는 다리역할을 했다고도 한다. 또한 문영태는 “공공성과 민중문화에 대한 존중감이 높은 선배였다”고 기억했다.

▲ 나무화랑 대표이자 평론가 김진하씨 Ⓒ정영신

‘나무화랑’을 운영하는 미술평론가 김진하씨는 "‘문영태의 심상석 연작은 1977녀부터 1983년까지 종이에 연필로 그린 작품으로 ‘심상석’은 마음의 형상이 새겨진 돌, 혹은 돌에 새겨진 마음이다. 어떤 것이든 무형의 마음이 구체적사물인 돌로 치환하는 마음과 돌이 인과 혹은 등가의 의미를 띄는 단어이다.

▲ 심상석-결합, 종이판화, 44

타제 마제석기를 연상시키는 ‘심상석’작품은 대체적으로 무겁고 심각하다며, 마음이나 정서에 상처 입은 사람들의 한, 혹은 물리적인 폭력에 의해 몸과 두개골 등에 상흔이 새겨진 사람들, 일상적인 삶의 무게와 민중적 생명력에 관한 작가의 시선이 복합적으로 얽혀져 있다.

단단한 돌에 풍화작용처럼 마음의 흔적이 심상(心象)으로 새겨진다는 것은 뭇 생명들의 삶과 죽음, 그리고 생존에의 의지가 긴 세월 인고의 세월을 부침하며 견딘 결과라며, 문영태의 심상석에서 기층 민중들의 질긴 생명력과 한(恨)의 정서가 동시에 묻어난다고 작가론에 적었다.

▲ 심상석 78-3, 종이에 연필, 168X122cm, 1978

특히 문영태는 1990년 경의선모임이란 공동작업체를 만들어 사진 작업도 했다. 문영태가 주축이 되어 사진가 이지누, 화가 박불똥, 유연복, 최민화, 김기호, 김태희, 남궁산, 백창흠, 박 건, 송진헌, 유은종, 이정희, 조경숙, 공예가 김원갑, 이송열, 미술평론가 라원식씨 등 열일곱명이 참여하였는데, 그 결과물로 ‘눈빛출판사’에서 ‘분단풍경’사진집을 펴냈다.

▲ 국도 7번 도로변- '분단풍경'사진집에서

‘분단풍경’ 사진작업 이후로는 김포 월곶리 자택에 칩거하며 평소 관심가진 전통적인 민중성과 민속적인 글쓰기를 통해 기층 민중들의 생활사에 기반 한 민속민예문화를 연구하면서 상처받은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을 위무할 수 있는 문화를 꿈꾸었고, 그런 민초들의 생명력에서 서로를 보듬는 미술의 민중성을 지향해 왔다.

▲ 시대정신 창간호,1983-1987

새롭게 자리잡은 ‘민예사랑’개관과 문영태 3주기 유작전을 축하하는 자리에는 ‘민예총’이사장 박불똥씨, 화가 신학철, 장경호, 이인철씨, 사진가 조문호, 판화가 홍선웅, 미술평론가 김진하, 동영상을 제작한 양정애씨등 ‘문영태추모위원회’를 비롯한 친지와 많은 지인들이 찾아 와 고인을 추모하며 유작전을 관람했다.

▲ 김포 월곶리 '민예사랑' 전시된 작품 Ⓒ정영신

이날 추모전시에서는 ‘나무아트’대표 김진하씨가 만든 자료집 <심상석·문영태>와 문집 <누가 몰가부를 내놓겠는가―한국의 문화, 한국인의 성>(몰가부-자루 빠진 도끼)라는 책이 출간되기도 했다.

책에는 1990년대 ‘분단풍경 : 열일곱 사람의 경의선 사진작업’ 그룹을 결성하고 분단된 국토의 현장을 직접 답사하며 찍어둔 필름들, 시인 김정환과 공동으로 펴낸 <이 시대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두 사람>, 1996~98 월간 <사회평론 길>에 연재한 ‘문영태의 한국의 문화, 한국인의 성(性)’, 2001년 사진가 이지누와 공동으로 발간한 계간 <디새집>에 연재한 ‘궁시렁 궁시렁 문영태의 집 이야기’ 등 문영태선생의 후반기 글쓰기 작업까지 한데 모아서 엮었다.

▲ 좌)'심상석-문영태'도록표지, 우)'누가 몰가부를 내놓겠는가' 책표지

문영태선생의 유작전은 김포시 월곶면 보구곶리 ‘민예사랑’에서 다음달 2일까지 이어진다.

전시문의 (010-5357-5256 민예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