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정현백 장관님은 남정숙을 두 번 우롱하시는 겁니까?
[특별기고]정현백 장관님은 남정숙을 두 번 우롱하시는 겁니까?
  • 남정숙 문화평론가/ 전국미투생존자연대 대표
  • 승인 2018.05.29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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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숙 문화평론가/ 전국미투생존자연대 대표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님!
정현백 장관님께서는 성균관대학교 교수시절 상사에게 권력형 성폭력을 당한 비정규직 여교수가 도움을 요청할 때 외면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 사실이 알려진 후 여야의원들은 물론 잠시 장관님의 안위가 걱정될 정도로 국민들로부터 질타를 받으신 적이 있으셨죠?

그 일을 만회하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2018년 3월 26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여가부가 주최하는 교육계 간담회에 저를 토론자로 초청하셨더군요. 참, 아닐 수도 있겠네요, 제가 그 자리에 꼭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그 며칠 전에 김승희의원을 비롯한 여가위 위원들로부터 남정숙을 만나서 사과한 적 있느냐는 질타를 받은 것 때문에 끼워 넣기 하신 게 더 타당한 이유겠네요.

아무튼 교육계 간담회에 참석하기 며칠 전부터 여가부 직원들로부터 장관님과 따로 만나는 자리가 마련될 테니 준비하고 있으라는 연락을 수차례 받았습니다. 그리고 교육계 간담회 도중, 정확히는 간담회 중간, 점심식사 이전에 이건정 여성정책국장이 저를 따로 부르더니 18층 복도에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을 따돌리고 프레스센터 20층 목련*로 저를 안내했습니다.

작은 방안에는 미리 정현백장관과 이남희 정책보좌관님이 와계셨고, 저와 이건정 국장이 자리에 앉아서 4사람만 참석한 오붓한 회담이 이루어졌습니다.

장관님께서는 제가 자리에 앉자마자  “그동안 그 힘든 일을 어떻게 참으셨어요”라고 위로하시며 “미투에서 가장 시급한 일이 무엇인가요?”라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준비한대로 첫째, 미투 피해자들이 복직해서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둘째, 피해자들의 법률과 생계 등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셋째, 미투의 원인과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위한 모니터링시스템과 센터가 필요하다고 건의드렸습니다. 세 번째 건의안은 제가 아니라 정현백장관님의 의견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장관님은 그 자리에서 약속은 하지 않으셨습니다만 가능하면 노력해보겠다고 하신 바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계셨던 이건정 국장과 이남희 보좌관은 세 번째는 어려울 것 같다.’ 라고 하니 장관님께서 ‘아니다. 세 가지가 꼭 필요하다.’라고 직원들의 부정적인 의견을 만류하시기까지 하신 바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인 3월 27일 전국미투생존자연대 발족식에 참석하셔서 근사한 축사를 해주셨습니다. 저는 그때만 해도 장관님이 직접 사과는 하지 않더라도 2015년 5월 6일 그날의 사건을 사과하는 의미로 받아 들였고 발족식에도 오셔서 축사도 해주시고 나름 성의를 보이시는 구나라고 생각하며 그동안 장관님께 있었던 원망과 서운함이 말끔히 사라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대한민국을 들썩여 놓은 미투가 100일이 지나도록 미투운동의 운전자여야 할 장관님과 여가부는 무엇을 하셨는지 묻고 싶습니다.

미투 피해자들은 폭로로 인한 모욕감과 폭로이후 위협을 감수하면서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나선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모든 종류의 성폭력을 그저 성폭력이라 부르던 것을 권력과 위계에 의해 성을 이용하는 것에 대해 ‘권력형 성폭력’이라는 이름을 만들고, 권력형 성폭력에 대한 정황과 유형을 폭로하므로 그 해결방법과 법∙제도화를 제시하고자 했습니다.

물론 그동안 숨겨져 있던 우리사회의 민낯을 직면하게 하므로 국민들에게 충격과 남녀 간의 갈등이 촉발된 이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미투 피해자들의 용감한 폭로를 응원하고 응원하는 국민들이 10명 중 7명(68%)이나 되고, 여가부의 4월 ‘위드유 캠페인’에는 1천 811명의 국민이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사회적 변화와 개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운동을 하고자 했던 피해자이자 폭로자들에 대한 비난을 막아주고 사회운동의 기회를 마련해서 사회가 긍정적으로 변화하도록 적극적인 역할을 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국민들이 미투폭로와 위드유를 외치면서 힘든 시기를 보내는 동안 여가부는 미투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첫째, 100일여 동안 여가부는  ‘문화계 미투 간담회’, ‘교육계 미투 간담회’, ‘이주여성 미투 간담회’, ‘중장년 서비스직 미투 간담회’, ‘한국기자협회 미투 간담회’.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와 미투 간담회’, ‘양성평등위 미투 간담회’ 등 수많은 간담회를 개최했습니다. 간담회를 통해 세간의 목소리를 듣고 학습했다면 여가부는 이제라도 ‘미투 정책’을 발표해야 했습니다. 듣기만하고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대책도 내놓지 않는다면 다시 국민들은 정현백장관의 사퇴와 여가부 무용론을 들먹일 수 있습니다.

둘째, 100일 동안 공식적으로는 78명(JTBC 보도), 비공식적으로는 100여 명 이상의 미투 피해자들이 개인적인 모욕을 감수하면서 자신의 피해사례를 구체적으로 발표한 것은 자신은 희생되는 한이 있더라도 다시는 자신과 같은 성폭력을 멈추게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깨알 같은 정보를 활용하지 않고 전면 무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교육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전에 책임자가 동석한 교육계 간담회에서 미투정책을 세울 때는 반드시 미투 피해자를 포함시켜달라는 요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부와 여가부, 특조위 등 임시 발족한 미투 정책 TFT에 미투 피해자들을 참여시키지 않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을 참여시켜서 세월호사건처럼 백서라도 써서 기록화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미투가 아니면 개인이 사회와 조직에서 당한 교묘한 차별과 불공정한 가해를 어떻게 알 수 파악할 수 있겠습니까? 교육부와 여가부가 국민여망을 무시하고 다시 쇼만하고 있다는 비난이 두렵지 않으십니까?

셋째, 미투 피해자들은 대부분 비정규직이며 사회적으로 을의 위치에 놓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과 학교 권력자들의 폭력과 폭행을 폭로하면 직장을 잃고 사회적으로 매장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회변화를 위해 용기를 낸 사람들입니다. 가해자들은 기세등등하고 피해자들은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조직과 사회로부터 2차 폭행과 위협을 당합니다.

대부분 사회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아주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고 얼굴이 알려진 이들은 사회경력이 단절되고 이후에도 사회생활을 유지하기가 어려울 지경입니다. 이들을 여가부가 보호하고 안아주어야 합니다. 미투 피해자들이 경험한 성폭력 경험들을 활용하고 예방조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가부는 예산타령만 합니다. 꼭 예산이 아니더라도 폭력적 비상상황에 처해있는 피해자들을 보호할 시스템을 가동해야 하고, 현재 부실한 시스템을 재정비해서 피해자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해주십시요. 언제까지 당황하고, 현장에 취약한 모습을 보여주실 겁니까?

그런데 여가부는 미투지원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동안 ‘디지털 피해 종합서비스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를 지원센터’와 ‘이주여성 성폭력 피해 지원’ 그리고 ‘군 위안부 연구소 개설’ 등 타 정책에는 실적을 보이고 있더군요.

이 정도면 여가부가 ‘미투’를 지원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장관님!
장관님은 왜 저를 별도의 공간에서 보자고 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왜 미투에서 가장 시급하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으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장관님께서 저를 별실에서 만난 이유가 여론이나 여가위 위원들에게 떠밀려서 형식적인 만남이 필요하셨던 건 아니셨겠지요?

다시는 장관님의 개인적 안위를 위해서 힘도 권력도 없는 피해자를 외면하거나 이용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장관님은 성균관대 시절의 개인이 아니라 여가부의 수장이므로 장관님의 잘못된 행보는 제가 아닌 국민을 우롱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장관님과 여가부가 대한민국 국민들을 위해서 제대로 된 미투정책을 제시해 주실 것으로 기대하고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