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레터]‘신광대 판놀음’의 윤여주와 장효선에게
[윤중강의 뮤지컬레터]‘신광대 판놀음’의 윤여주와 장효선에게
  •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18.05.29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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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2018전통연희페스티벌(5. 19. ~ 20. 상암 월드컵평화의공원)이 잘 끝났습니다. 올해는 특별히 ‘신광대 판놀음’이 새롭게 제작돼 이틀간 선보였습니다. 최고 수준의 젊은 연희꾼들이 모여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었죠. 사자놀이, 살판(땅재주), 죽방울놀이, 솟대타기, 버나 돌리기, 등 전문적인 기예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종목들을 연결하는 것은 ‘재담’이었고, 재담의 남녀콤비가 윤여주님과 장효선님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재담이 있었고, 일제강점기에는 만담으로 통했습니다. 만담(漫談)이라고 했을지라도, 그 내용은 일본과는 전혀 관계가 없고, 우리 고유의 말과 정서에 뿌리를 둔 재밌는 이야기였죠. 

재담과 만담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죠. 재담은 박춘재요, 만담은 신불출입니다. 재담과 만담은 무대공연에서 큰 인기를 끌었지만, 이런 것들이 유성기음반에 담겨서 지금까지 전해집니다. 

재담이 가장 사랑받았던 공간은 어디였을까요? 광무대(光武臺)입니다. 여기서 많은 공연이 펼쳐졌지만, 구경꾼들이 폭소를 터뜨리면서 가장 좋아했던 건 박춘재의 재담입니다. 박춘재는 소리도 잘하고, 재담도 잘하는 사람입니다. 그 시절에는 재담하는 사람에게 ‘노래’는 필수적이었죠. 

‘신광대 판놀음’을 준비하면서, 이렇게 ‘노래도 되고, 연기도 되는’ 재담꾼을 찾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가장 적역으로 뽑힌 분이 윤여주님과 장효선님이지요. 윤여주님은 설장구 기예에 출중한 연희전공자입니다. 연희집단 ‘유희’에서 활동도 하고, 또한 ‘만요컴퍼니’의 공연에서는 1930년대 후반에 유행한 만요(漫謠)를 맛깔스럽게 불러서 인기를 얻고 있죠. 

원래 ‘서도소리’가 전공인 장효선님은 국립국악원 민속악단에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서도소리의 유지숙명창의 문하에서 소리를 익힘과 동시에, ‘서도연희극’을 공연하면서 내재된 ‘끼’와 ‘연기력’을 인정받고 있지요. 이렇게 각자 활동하던 두 사람이 이번 ‘신광대 판놀음’을 통해서 처음 뭉쳤습니다.

두 사람은 각각 ‘시골 촌뜨기’와 ‘서울 깍쟁이’라는 설정 속에서, 즐겁게 웃음을 이끌어냈습니다. ‘신광대 판놀음’의 마지막부분에서 두 사람은 최근 남북정상회담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와서, ‘평양냉면’과 ‘멀다고 하면 안 되갔구나’ 하는 부분에선 웃음과 페이소스가 겹쳐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두 분의 연기를 보고 어떤 관객은 예전 1960년대와 1970년대에 활동했던 ‘장소팔 - 고춘자’ 콤비의 만담을 보는 것 같다고 칭찬을 해주시더군요. 또 이 공연을 보고 전통연희가 기반이 된 ‘악극’을 보는 것과 같다는 얘기도 많이 하셨죠. 아코디언, 기타 등의 악기를 반주를 하면서 가요, 민요 등 다양한 음악이 ‘복고적’이면서도 오히려 신선한 느낌을 받으셨다고들 하더군요. 

저는 알다시피 전통을 기반으로 해서 공연을 만들어가는 사람이고, 또한 뮤지컬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한국적인 뮤지컬’, ‘전통적인 뮤지컬’을 만들고자 하는 희망에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제가 궁극적으로 만들고자 하는 건, 아주 새로운 것이라기보다는, 1930년대 당시 경성(서울)에 살았던 사람들이 즐겼던 것을, 이 시대의 감성으로 어떻게 되살리느냐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사람들은 윤여주 - 장효선 콤비를 보고 ‘장소팔 - 고춘자’를 얘기했지만, 내겐 또한 ‘서영춘 - 백금녀’를 떠올렸습니다. 윤여주님은 ‘살살이’ 서영춘의 코메디를 보면서 자란 세대도 아닌데, 그런 느낌을 잘 그려내더군요.

이들보다도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가면, ‘신불출 - 윤백단’이 있지요.  신민요 ‘노들강변’의 작사가이기도 한 신불출은, 여성파트너를 달리하면서 ‘만담’을 정착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고, 일종의 아나키스트와 같은 신불출의 만담은 정치풍자, 세태풍자가 밑에 깔려 있지요.

참으로 다행스러운 건, 지금 대한민국에서 ‘연희’를 생각하는 분들이 모두 윗분들을 다 잘고 있어서 다행입니다. 

그런데, 난 지금 대한민국에선 잘 얘기하지 않는 두 명의 만담꾼이 떠올랐습니다. 윤여주는 ‘제 2의 손일평’이요, 장효선은 ‘제 2의 김윤심’입니다. 나이 드신 어르신들은 ‘뚱뚱이와 홀쭉이’하면 양훈 - 양석천 콤비를 연결될 겁니다. 일제강점기에 이런 원조가 있었습니다. 바로 ‘손일평 - 김원호’ 콤비였습니다.

그들은 또한 ‘호박과 오이’로 통했는데, 이건 생긴 모습도 그러하려니와, 그들이 사람을 웃기는 방식도 마치 ‘호박과 오이’처럼 달랐기 때문이죠. 당시 이런 재밌는 이야기는, 만담, 만요, 스케치, 넌센스라는 이름을 불렸고, 이런 공연에선 재담과 노래가 함께했습니다. 

‘일제강점기’하면 어둡게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지요. 우리가 그렇게 비탄에 빠져서 산다는 건 일제의 침략의 피해자임을 자청하는 셈이겠지요. 1930년대 후반에는, 조선에서 ‘희극’은 크게 인기를 끌었습니다. 코미디계통의 극을 잘 쓰기로 유명한 윤백남과 당대 최고의 만담가 신불출의 담우협회(談友協會)를 만들고, 의식있는 만담가들이 함께 했습니다.

당시 동양극장(서대문)의 배우들은 희극좌(喜劇座)를 두어서 ‘조선적인 코메디’를 만드는데 진력했습니다. 이런 전통은 해방 이후, 민요만극(民謠漫劇), 민요만담(民謠漫談), 가요만담(歌謠漫談)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김윤심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여성 혼자서 일인만담을 이끌어낸 주인공입니다. 만소좌(漫笑座)라는 만담단체가 창립(1939년)이 되었을 때, 손일평, 김원호 등과 함께, 김윤심은 경성 최고의 극장 부민관 무대에 함께 오르기도 했습니다. 장효선님도 노래와 연기, 춤과 개그가 모두 가능하기에 반드시 그 시절의 김윤심처럼 큰 역할을 해 낼 수 있을 겁니다. 

전통에 뿌리를 둔 재담(만담)의 전통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존재했습니다. 배뱅이굿의 이은관명창이 생각납니다. 그는 1950년대 박천복이란 만담가와 함께 활동을 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런 흐름은 현재 김뻑국(본명 김진환) 선생에게 이어지고 있죠.

돌이켜보면, 1960년대와 1970년대에 활동했던 가수 김용만과 김상국도 이런 계통의 재주가 많아서 인기를 끌었었지요. 꽤 세월이 지난 후가 되지만, ‘수다맨 강성범’도 만담과 재담의 전통 속에서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가 웃음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보면, 그 연원이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생각합니다. 

윤여주님 그리고 장효선님, 앞으로 자신의 전공과 병행하면서, 꼭 좋은 재담꾼이 되어주세요. 

당신들은 “제 2의 손일평”, “제 2의 김윤심”이자, 앞으로 ‘제 2의 윤여주’, ‘제 2의 장효선’을 만들어낼 수 있는 분들입니다. 두 사람이 주축이 되어서 대한민국에서 ‘한국적이고 전통적인 ’코메디뮤지컬‘이 정착될 날을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