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맨 메이드(Man Made)'-신창호와 국립무용단의 만남
[이근수의 무용평론]'맨 메이드(Man Made)'-신창호와 국립무용단의 만남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18.05.29 19: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최근 들어 회자되기 시작한 용어가 4차 산업혁명이다. 빅 데이터, 인공지능, 로봇공학, 사물인터넷(IoT), 자율운전차량, 3D프린팅 등의 요소를 포괄하는 사회적 변화를 총칭하는 개념이다.

신창호(한예종 교수)가 안무하고 조안무(김미애, 김병조)를 비롯해 24명의 국립무용단원들이 출연한 ‘맨 메이드’(Man Made, 5.10~12, LG 아트센터)는 4차 산업혁명이란 환경 하에서 인간(man)과 로봇(man made)의 갈등과 공존을 소재로 택한 작품이다. 신선하고 매혹적인 재료이지만 개념이 애매하고 포괄적이기에 위험성도 큰 주제였다. 

엷은 벽돌이 촘촘히 쌓여져 3면을 둘러싸고 있는 무대 중앙에 조각상처럼 몸을 뒤튼 자세로  한 남성이 서 있다. 벽돌은 4차 산업혁명의 특징 중 하나를 대표하는 빅데이터(Big Data)를 상징할 것이다. 그 앞에서 미동도 않은 채 서 있던 몸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감아놓은 태엽이 풀리듯 좌우로 팔을 흔들고 허리를 돌리는 두 박자 동작뿐이다.

한 여자, 또 한 남성이 그에게 접근해서 주위를 돌며 동작을 맞춰본다. 사람과 로봇의 차이일까, 이들의 동작은 좀 더 다양하다. 상하의를 모두 흰색으로 통일한 트레이닝 복을 입은 무용수들이 등장한다.

6명씩 네 줄을 이룬 무용수들이 단음절의 음악과 함께 단순한 좌우회전동작을 반복한다. 시골 초등학교 운동회 날 마스게임을 보는 듯하다. 이들이 떠난 자리에 검은 캐주얼차림의 남녀 한 쌍이 등장한다. 무대 위를 전후좌우로 끊임없이 이동하며 그들의 즉흥적인 채팅이 한동안 계속된다.

화제는 인공지능을 장착한 알파고에서 자율운전자동차, 사람들이 번호로 구분되는 세상, 장기대체와 인간의 정체성 등 현대사회의 특징들을 가볍게 터치해간다. 코믹하고 풍자적인 대화들이 때때로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무대가 다시 부산해지며 조명 쇼가 펼쳐지고 벽면엔 고대로부터 현대인류에 이르기까지 진화하는 인간의 형상들이 스쳐지나간다. 군무진이 다시 등장하고 좌우로 열을 맞춘 단조로운 동작들이 반복된다.

무대 전면과 후면에 복제된 듯 닮은꼴의 두 사람이 등장한다. 가상의 공간과 현실의 공간으로 2원화된 무대에서 한 치의 차이도 없이 동일 동작을 복제하는 그들 중 하나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로봇이다.

후면에서 VR 글라스를 쓰고 가상공간을 지휘하던 사람이 앞으로 이동하면서 두 개의 세계는 하나로 합체된다. 가상과 현실, 자연과 인공, 사람과 로봇의 경계는 어디일까. 그들은 공존할 수 있을까, 그 이후는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첫 회 공연과 마지막 회 공연을 보고 난 후 내가 유추해낸 내용은 이 정도에 그친다. 소재의 신선함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다.

이미 시작된 디지털혁명 시대에서 인류가 고민하는 인간의 정체성문제를 신창호는 미니멀리즘 기법과 절제된 음향을 사용하여 부각시켰다. 10여분간 계속된 젊은 남녀의 대화를 통해 물질화되어가는 현대사회의 특징들을 폭넓게 제기한 것도 의미가 있다.

하얀 운동복차림의 무용단원들을 줄 세운 군무는 전체 공연시간의 3분의 2가량을 차지한 작품의 상징적인 부분이다. 국립무용단원들이 보여줄 수 있는 전통적인 춤사위와는 거리가 있는 동작들이다.

‘맨 메이드’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개념은 국립무용단보다는 오히려 신창호가 오랫동안 몸담았던 LDP 무용단과의 협업을 통해서였다면 좀 더 효과적으로 의미가 전달되었을 것이다.

마지막 파트에서 무대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에 초점을 맞추고 10분을 이 부분에 할애한다. 파트 2에서 장시간의 대화를 통해 제기된 다양한 화제들과 연결점을 찾을 수 없어 아쉬운 피날레였다. 첫 회 공연시간(70분)보다 마지막 공연이 10분가량 단축되었는데 중복된 부분을 10분가량 더 압축해도 좋을 것이다.

현대예술사조에서 개념미술(conceptual art)과도 상통하는 개념무용을 시도한 신창호의 모험은 가치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관객들을 감동시키기 위해서는 드라마트루기가 보다 정교해져야하고 4차 산업혁명이나 인공지능(AI), 정보기술( IT) 등에 대한 이해가 심화되어야할 것으로 생각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