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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숙의 문화읽기]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위기
2018년 05월 30일 (수) 10:04:46 ▲성기숙 무용평론가/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sctoday@hanmaio.net
   
▲성기숙 무용평론가/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지난 5월 중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문예위)가 고개를 숙였다. 박근혜 정부에서 저질러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한 대국민 사과다. 벌써 두 번째다. 문예위는 작년 2월 블랙리스트 사태와 관련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대국민 사과를 한 바 있다.

“문화예술 발전을 위한 중추기관으로서 책임을 저버리고 블랙리스트 지원배제라는 참담한 과오를 저지른 것에 대해 현장예술인들과 국민에게 고개 숙여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 예술지원정책 수립에서의 자율성과 독립성 획득이라는 사명을 망각하고 부당한 지시를 양심에 따라 거부하지 못했다. 반헌법적 국가범죄의 공범자가 됐다”

최창주 문예위원장 직무대행은 사과문 낭독이후 나란히 도열해 있던 문예위원들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불행하게도 이를 대하는 현장예술인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문예위 사과의 진정성을 믿을 수 없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회견장에 썩은 사과를 갖다 놨다. 분노 표출의 다름 아니다. 예술인들은 블랙리스트 실무책임자에 대한 사퇴를 요구했다. 그 이튿날 사무처장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자진사태 형식이었고 사표는 곧 수리된 것으로 알려진다.

문예위는 어쩌다가 이렇게 극단적 상황으로까지 내몰리게 됐을까? 주지하다시피 작금의 문예위는 존립이 흔들릴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없지 않다. 엄밀한 의미에서 문예위의 위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우선 문예위의 지난 궤적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궤적
알다시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전신은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하 문예진흥원)이다. 문예진흥원은 한국의 문화예술 진흥을 위한 목적으로 1973년 3월 설립됐다. 문화공보부 산하기관으로 문을 열었다. 대학로에 둥지를 틀고 약 40여년 동안 문화예술의 연구와 창작, 보급 활동을 지원해 왔다.

그동안 문예위는 여러 차례 부침이 있었다. 가장 뚜렷한 변곡점은 민간자율기구로 바뀐 2005년에 이뤄졌다. 이른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대’가 열린 것이다. 관 주도의 문화예술 정책에서 현장예술인이 참여하는 민간자율 지원기구로 거듭났다. 문학을 비롯 미술·음악·무용·연극·전통예술 등 각 장르별 예술위원 11명이 선임됐다. 또 각 분야별로 소위원회를 구성하고 88명의 소위원을 뒀다. 그들에게 예술지원정책 수립과 지원심의를 맡겼다.

제1기 문화예술위원회는 철저하게 현장예술인 중심으로 짜여졌다. 현장예술인들이 주체적으로 문화예술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한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당시 문예위의 역할과 진로에 대해서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었다. 우려한대로 문예위의 항해는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결국 문예위는 출범 2년 만에 암초를 만났다. 2007년 원월드뮤직페스티벌의 지원금을 둘러싸고 내홍을 겪었다. 10억 원이 집행되는 페스티벌에 위원회의 의결을 거치지 않고 집행부가 독단적으로 추진한 것을 전통예술위원이 문제제기한 것이 발단이 됐다. 결국 김병익 초대 위원장이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제도적 안착이 덜된 과도기적 상황에서 파생된 불행한 사건으로 간주된다. 또 장르이기주의로 인한 소모전, 좌우이념에 따른 진영 간 편향지원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제2기 문화예술위원회는 기존 위원회의 한계를 개선하는 차원에서 구성됐다. 당연한 이치다. 현장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반영하는 것 못지않게 문화예술 전반에 대한 균형감각과 정책적 이해능력이 중시되었다. 예술정책의 거시적 방향도 도출됐다. 예술의 사회적 가치 확산과 문예기금 지원사업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쇄신책도 관심을 끌었다. 중앙과 지방 간의 역할 분담이 제기됐고, 단순 배분식 기금지원방식을 개선하자는 목소리도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예위는 위원장이 해임되는 극단적인 상황에 봉착했다. 2008년 문화예술진흥기금을 잘못 운용했다는 이유로 김정헌 위원장이 해임됐다. 당사자는 승복하지 않았고 법적 소송으로 비화되는 등 파장이 컸다. 전·현직 두 명의 위원장이 동시 출근 투쟁을 벌인  ‘한 지붕 두 위원장’ 사태가 초래됐다. 상처투성이의 문예위는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운명적으로 말이다.

이명박 정부는 문화강국을 표방했다. 뒤이은 박근혜 정부는 문화융성을 화두로 내세웠다. 문예위의 역할에서도 장밋빛 희망을 갖게 했다.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고자 몸부림쳤으나 결과는 ‘역시나’ 였다. 이른바 ‘코드인사’ 논란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기억이 새롭다. 더욱이 최순실 국정농단사건으로 인해 대통령이 탄핵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으면서 문예위도 완전히 망가져버렸다. 청와대에서 문체부를 관통해 문예위로 하달된 블랙리스트 배제 명령은 나치시대를 방불케 했다.

현 정부 출범이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을 위한 새 조직이 생겨났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이하 블랙리스트진상조사위원회)다. 민·관 합동으로 꾸려진 한시적 조직이다. 얼마 전 약 10여 개월 동안 진행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그런데 통계 수치가 충격적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자행된 블랙리스트로 인해 피해 입은 문화예술인이 총 8,931명, 단체가 342곳에 달한다고 집계됐다. 감시와 검열을 통해 특정 예술인을 배제하고 차별한 결과다. 블랙리스트진상조사위원회는 ‘민주주의 원리를 파괴하고 예술 표현의 자유와 문화예술인의 권리를 침해’한 범죄 행위로 간주했다. 직권남용과 위법을 저지른 공직자들이 무더기로 조사를 받았다.

문예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뢰밭을 걷는 형국이다. 우선, 일부 관여된 직원들은 블랙리스트진상조사위원회로부터 부역자로 낙인찍혀 퇴진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문화예술 공공기관이 정치권력의 폭압에 여지없이 무너진 결과는 이처럼 치욕적이다.

‘예술이 세상을 바꿉니다’
문예위 출범 초기로 되돌아가 존재의 당위성을 반추해 보자. 2006년 관(官)에서 민(民)으로 전환된 문예위는 슬로건도 바꿨다. ‘예술이 세상을 바꿉니다’라고. 실로 가슴 뛰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문예진흥원에서 문예위로 전환된 이후 정말로 예술이 세상을 바꾸었나? 무엇이 얼마나 바뀌었나? 자조 섞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2005년 문예위 출범 당시, 언론에 게재된 다음 논평은 충분히 재음미의 가치가 있다. “예술위는 ‘예술이 세상을 바꿉니다’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국민 모두가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어야 이 슬로건이 실현될 것이다. 문예위는 이제 창작자들을 위한 나눠 먹기식 지원에서 벗어나 문화소외 계층도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문예진흥기금 지원방식을 바꿔야 한다. 특히 예술위는 현 정부 출범 후 친 정부단체에 대한 확대로 빚어졌던 ‘코드논란’을 뒤풀이해서는 안된다. 문화예술마저 정치 논리에 휘말리는 나라는 비문화적인 국가다”(동아일보, 2005.10.1.)

옳은 말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이후 문예위는 정상화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차츰 걱정과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역시 인사가 문제였다. 작년 12월 신규 문예위 위원명단이 발표됐다. 실망스럽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56개 문화예술단체로 구성된 ‘적폐청산과 문화민주주의를 위한 문화예술대책위원회’는 “문화예술위원회를 전면 개혁하라”라는 이름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예술의 가치와 문화민주주의 원리, 새로운 시대의 열망보다는 과거의 낡은 관습과 자리 만들기의 대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 치명적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공교롭게도 문예위의 인사문제는 여전히 표류 상태다. 현재 문예위원장은 공석이다. 여러 난항 끝에 황현산 문학평론가가 위원장으로 선임됐지만 3개월 만에 중도 하차했다. 건강상의 이유였다. 황 위원장은 우리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지성이기에 기대가 컸다. 현재는 문예위원 중 연장자인 최창주 전통예술위원이 위원장 대행을 맡고 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태로 인한 후유증이 치유되지 않은 상황에서 직무수행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문예위의 인사문제는 비단 위원장 자리에 국한되지 않는다. 예컨대, 무용위원의 경우 지난 2월 임기가 종료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문예위의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한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장 자리에 무용위원이 버젓이 끼어 있었다. 사실이지 문예위는 블랙리스트 이외 일상적으로 저질러지는 불공정 편파심사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근래 2~3년 무용분야의 불공정 편파심사 논란은 역대 최고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임져야할 위치에 있는 무용위원은 임기가 종료됐음에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마디로 볼썽사납다.

문예위의 불공정 편파심사에 대한 비판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블랙리스트 사태에 가려져 있을 뿐이다. 이는 근본적이면서 치명적인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심사위원의 장르 안배가 무시되고 자격미달자가 심사에 참여하는가하면 지원심의 규정위반도 의심된다. 장르불균형 편파지원으로 양극화가 초래되고 무용계 생태계마저 훼손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문예위의 지원심사는 과연 공정성과 객관성·투명성을 제대로 준용하고 있는가? 침묵하는 다수의 목소리에도 귀 기우려야 할 것이다.

작금의 문예위는 조직의 영속성조차 위태롭다. 심지어 블랙리스트진상조사위원회를 중심으로 문예위 해체론도 제기되는 실정이다. 문예위를 공공기관에서 제외하고 국가예술위원회 설립을 제안하고 나선 것이다. 아르코혁신TF 역시 국가예술위원회로의 확대 개편을 요구했다.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서 문예위를 배제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문예위원장을 문체부 장관이 아닌 문예위 내 호선제로 선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국가예술위원회 신설?
과연 국가예술위원회 신설만이 해법일까? 문예위가 상부 권력기관으로부터 독립성·자율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엔 전적으로 동의한다. 예산 및 인사권을 장악하고 수직서열화를 방조하는 비정상적인 조직구조를 타파해야 한다는 주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 측면에서 문체부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국가예술위원회의 설립 필요성은 설득력 있다.

그러나 최상의 해법으로 보긴 어렵다. 국가예술위원회라는 새로운 조직이 만들어진다고 해서 과연 모든 문제들이 해결될까? 문체부의 문화예술 정책기능을 현장예술인이 참여하는 국가예술위원회로 이관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뭐니 뭐니 해도 문체부의 최고 꽃보직은 예술국장으로 귀결된다. 그만큼 문체부에서 문화예술 정책이 차지하는 비중은 예사롭지 않다.

문체부의 문화예술 정책기능의 이관은 문체부 내 혹은 정부 각 부처와의 유기적 협력관계를 등안시한 아마추어적 발상이라는 오해를 사기 십상이다. 현재 문체부는 문화+체육+관광이 함께 동거하는 ‘한 지붕 세 가족’ 체제이다. 여기서 문화예술 정책기능을 떼어낸다면 문화체육관광부는 기존의 간판을 내리고 ‘체육관광부’라는 새 간판으로 바꿔 달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처럼 국가예술위원회 신설에 대한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부정적 여론을 의식한 문체부는 국가예술위원회 신설 대신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한국예술위원회’로 명칭을 변경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또한 넌센스가 아닐 수 없다. 명칭은 해당 기관의 이념과 철학 그리고 가치관을 표상한다. 기관의 명칭변경은 뚜렷한 이유와 당위성을 전제로 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왜 ‘문화’를 삭제하고 굳이 한국예술위원회로 변경하려 하는가? 더럽혀졌다고 매번 새 옷으로 갈아입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로인한 비용부담은 온전히 국민의 몫이 아니던가?

지난 5월 중순 문체부는 새 정부의 문화정책 방향을 담은 ‘문화비전 2030’을 발표했다. ‘사람이 있는 문화, 예술이 있는 삶’이라는 슬로건도 내걸었다. “자율과 분권의 예술행정, 예술 가치 존중의 창작환경 조성, 함께 누리는 예술참여 확대, 예술의 지속가능성 확대” 등 4대 추진 전략이 포함되어 있다.

향후 문예위의 진로는 정부가 발표한 새 문화정책을 바탕으로 장기적 안목에서 긴 호흡으로 재설계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 문화예술계에도 제4차 산업혁명이 화두다. 문화복지 및 문화민주주의에 대한 열망도 그 어느 때보다 크다. 4·17 남북정상회담 성사 등 한반도의 해빙무드 흐름에서 남북예술교류를 위한 미래 청사진도 제시되고 있다. 급변하는 예술환경 속에서 문화예술 정책의 창조적 가치 창출에 전력할 때이다.

문예위의 혁신, 새 집 짓기
문예위는 이른바 ‘문화권력’의 상징으로 비춰진다. 예술지원기금을 다루기 때문이다. 한 해 약 1천 억 원에 달하는 지원금을 쥐고 배분하는 권한을 행사한다. 해마다 거액의 지원금이 현장예술인과 문화예술단체에 지원된다. 문예위 지원금으로 각 예술분야의 창작수준이 향상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더불어 국민의 문화향유 기회도 급증했다. 유망예술가들의 해외진출을 지원해 한류를 선도했다는 평가도 있다. 척박한 토양에서 대한민국이 문화강국으로 발돋움하는데 문예위는 적지 않은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현재 문예위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존립자체가 위협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예위는 작금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무엇보다 민간자율기구로 출범한 본래의 ‘본디 그 자리’로 회귀해야 한다. 외부의 정치적 압박으로부터 벗어나 순수 문화예술 진흥기구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 독립성과 자율성이 얼마나 철저히 보장되느냐가 관건이다. 문체부의 간섭과 개입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

문예위 스스로의 노력도 절실하다. 현 정부가 국정철학으로 표방한 ‘공정·평등·정의’를 구현함으로서 본래의 권위를 되찾아야 한다. 우선 조직의 과감한 혁신이 요구된다. 문예위 스스로 깊은 성찰과 무거운 책임감을 주춧돌로 새 집을 짓는다는 각오로서 임해야 할 것이다. 문화예술을 풍요롭게 꽃피우는 향기 가득한 집말이다. 그것이 조직이 살 길이다. 덧붙여 말하건대, 시대의 흐름에 역류(逆流)하는 조직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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