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영원한 사랑을 꿈꾼다, 하지만......’
‘누구나 영원한 사랑을 꿈꾼다, 하지만......’
  • 편보경 기자
  • 승인 2008.12.13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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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이별의 예리한 해부 뮤지컬 ‘The last 5 years’

여자가 첫 키스에 황홀해 하며 다음 데이트를 기다릴 때 남자는 우린 이미 너무 멀리 왔고 널 구할 수도 없었다고 말하는 것을 동일한 무대에서 본다.

뮤지컬 ‘The last 5 years’는 여자가 이별의 아픈 시간부터 처음 사랑을 시작했던 시간까지로 거슬러 가며 이야기를 들려주고, 남자는 첫 만남의 두근댔던 순간부터 파혼에 이르게 된 상황까지를 말하는 독특한 구성으로 사랑과 이별을 다룬다.

모두 14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의 대본은 처음과 끝이 연결되며 2장 다음에 13장, 3장 다음에 12장을 연결시켜야 한 스토리가 완성되는 구성으로 감상의 재미를 더한다.

이 뮤지컬은 단 두 명의 배우가 출연해 꾸미는 작은 규모로 진행되지만 이런 독특한 구성으로 인해 밋밋하게 흐르지 않는다. 더욱이 남녀간 사랑과 이별이라는 진부할 수 있는 소재를 다루는 내용에 있어서도 상당한 몰입을 이끌어 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흔히 사랑과 이별을 다룬다면 ‘부부클리닉-사랑과 전쟁’류의 선정적인 구성을 답습하는 경우가 많다. 자극적인 갈등과 그것이 표출되는 부분에 포커스를 맞추기가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갈등과 그 표출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 사실을 있게 한 ‘팩트’에 대해서는 정작 차분한 ‘되돌아보기’가 빠져 있기 쉽다. 하지만 이 뮤지컬은 정작 사랑이라는 주제에 관심 있어 하는 관객들에게 필요한  ‘팩트’, 즉 갈등을 결국 소통의 부재와 이해의 결여라는 공동체의 허물어짐에 대해 꼼꼼한 보여주기에 눈길을 주고 있다.

이 뮤지컬은 사랑과 이별, 그리고 이런 과정을 겪을 수 밖에 없는 갈등을 조명하는 동시에, 두 사람이 갈등을 겪는 원인을 잘 보여준다. 아내로서의 평범한 삶과 자아의 실현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주인공과, 지적이고 성공한 소설가이지만 아내와의 갈등으로 고민하는 남자주인공을 통해 사랑, 이별과 서로 독립된 인격체 두 사람이 모여 부부를 구성할 때 균형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한다. 이 과정에서 대화와 이해가 충분했다면 주인공들은 ‘The last 5 years’를 겪게 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짝이 없는 관객에게는 “많은 대화가 있었더라면 그 때 그 사람과 헤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혹은 지금 부부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지금 우리에게는 어떤 이해과정이 필요할까”를 곰곰 생각해 보게 한다.

이런 탄탄한 구성도 돋보이지만 원작이 2002년 3월 뉴욕의 브로드웨이에 올려졌을 때, 언론의 호평과 함께 권위 있는 Drama Desk Awards에도 7개 부문 노미네이트 되어 작곡상과 작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특히 좋은 원작의 힘도 느껴지지만 이를 우리 무대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의 전달력도 훌륭하다.
뮤지컬 배우 배혜선은 한 남자의 아내로 평범하고 진부하게 살아가는 삶과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 사이에서 갈등하는 캐시의 모습을 잘 그려냈다. 갑작스런 몰입이 어려운 첫 장면에서부터 남편 제이미가 결혼반지까지 버리고 떠나버린 빈 방에서 ‘난 울고 있는데’를 허망한 모습으로 노래해 베테랑다운 면모를 과시했는가 하면, 극중 배우가 되기 위해 여기저기 오디션을 보는 모습을 코믹하게 담아내 사랑스러운 캐시의 면모를 돋보이게 했다.

이건명 또한 소설가 제이미 역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캐시가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독려하는 6번 장면 ‘슈뮤엘 노래’에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아내를 위해 손수 작성한 배우 오디션 리스트를 준비하는 자상한 남편으로서의 모습과 캐시와의 관계를 좋게 이어가려는 노력에 지쳐 결국은 냉정하게 뒤돌아서는 모습을 오가며 갈등 속에서 상처받아 변하는 남편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또한 이동벽면과 공간을 인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소품들이 이용된 절제미가 돋보이는 무대장치는 오히려 음악과 배우들의 연기에 몰입하게 한다.

누구나 영원한 사람을 꿈꾸지만 사랑은 어김없이 변하고 만다. 무대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사랑의 모습은 때론 빙그레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게 하기도, 또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게도 한다. 사랑의 버팀목이 되는 ‘이해’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작품으로 연말, 연인이나 배우자와 볼 만한 작품이다.

뮤지컬 ‘The last 5 years’ 소개
뮤지컬 ‘The last 5 years’는 2002년 3월 뉴욕의 브로드웨이에 올려져 큰 사랑을 받았던 작품으로 뮤지컬 ‘Parade’(1998)로 토니상을 수상한, 뮤지컬 음악의 천재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Jason Robert Brown)이 음악과 극본을 맡고 ,연출을 브로드웨이 연출의 거목인 해롤드 프린스(Harold Prince)의 딸 데이시 프린스 (Daisy Prince) 가 맡아 큰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다. 언론의 호평과 함께 권위 있는 Drama Desk Awards에도 7개 부문 노미네이트 되어 작곡상과 작사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두 남녀의 사랑과 결혼 그리고 이별이야기를 아주 독특한 구성으로 보여주는 작품으로 우리나라에선 지난 2003년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성기윤, 이혜경 주연으로 초연되었다. 현재 배혜선, 김아선, 이건명, 양준모 주연으로 충무아트홀에서 공연중이며 내년 2월 22일까지 계속된다.  

편보경 기자 jasper@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