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숙의 문화읽기]LA 한인무용사회의 풍경
[성기숙의 문화읽기]LA 한인무용사회의 풍경
  • 성기숙 무용평론가/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 승인 2018.06.28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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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숙 무용평론가/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그 어느 때보다 박수소리가 우렁찼다. 단순한 환호를 넘어 애정과 정감이 넘치는 박수였다. 120석 정원인 객석은 공연 1시간 전부터 관객들로 넘쳐났다.

시작 무렵에는 통로까지 임시석이 마련되어 200여석으로 늘린 객석이 꽉 들어찼다. 미처 입장하지 못한 관객들은 공연장 로비에 마련된 대형화면에 의존해야 했다. 실로 보기 드문 풍경이 연출됐단다.

지난 6월 15일 LA한국문화원 아리홀에서 개최된 ‘동방의 불꽃, 한국의 춤문화유산(The Fire of the East, Korean Dance Heritage)’ 은 공연 전부터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콘셉트가 주효했기 때문이다. 우리 춤의 시조 한성준(韓成俊 1874~1941) 선생의 예맥을 잇는 우리시대 최고의 중견무용가들이 펼치는 고품격 무대로서, 한성준 춤의 본격 해외무대 진출을 염두에 두고 기획됐다.

그동안 LA무대에 소개된 적이 없는 중견무용가 일곱 명이 무대를 뜨겁게 달궜다. 국가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이수자인 윤덕경 서원대 교수를 비롯 배상복 전 제주도립무용단 예술감독, 윤미라 경희대 교수, 김충한 전북문화관광재단 예술감독, 김용철 부산시립무용단 예술감독, 홍지영 대전연정시립국악원 안무자, 이애리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전수조교 등이 참여한 무대였다.

우선, 1930년대 후반 한성준이 나라의 태평성대를 주제로 왕과 왕비의 2인무로 창안한 ‘태평무’가 나란히 선보였다. 강선영류 태평무를 선보인 윤덕경은 중후하고 장엄한 자태로 무대의 막을 열었다. 홍지영은 시종 단아하고 정갈한 자태로 한영숙류 태평무의 깊은 멋을 선사했다. 한성준을 시조로 후속세대로 이어지는 ‘태평무’의 각기 다른 심미성을 한자리에서 비교해보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동안의 진쇠춤을 신무용으로 재해석한 윤미라의 춤도 흥미를 끌었다. 김용철은 불교제의식에서 추어진 ‘바라춤’으로 이색적인 무대를 꾸몄다. 배상복의 ‘신명’은 흥과 멋, 신명을 자양분으로 우리 춤의 맺고 풀고, 얼르는 이른바 삼단논법의 극치를 절묘하게 구현해 갈채를 받았다.

우리 춤은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의 이행기, 서구식 극장무대의 등장으로 미학적 변혁기를 거쳤다. 마당이나 뜰에서 추어졌던 춤들이 극장무대로 진입하면서 예술적으로 승화되었다. 그 중심에 한성준이 존재한다. 그는 한마디로 한국무용사의 패러다임을 바꾼 위대한 인물로 손색이 없다.

어디 그뿐인가. 한성준은 일제강점기 전국에 산재한 민족 고유의 춤과 가락을 수집하여 약 100여종에 달하는 민속춤을 집대성하고 양식화하는데 일생을 바쳤다. 그의 문하에서 기라성 같은 전통춤꾼들이 배출됐다. 일제강점기 한류 열풍을 선도한 최승희·조택원이 세계무대에서 명성을 알린 것 역시 한성준의 영향이 컸다.

▲지난 15일  LA한국문화원 아리홀에서 개최된 “동방의 불꽃, 한국의 춤문화유산”(LA한국문화원·한국춤문화유산기념사업회 공동주최) 공연을 마치고 기념촬영. 앞줄 왼쪽부터 강대승 미주예총회장, 이병임 전 미주예총회장, 김낙중 LA한국문화원장, 뒷줄 왼쪽부터 김용철 부산시립무용단 예술감독, 이애리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전수조교, 윤미라 경희대 교수, 윤덕경 서원대 교수, 배상복 전 제주도립무용단 예술감독, 김충한 전북문화관광재단 예술감독, 이현숙 국가무형문화재 제49호 송파산대놀이 이수자, 구자훈 전 국립현대무용단 이사장,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홍지영 대전시립연정국악원 안무자.(사진제공=연낙재)

특히, 신무용의 대가 조택원은 중고제 전통예인들의 조력으로 세계무대를 누볐다. 그는 중고제 국악명인 심상건의 반주음악에 맞춰 1949년 뉴욕 자연사박물관에서 ‘소고춤’을  초연해 극찬받았다. 김충한이 선보인 ‘소고춤’은 ‘전통의 현대화’를 표상하는 대표작으로 관객의 시선을 압도했다. 서양음악 선율에 맞춰 종횡무진 무대를 누빈 그의 춤은 신기에 가까웠다.

이애리의 중고제 승무도 주목을 끌었다. 중고제 특유의 소박하고 단아한 춤사위가 돋보인 무대였다. 이매방·한영숙류 승무에 익숙한 관객들은 단순하고 소박한 중고제 승무의 색다른 미감에 매료되었다.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전수조교인 이애리는 공연 전날 현지인을 대상으로 승무 워크숍을 진행하여 색다른 체험의 기회를 제공했다.

이번 공연이 표방한 키워드는 세 가지다. 우선, 충청도를 기반으로 한 한성준·심정순(家) 중고제 전통가무악의 문화적 우수성을 지구촌에 확산시키겠다는 의도가 담겨있다. 둘째, 한국을 대표하는 중견무용가들이 펼치는 고품격 전통춤 무대를 지향했다. 셋째, 공연과 함께 학술담론을 곁들인 렉쳐프그램을 표방했다. 춤의 창작배경과 전승맥락 및 미학적 특성 등 심도 있는 해설은 한국의 춤문화유산을 보다 쉽게 이해하도록 도왔다.

공연장을 찾은 관객층은 전문무용인을 비롯 한인 애호가들이 대부분이었다. 한국문화에 관심 있는 서양인들도 더러 눈에 띄었다. 미주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이하 미주예총) 강대승 회장은 공연날은 물론이고 전날 진행된 리허설에도 방문하는 등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1980년대 중반 창립된 미주예총은 지난 30여년의 활동을 통해 한국의 전통예술이 한인사회에 뿌리내리는데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한국과 미주 한인무용사회를 잇는 브릿지 역할에도 적잖이 기여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동안 무용평론가 이병임 회장이 미주예총을 주도해왔다. 그분의 헌신과 노고로 미주 한인예술인들의 활동발판이 튼실해졌고 아울러 한국 전통예술이 보급, 확산될 수 있었다. 작년에 강대승 국가무형문화재 제34호 강령탈춤 해외명예전승자가 새 미주예총 회장직에 올랐다.

강대승 신임회장은 제도교육 전공자로서 수십 년간 한국의 국·시립무용단에서 주요무용수로 활동한 전문예술인이다. 특히 1985년 두레패를 창단하여 전세계를 순회하며 한국의 전통문화를 알리는데 큰 공을 세웠다. LA 한인타운에서 전통예술전승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한인무용사회의 대표적 무용지도자로 입지를 굳혔다.

며칠간 지켜본 LA한인무용사회의 풍경은 사뭇 흥미로웠다. 공교롭게도 국내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자본주의 천국답게 비즈니스형(型) 무용가들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상대적으로 전문무용인들의 활동공간은 다소 위축된 듯 보였다. 그런 가운데 한성준-한영숙으로 이어지는 정통 춤맥을 잇는 전문예인형(型) 김응화의 활동은 가히 독보적이다. 40여년 전 LA에 터 잡은 그는 미주 한국무용협회장을 맡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의 해외명예전승자 김응화·김경희의 존재는 그 자체로 LA한인무용사회의 큰 버팀목이 아닐까 싶다. LA한인무용사회의 자존감을 높여줬던 인물로 임관규를 빼놓을 수 없다. 아티스트형(型) 춤꾼으로 활약한 그는 17년간의 미국활동을 청산하고 2년 전 한국으로 귀환했다. 그가 LA한인무용사회에 뿌려놓은 우리 춤의 품격과 격조가 시들지 않고 하나의 줄기로 자라나고 있음은 퍽 다행스럽다.

이번 공연은 LA한인무용사회를 하나로 묶은 가교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세대와 계파 및 이해관계를 떠나 LA에 둥지를 튼 거의 모든 무용인들이 공연장을 찾았다는 후문이다. 포용과 화합의 장이 되었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 값지고 소중한 결실이다. 그 중심에 LA한국문화원이 있음은 두말 할 나위없다.

LA한국문화원은 한류확산의 전진기지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한국 전통예술의 보급과 확산의 메카로서도 그 존재감이 뚜렷하다. 특히, 한국 전통공연예술을 소개하는 아리프로젝트를 비롯 현 김낙중 문화원장이 신설한 전통무형문화전수워크숍은 문화원 고유의 정체성이 반영된 매우 유의미한 프로그램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일찍이 LA는 세계적인 무용가로 이름을 날린 최승희·조택원이 거쳐간 땅이다. 일제강점기 국권을 상실한 굴욕적 상황에서 오직 춤으로 한류열풍을 선도했던 유서 깊은 지역으로 각인돼 있다. 그들이 남긴 춤의 유산뿐만 아니라 전문무용가로서 견지한 치열한 예술정신을 되새겨볼 때이다. LA한인무용사회가 건강한 토양 속에서 한 단계 더 비상하기를 기대해 본다.

 

성기숙(무용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사진설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