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정의 발레인사이트] 초대 국립발레단장의 꿈-임성남
[김순정의 발레인사이트] 초대 국립발레단장의 꿈-임성남
  • 김순정 성신여대 무용예술학과 교수
  • 승인 2018.06.29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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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순정 성신여대 무용예술학과 교수

임성남(1929-2002)은 무용가, 교육자, 안무가로서 한국 발레를 상징하는 존재다. 올해 5월 27일은 그의 17주기였다. 지난 5월 28일 열린, 사단법인 한국발레협회가 주최하는 2018 서울발레콩쿨에서 초등부 최고점수를 받은 남.녀 학생들에게는 임성남 상과 소정의 상금이 수여되었다.

어린 세대의 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선생님의 정신을 이어받아 가장 어린 발레유망주들에게 임성남상을 주는 것이다. 올해의 수상자는 송지윤(서울신동초6)과 방수혁(서울대현초6)이다. 부인 김행옥 여사가 어린 두 무용수에게 임성남 상을 수여하는 장면을 보며, 임성남 초대 국립발레단장을 다시금 떠올리게 되었다.

임성남은 한동인 발레단원으로 활동하던 1950년 6월 24일 안데르센 동화를 발레화한 <인어공주>에서 솔로와 2인무를 추었는데 관객들의 열광적인 박수갈채에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고 했다. 그러나 다음 날 전쟁이 일어나 공연은 중단되고, 한동안 방황하던 중 지인의 도움으로 일본가는 배에 오를 수 있었다.

임성남은 동경 핫도리 시마다발레단에서 러시아 정통발레를 습득하며 단기간에 주목받는 주역무용수로서 화려한 활동을 시작했다. 일본에서 예술가로서 안정된 길이 보장되었으나 주위의 기대와 만류를 뿌리치고 1954년 5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임성남은 변변한 후원이나 지원도 없는 가운데 발레단 활동의 혁신을 위하여 임성남발레단을 만들었고 클래식과 창작발레작품들을 공연했다. 1961년 공식화한 ‘서울발레씨어터’ 공연에는 남성무용수가 14명이나 등장했다는 기록이 있으니 놀라울 뿐이다.

임성남은 초대국립무용단장을 1962년부터 역임했고 발레단으로 독립한 것은 1972년, 이후로 1992년까지 총 30년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겸 단장을 역임하며 한국의 발레 발전을 이끌었다.

임성남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과정의 국립발레학교 설립을 외쳤으나 꿈은 이루지 못했다. 발레에 뛰어난 재능이 있는 어린이들이 가난한 환경에서도 양질의 발레교육을 받을 수 있기 위해서, 장학금을 받으며 다닐 수 있는 국립발레학교는 반드시 필요하다. 시간이 많이 흘러 전국에는 많은 국, 사립 예술학교들이 탄생했으니 어느 정도 조건은 마련된 듯 보인다.

그러나 대부분의 예술 중, 고등학교의 교육목표는 직업무용수가 되는 것보다 유명대학 진학에 맞춰져 있다. 직업발레단의 수는 한정되어 있고 대학이 많다는 것도 한 이유다. 대안으로 예술전문교육기관인 한예종이 생겼지만 대학 과정을 가르친다.

부설로 초, 중, 고 유망주를 위한 실기전문 영재원이 있고 수업료는 전액 면제다. 취지는 좋지만 방과 후에 별도 수업을 하므로, 학생들은 학교에 다니면서 영재원도 병행해야만 한다. 과도한 수업량으로 인해 제대로 잠을 못자 만성적인 수면부족, 학업태만, 영양상태 불균형을 보이는 학생도 있다.

마린스키 발레단 솔리스트였던 유지연은 은퇴 후 귀국하여 유니버설발레단의 부예술감독이 되었고, 스웨덴왕립발레단 전은선도 은퇴 후 서울발레시어터 지도위원으로 일하는 등 외국에서 활동한 40대 인재들은 후진양성을 위해 자신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아낌없이 쏟아 붓고 있다. 선순환적인 세대교체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례이며,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해외에서 뛰어난 활동을 했고, 우수한 경력을 지닌 인재들이 국내에서 일할 자리는 충분하지 않다. 국공립발레단이라고는 국립발레단과 광주시립발레단 뿐이다. 국립발레단은 국고지원을 받는 단체이지만 재단법인이라 은퇴 후 연금 등 제반 복지제도는 아직 부족한 상태다. 그렇다면 공공발레단은 광주시립발레단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고령자고용촉진법상 근로자의 정년이 60세로 연장됨에 따라 지난해부터 시립예술단의 정년은 55세에서 60세로 연장되었다. 이전에도 단원의 고령화와 젊은 세대 수급의 불균형 등이 문제가 되어왔다. 외국의 무용단원 은퇴는 주로 40대 초반에 이루어진다.

대안으로 나온 것이 명예퇴직제도였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지방자치단체 예술단 중에서 시행 첫 해인 작년 광주시립발레단원 한 명이 처음으로 명예퇴직을 했고 올해 대전시립무용단원 한 명도 명예퇴직을 했다.

반면 한국무용을 전문으로 하는 국공립단체는 지역별로 대단히 다양하게 존재한다. 국립무용단, 국립국악원무용단, 경기도립무용단, 강원도립무용단, 제주도립무용단, 전북도립무용단, 서울시무용단, 인천시립무용단, 의정부시립무용단, 포천시립무용단, 천안시립무용단, 목포시립무용단, 울산시립무용단, 부산시립무용단, 청주시립무용단, 창원시립무용단, 구미시립무용단, 진도국악원무용단, 정동극장무용단, 한국의 집 무용단 등.

예술가들이 협업을 통해 좋은 작품을 생산해 내려면, 안정된 환경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발레 역시 공공발레단 설립이 우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 안목으로 수준 높은 작품을 공연할 수 있는 지역의 공공발레단이 다수 만들어지면 외국에 나가 활동하고 있는 세계적 수준의 한국인무용수들도 자주 불러들일 수 있게 되며, 국내외 극장, 예술가 간의 교류도 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크고 작은 도시마다 특색 있는 발레단들을 지닌 유럽의 선례도 있다. 그동안 공공발레단 설립 시도가 몇 번 있었으나 모두 불발로 그쳤다. 그렇다면 매년 막대한 국고로 열리는 단발의 행사성 공연이나 축제, 국제콩쿨 등에 들어가는 비용을 공공발레단 설립재원으로 바꾸는 것도 고려해 볼만 하다.

젊은 세대 무용수들이 예술학교 졸업 후 일정기간 발레단에 들어가 안정된 조건으로 춤과 작품에 매진할 수 있고, 은퇴 후에는 발레단의 예술감독이나 지도위원, 교사, 레파토리 전수자로 일하게 되는 선순환이 만들어질 수 있다.

지역민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운영하며 자연스럽게 예술이 일상 속으로 스며들게 만들 수도 있다. 임성남 선생의 꿈은 이것에 가장 가깝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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