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뮤지컬레터] 국립창극단의 김성녀 예술감독에게
[윤중강의 뮤지컬레터] 국립창극단의 김성녀 예술감독에게
  • 윤중강/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18.06.29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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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중강 / 평론가, 연출가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이 유럽에서 호평을 받았다지요. 김성녀 예술감독이 국립창극단을 맡은 후, 무대에 올린 여러 작품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더군요. 음악극으로서의 창극이 갖는 많은 가능성을 확인시켜준 김성녀감독님의 안목에 박수를 보냅니다.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은 옹켄센이 연출했지요. 헬레네 역할의 김준수는 작품을 본 사람이면 누구나 얘기하더군요. 여장(女裝) 연기 혹은 여성연기가 매우 신비롭고 고혹적입니다.

무대에서 성(gender)이 바뀌는 것은, 동양연극의 매력중의 하나죠. 중국의 경극(京劇)이 그렇고, 일본의 가부키(歌舞技)는 남성이 여성을 연기하죠. 일본의 다카라즈카(宝塚)에선 여성이 남성을 연기해서, 지금도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우리도 한 때 여성국극(女性國劇)이란 것이 있었죠. 김성녀감독은 아주 잘 알 겁니다. 여성국극에서 ‘눈물의 여왕’으로 통했던 박옥진(1935~2004)이 어머니, 여성국극에서 남성 역할로 큰 인기를 박귀희(1921~1993)가 스승이니까요. 박귀희는 여성국극뿐 아니라, 창극에서도 이도령과 같은 남성역할을 맡아서 작품을 크게 살렸습니다. 영화 ‘선화공주’(1957)에서도 박귀희는 서동 역할을 맡아서 남성연기를 펼쳤습니다.

여성국극이 탄생된 지 꼭 70주년이 됩니다. 옥중화(1948)를 시작으로 해서, ‘해님달님’(1949)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여성국극시대’가 열렸습니다. 당시엔 ‘민족오페라’라고 극찬을 했고, 한국을 방문한 외국사절에게도 여성국극을 가장 먼저 보여주던 기록들이 남아있습니다.

1950년대의 여성국극은 가부장제도 속에서 살았던 여성들의 욕망의 해방구역할을 했습니다. 여성국극의 남자주인공은 모두 ‘여성이 바라는 남성상’을 그대로 보여주었죠. 배려심이 많고, 여성을 위해서 희생을 할 줄 아는 남성이었습니다. 여성국극의 새로운 부활을 응원합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한다면, 이제는 오히려 ‘남성국극’ 혹은 ‘남성창극’을 필요로 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2018년 올해는, ‘여성국극의 70년’이자, ‘남성창극의 원년’이 되길 바랍니다. 남성이 연기하는 여성 역할은 어떤 걸 의미할까요? 과거에는 때론 그저 웃음거리를 위해서 등장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창극무대에서 ‘젠더’를 바꿔보는 것 또한 ‘연극적 재미’를 주는 것이겠지만, 또한 그 안에서 ‘사회적 의미’를 던질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양성평등을 지향하는 사회에서, 상대의 성(젠더)에 대한 바른 이해는 분명 필요할 겁니다. 이런 것을 통해서 바람직한 여러 형태의 성(젠더)이 공존할 수 있을 겁니다. ‘남성창극’이 그런 역할을 해 주리라 생각됩니다.

김성녀 예술감독님! 국립창극단의 무대에서 남성이 여성을, 여성이 남성을 연기하는 작품을 만들어주세요. 이런 작품을 가장 잘 만들어낼 분은 당신입니다. 연극 ‘햄릿’(2016)에서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배우가 다 출연했는데, 그 중에서 당신의 호레이쇼 연기를 잊지 못합니다. 이 역할을 비중이 크지 않은데, 실제 남성이 했다면, 참 밋밋했을 겁니다. 하지만 당신은 ‘오버하지 않고’ ‘절제력 있게’ 극의 흐름(호흡)을 잘 연결해주었습니다.

국립창극단의 배우들은 소리뿐만 아니라, 연기에서도 출중하다고 생각됩니다. 벌써부터 유태평양, 이광복, 김준수, 박성우, 최호성 등이 그려낼 여성연기가 궁금합니다. 분명 저마다 다른 여성의 모습을 매력적으로 그려낼 겁니다. ‘남성창극’에 대한 잠재적 관객은 충분하다고 생각되며, 더 많은 화제를 낳게 될 겁니다.

얼마 전 ‘북촌우리음악축제’의 스페셜 스테이지(6. 22. 은덕문화원)의 두 주인공 이희문과 김준수를 통해서, 그 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이희문은 무용극 ‘바리’를 시작으로 해서, 자신안에 존재하는 여성성을 매우 솔직하고 활기있게 표현했죠. ‘마돈나’를 꿈꿨던 시대를 얘기하는데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했습니다.

김준수는 이번에 창극에서 여성 역할을 통해서 배우로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했으며, 연출가 옹켄센이 자신에게 “앞으로 여성역할을 특화해서, 성공하길 바란다.”란 얘기를 전해주었습니다. 허윤정 예술감독이 진행한 아티스트 토크에선, ‘남성배우의 여성역할’ 혹은 ‘남성 속 여성성(女性性)’이 주제가 되었습니다.

과거 남성의 여성(적) 역할이 그저 웃음거리가 되거나, 때론 위화감을 주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이제는 전혀 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호감이 더해지고 때로는 여성역할을 하는 남성배우를 통해서 때론 동병상련(同病相憐)과 같은 동지애(同志愛)를 드러내는 모습까지 읽을 수 있었습니다.

김성녀예술감독님! ‘남성배우 속의 여성성’, 아울러 ‘여성배우 속의 남성성’을 잘 끄집어내는 작품을 만들어주세요. 이 글은 전자에 집중하지만, 후자에도 큰 관심을 둘 필요가 있지요. 이런 작품은 창극을 또 다른 방향으로 꽃을 피우고, 우리 사회를 보다 열린 사회로 만드는데 기여하리라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 더 원하는 것이 있다면, 이런 작품에 김성녀감독께서 한 장면에 카메오처럼 츨연해 주세요. 당신은 신 스틸러가 될 것이고, 관객들을 이를 통해서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경험하게 될 겁니다. 김성녀감독이 이끄는 국립창극단이, 성 역할의 관습적 경계를 넘어선 작품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젠더적 공존’과 ‘인간적 개성’을 구축하는데 큰 기여를 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국립창극단의 남성창극!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