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숙의 문화읽기] 타고르 ‘동방의 등불’ 을 재음미 하다
[성기숙의 문화읽기] 타고르 ‘동방의 등불’ 을 재음미 하다
  • 성기숙 무용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 승인 2018.07.19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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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숙 무용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요즈음 인도가 대세다. 정부가 신남방정책의 구현 대상국가로 인도를 낙점했기 때문이다. 인도는 세계 최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다. 또 핵으로 무장된 몇 안되는 나라다. 인구가 무려 13억 명에 달한다. 더구나 전체인구 중 44%가 24세라는 사실은 놀랍다.

양질의 풍부한 노동력을 확보하고 있음은 다국적 경쟁구도에서 큰 매력이 아닐 수 없다. 또 인도는 IT강국으로도 손꼽힌다. 인도 자본시장의 성장 잠재력은 이처럼 무궁무진하다. 미래 먹거리를 고민하는 문재인 대통령이 인도로 간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아닐까.

알다시피 인도는 약 200년간 영국의 식민지였다. 36년간 일본의 지배를 받은 우리와 같은 처지에 놓여져 있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 주 인도방문 첫 행선지로 뉴델리에 위치한 간디기념관을 찾았다. 대영제국의 마지막 인도 총독 루이스 마운트배튼 백작은 “역사는 간디를 예수, 부처와 동급으로 간주할 것”이라는 어록을 남겼다. 인도정부는 간디를 국가브랜드로 관리할 정도로 지극정성이다.

시성(詩聖) 라빈드라나드 타고르는 간디에게 ‘마하트마(Mahatma 위대한 영혼)’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간디는 인도를 넘어 세계적인 위인으로 존경받는다. 그는 무저항, 비폭력운동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필자는 무저항, 비폭력운동의 표상인 20세기의 간디사상이 21세기 한국의 ‘촛불혁명’으로 승화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라하르트 반 뒬멘이 주창한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란 말은 이런 상황을 지적하기에 적절하지 않을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인도와 한국 사이의 교류 양상은 매우 다채롭다. 특히 무용사에서 포착되는 교류 양상은 더욱 흥미롭다. 영국식민지 지배하의 인도에서 우다이 상카르와 같은 세계적인 무용가가 존재했음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상층계급 출신인 우다이 상카르는 화가가 되기 위해 1920년 영국 유학길에 오른다. 주로 귀족 자제들이 다닌 왕립미술대학에 입학한다. 런던 유학시절 세기의 발레리나 안나 파블로바를 만나면서 그의 운명이 바뀐다. 그는 안나파블로바무용단의 일원으로 유럽, 미국 등 순회공연을 다녔다. 이 과정에서 화가의 꿈을 접고 무용가로 선회한다. 우다이 상카르는 안나 파블로바에게 고전발레를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다고 간청하나 그 자리에서 거절당한다.

대신 안나 파블로바는 “너희 나라로 돌아가 인도의 전통춤을 배우라”고 조언한다. 인도로 귀환한 우다이 상카르는 전국의 사원을 찾아다니며 자국의 춤과 음악을 체득한다.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의상과 악기 등을 수집하고 연구하여 새로운 가치 창출을 모색한다. 인도 전통예술에서 창작의 원천을 발견하고 다시 제국의 심장 런던으로 향한다. 이후 런던을 교두보로 유럽, 미국에 진출하여 세계적인 무용가로 우뚝 선다.

우다이 상카르 이전 인도에서 춤이란, 이른바 시바신이 창조한 것으로서 종교적 제의로 간주되었다. 때문에 대부분의 춤꾼은 승려였다. 20세기 초반에 이르러 인도의 춤은 비로소 미몽(迷夢)에서 깨어나기 시작한다. 소수의 지적 엘리트들의 관심과 조력이 컸다. 그 중에 아시아인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라빈드라나드 타고르가 있었다. 그는 무용극 집필을 통해 인도 고전춤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식민지적 상황에서 춤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역설한다. 타고르는 우다이 상카르에게 “춤으로 이 음울한 나라에 봄의 정기가 되살아나도록 해 달라”고 주문한다.

우다이 상카르는 차고 넘치는 업적으로 화답했다. 그는 인도 고전춤을 단지 보존 계승하는데 머물지 않았다. 자신이 학습한 서양 춤의 메소드와 구성원리를 토대로 인도 전통춤을 근대화하고 세계화하는 데 앞장섰다. 20세기 인도를 빛낸 최고의 예술가로 명성을 날렸다. 마하트마 간디는 ‘인도를 상카르의 것’이라고 규정했다. 이처럼 인도에서 우다이 상카르의 존재는 실로 기념비적이다.

인도에 우다이 상카르가 있다면 우리에겐 최승희·조택원이 있다. 최승희·조택원은 일제강점기 신무용가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식민지에서 태어난 그들의 예술적 여정 역시 우다이 상카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최승희는 1926년 경성공회당에서 열린 일본 근대무용의 선구자 이시이 바쿠의 공연을 관람하고 문화적 충격에 휩싸인다. 그 길로 그의 문하생이 되기 위해 현해탄을 건너갔다. 그 이듬해 조택원 역시 그의 제자로 입문하기 위해 제국의 수도 도쿄로 향했다. 오로지 춤을 배우겠다는 일념 하나로 제국의 심장으로 담대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최승희·조택원은 서양의 모던댄스를 배웠지만 조선의 전통으로 회귀했다. 그들에게 창작의 자양분을 제공한 이는 근대 전통무악의 거장 한성준이었다. 서양춤을 배운 최승희·조택원이 한성준에게 입문한 것은 스승 이시이 바쿠의 영향이 컸다. 그는 예술적 행로에서 방황하는 제자들에게 조선의 전통춤에서 해답을 찾으라고 권유했다. 우다이 상카르에게 자국의 전통에 관심가질 것을 주문한 안나 파블로바와 같은 맥락에서 조언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주지하다시피 최승희·조택원은 한성준에게 전통춤을 체득하고 이를 자양분 삼아 세계무대로 진출하여 성공을 거둔다. 20세기 한국을 빛낸 최고의 예술가였으며, 이른바 한류 열풍의 선두주자로 손색이 없다. 국권을 상실한 일제치하에서 이뤄낸 예술적 성취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롭다.

공교롭게도 조택원은 춤입문 시절부터 우다이 상카르를 동경했다고 전한다. 조택원과 우다이 상카르 두 거장은 1951년 마침내 미국 땅에서 조우하는 행운을 누린다. 우다이 상카르와 그의 아내 아밀라, 그리고 조택원이 NBC TV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했다. 미국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펄벅이 주선해준 기회였다. 여기서 조택원은 ‘가사호접’, ‘만종’, ‘춘향조곡’을 추었고 아밀라는 인도춤을 선보였다. 이국적인 무대의 해설은 우다이 상카르의 몫이었고 춤 사이 사이 세 사람의 대담도 이뤄졌다. 실로 경이로운 만남이었다.

춤을 통해 음울한 나라에 봄의 기운을 되살려달라고 주문한 타고르의 바람은 동방의 작은 나라 코리아까지 전해진 것일까. 인도의 우다이 상카르와 조선의 최승희·조택원은 식민지 시절 제국의 심장을 관통하여 세계를 휘어잡은 위대한 예술가였다. 치열한 작가정신으로 예술혼을 불태우고 민족혼을 일깨웠다.

한국과 인도 사이에 새롭게 피어나는 교류와 협력이 양국의 동반성장을 넘어 21세기 인류문명과 역사발전에 보다 뜻있는 가치 창출로 기여되길 소망하면서 타고르의 시 ‘동방의 등불’을 재음미해 본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번 켜지는 날에/ 나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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